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 K를 멍하니 쳐다봤다. 그런데 정말 어이가 없는 건 K가 그 난리를 치고 있는데 내 눈은 온통 앞쪽 통유리에 비친 내 몰골에 집중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종업원이 했던 말에 마음을 다친 게 분명했다. 내가 봐도 난 정말 거의 사십대 아줌마처럼 보였다. 가출했을 때 했던 파마머리는 부스스하게 부풀어 있었고 검은 기지바지에 검은 스웨터, 약간 부은 눈두덩과 우툴두툴 여드름이 난 이마, 정말이지 외모 하나는 절묘했다.
“그렇게 힘들었다면서 파마는 언제 했니?” 난 화제를 좀 돌리고 싶었다. “널 만나러 오려고 했지. 너한테 예쁘게 보이고 싶었어.” 그러면서 K는 오른손을 들어 공주처럼 머리채를 뒤로 넘기고 다시 왼손을 들어 반대쪽 머리채도 뒤로 넘겼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척추 부근으로 싸한 냉기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앞에 앉은 귀여운 K가 몹시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침묵이 흘렀다. K는 미동도 하지 않고 창밖만 내다봤다. “갈까?” 지루해진 나는 K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K가 또 질질 짜기 시작했다. “부탁이 있어.” K는 눈을 똑바로 뜨고 날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는 눈을 감으며 그냥 고개를 끄덕거렸다. “키스해줘.” K는 상처 난 손목을 나를 향해 내밀었다. 자세히 보니 붉은 지렁이 여섯 마리가 흰 살에 파묻혀 있었다. 나는 장중하게, 아주 천천히 K의 손목을 천천히 내 입술 쪽으로 끌어와 머리를 숙여 키스를 했다. “그건 키스가 아니고 뽀뽀지.” K가 입술을 내밀고 툴툴거렸다. “다시 해.”
나는 잠깐 생각이라는 걸 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키스와 뽀뽀의 차이점을 알아채고는 다시 K의 손목을 내 쪽으로 끌어왔다. ‘그냥 지렁이를 먹는다고 생각하자.’ 내 마음은 그랬다. 그리고 언젠가 학교 생물 시간에 배웠던, 지렁이라는 환형동물은 매우 깨끗하다는 말을 떠올렸다. 혀를 대느라 숨을 쉬는 순간 알싸한 소독약 냄새가 콧속으로 밀려들었다. 그 냄새를 맡는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K를 이해하고 싶어졌다. K의 구구한 설명보다 소독약이라는 그 디테일이 나를 더 감동시켰다.
어쨌든 이 일은 훗날 내가 영어학원에 다닐 때 “내가 지금까지 했던 경험 중에서 가장 이상한 일”이라는 주제로 얘기를 나눌 때마다 공개했던 단골 에피소드가 되었다. 그러나 막상 그런 질문을 한 외국인 강사들은 파트너와 얘기를 하게 시켜놓고는 지루해 죽겠는 얼굴로 시계를 보거나, 그랬어? 그랬구나! 할 뿐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영어라는 언어 장벽이 있어 공감하기에 어려웠겠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앵무새처럼 늘 그 얘기만 했던 것 같다.
K는 그날 집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같이 있고 싶다고 떼쓰는 어린애처럼 내 팔에 매달려 온갖 애교를 다 떨었다.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협박 또한 빼놓지 않았다. “또 그어버린다.” 나는 그애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우리 집엔 방이 없어.”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K는 막무가내였다. 《제8요일》 얘기도 해줬지만 막무가내였다. “글짓기 교실에서 얘기나 해. 난 내가 하고 싶은 말의 반도 못 했어.” 그때까지 실컷 얘기해놓고는 또 할 말이 남았다니, 나는 도저히 K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