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같으면 너무 유치해서 감히 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나는 그를 ‘쟝(Jean)’이라고 불렀다. 전혜린의 일기에 나오는 이름을 그대로 카피한 것이었는데 그런 이름을 붙인 것만 봐도 나 역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게 아무리 어릴 때부터 물든 사대주의적 발상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본명인 ‘영철 씨’라고 써서는 도무지 멋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소원은 하인리히 뵐의 소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주인공이 하는 말처럼 “더 이상 끔찍한 가난의 숨결”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그 소설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가난에 대한 통렬한 인식이 강도를 더해가며 드러났다. 나도 가난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여러 번 기도를 했었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걸 보면 아무도 내 기도를 듣지 못했던 것 같다.
늘 방 안을 떠도는 흐릿한 연탄가스 냄새는 가을부터 늦은 봄까지 계속되는 생존의 기본 조건이었다. 연탄가스 때문에 어지러움을 느끼는 아침이면 김 작가와 나는 동치미 국물을 마셨다. 그건 그렇더라도 책 한 권 사기에도 부족한 용돈은 또 어떻고. 그건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김 작가가 동전을 넣어두는 작은 항아리에서 동전을 훔칠 때마다 얼마나 자존심을 구겨야 했는지 아무도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릴 때, 김 작가와 떨어져 저수지가 있는 그 시골에서 살 때 나는 절대로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같은 반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밤늦게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 친구가 다음 날 나더러 자기 엄마의 지갑에서 동전을 훔쳐갔다며 돌려달라고 했다. 훔쳐가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그 친구는 막무가내였다. 동전을 채워 넣지 않으면 친척집에 간 엄마가 돌아와 자기와 오빠를 심하게 때리고 결국은 교회 반성실로 보내 통성기도를 시킨다면서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깊고 깊은 재래식 화장실 속에 바지 앞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던 은색 동전을 던져 넣어버렸다. 그 섭섭함이라니. 몸을 일으켜 네모나게 뚫려 있는 화장실 벽면으로 태평하게 흘러가는 바깥세상을 내다봤을 때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
돈이 필요해서 동전을 꺼내갔던 것도 아니었고 왜 그걸 훔쳤는지 잘 모르겠다. 벽에 걸린 친구 엄마의 옷 속에 작은 지갑이 있었고 나는 그걸 그냥 열었다. 사실이 그렇더라도 그걸 내가 한 일이라고 무조건 확신하는 그 친구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그래서 나는 그 친구 집으로 갔다. 골목을 그냥 지나가는 척하면서 내가 아는 세상의 모든 욕설을 적은 편지를 우편함에 찔러 넣고 돌아왔다.
조마조마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막상 그 친구의 엄마가 딸과 아들을 대동한 채 내가 살고 있던 김 작가의 친구 집으로 찾아왔을 때 굉장히 긴장했다. 식식거리던 친구 엄마의 모습은 그때까지 내가 본 중년 여자들의 얼굴 중에 제일 무서웠다. “근본도 모르는 애를 데려다 키우는 이유야 내가 알 바 없지만 이 편지 좀 보라구, 이게 어린애가 쓴 편지인지, 어른이 쓴 편지인지? 이건 사탄이 쓴 편지라니까. 난 이런 편지 정말 처음 봐.”
김 작가 친구 부부는 두 장짜리 편지를 한 장씩 읽고 또 한 장씩 바꿔 읽었다. 읽고 난 뒤 아무 말 없이 친구 엄마에게 머리 숙여 사과했다. 친구 엄마가 돌아갈 때 김 작가의 친구는 집에서 만든 거라며 두부 몇 모를 들려 보냈다. 그들이 가고 난 뒤 김 작가의 친구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야, 너 글 잘 쓰드라. 어떻게 그렇게 편지를 길게 쓸 수 있지? 난 진짜 그거 힘들던데.” “이제 우리 집에서 나가라!” 따위의 말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던 나는 일단 안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