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읽어도 잘 들어오지 않아 작은 활자 탓도 하고 누렇게 바랜 책 모양 탓도 했다. 그렇다고 책장을 덮고 앞에 앉은 사람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도 없고 그 어디에도 눈 둘 곳이 없었다. 시몬느 베이유는 공장노동자로 일하면서 마른 빵으로 식사를 대신한 채 밤마다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에 불타 글을 쓰는데, 나는 한심하게도 앞에 앉은 남자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처럼 김 작가가 만들어 복사한 조악한 신청서를 오래 읽었다. 그러고는 달랑 이름과 주소만 적었다. “다른 것들은 차차 서로 알아가죠 뭐.” 순간 그가 김 작가를 쳐다보며 좀 느끼하게 웃었다. “그런데 여길 어떻게 아셨어요?” 김 작가가 그에게 물었다. “사실 성인반을 만들어달라는 분들이 많았는데 제가 거절했거든요. 저도 글을 쓸 시간이 있어야 하니까요.” 김 작가의 말은 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내가 아는 한 누군가 찾아와 그런 제의를 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계동에서 김 작가님이 얼마나 유명하신지 모르셨나 보군요. 재색을 겸비한 훌륭한 분으로 소문이 자자하신걸요.” 그는 탁자 위에 손을 얹고 의자에서 일어나며 잠깐 사이를 둔 뒤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그는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순간 나는 탁자 위를 짚은 그의 손을 응시했고 그 손을 오래 기억했던 것 같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언제 그런 인간이 있었는지, 그에 관한 모든 아우라가 머릿속에서 통째로 사라진 뒤의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생각났다. 그때 나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미술사학자인 앙리 포시용의 《형태의 삶》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무슨 일과 관련되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마도 미술평론 같은 걸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책을 늘 내 머리맡에 두고 읽었다.
책 끝의 부록인 ‘손을 예찬함’이라는 글을 읽을 때 글짓기 교실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그의 손이 불쑥 떠올랐다. 어두운 무대의 아래쪽에서 떠올라, 숨죽이며 무대 위를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의 입에서 탄성이 쏟아지게 하는 흰 손 같은. 어쩌면 김 작가도 나도 그의 흰 손에 정신을 잃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희고 고운 손을 가진 남자가 나쁘면 얼마나 나쁘겠니! 나쁜 일을 하면 얼마나 하겠어.” 과연 그랬을까? 그 말을 한 김 작가조차도 그토록 독하게 당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김 작가는 낮에 오는 꼬맹이들의 글짓기 수업은 대충대충 했다. 애들이 떠들어도 떠들게 그냥 놔두고 과자를 들고 와 먹어도 야단도 안 쳤다. 아이들의 학습 능력 향상 따위는 관심도 없고 적당히 시간만 때웠다. 받아쓰기 연습할 때 문제를 불러주는 것도 채점을 해서 다시 돌려주고 연습을 시키는 것도 다 내가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때 나는 재수를 해야 할지 취직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결정을 못하고 있었고 달리 갈 곳도 없었다. 게다가 이미 중학교 때 다 치른 여드름 전쟁이 다시 시작되고 있어서 하루 종일 우울하기 그지없었다.
꼬맹이들이 돌아가고 골목 주변의 침침한 음지가 드러나는 오후 서너 시경이 되면 김 작가의 컨디션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두 팔을 번쩍 들어 기지개도 켜고, 평소엔 춥다느니 주인집 노인네들 마주치기 싫다느니 하며 잘 가지도 않던 안채 샤워실로 가 감지도 않던 머리도 감았다. 마사지 크림을 얼굴에 잔뜩 바르고 손가락에 힘을 주어 마사지를 하고는 스팀 타월까지 만들어 뒤집어썼다.
더욱 놀랄 일은 커튼만 걷어 젖히면 쓰레기 전시장이나 다름없던 방도 직접 치웠다는 사실이다. 물론 치운다고 해봐야 방 안쪽 벽에 붙어 있는 옷장 문을 열고 지저분한 물건들을 다 끌어다 넣어두는 정도였지만 그것만 해도 놀라운 변화였다. 어쩌면 뭔가를 치우고 정리하는 손이 그토록 서툰지 정말이지 내력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