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설명하기와 묘사하기
그는 늘 터틀넥을 입었던 것 같다. 터틀넥을 입은 깔끔한 마스크의 현직 교사. 1970년대, 잘생긴 얼굴을 이용해 수많은 여자들을 강간하고 죽인 미국의 전설적인 연쇄 살인범 테드 번디라는 사람도 터틀넥을 즐겨 입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가 살인에 몰두하는 자신의 건강을 몹시 염려해 죽인 사람들의 내장을 꺼내 소금 간을 한 뒤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는 얘기도 읽었지만 믿거나 말거나.
내가 기억하는 사람 중에 터틀넥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은 영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바람둥이 의사 토마스로 나온 남자배우였다. 끊임없이 여자를 바꿔치기하는 이유를 ‘우리에겐 단 하나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던 남자. 잘생긴 얼굴 때문에 뭘 입어도 잘 어울렸겠지만 그가 바로 터틀넥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영국 출신의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였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김영철 선생님. 김영철 선생님은 초록색, 검정색, 회색으로 색깔만 바뀔 뿐 늘 장식이 없는 터틀넥 스웨터를 입었고 그 위에 입는 코트도 늘 같은 검정색이었다. 어쨌든 그의 첫인상은 그랬다. 절대 나쁘지 않았다.
“근처 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는데, 저도 뭘 좀 써보고 싶어서요.” 그는 말을 하고 나면 입가를 손으로 비비며 몽상가처럼 시선을 위쪽으로 향했다. 그러면 김 작가와 나도 그를 따라 아무것도 없는 위쪽을 쳐다봤다. 순간, 김 작가와 내 눈빛에서 동시에 뿜어져 나온 강력한 스파크가 허공에서 타다닥, 소리를 내며 저희들끼리 부딪쳤다. 전쟁이 시작된 것이었다.
분위기 있는 젊은 남자, 그것도 현직 교사라는 사람이 제 발로 찾아왔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자기 애들의 글짓기 지도를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직접 뭘 쓰고 싶다고 했다. 몹시도 지루한 겨울에 일어난 혁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김 작가의 얼굴은 자부심으로 가득 차 바람이 잔뜩 든 풍선처럼 마음껏 부풀어 올랐다. “여러 번, 혼자 뭘 좀 써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군요.” 그가 한쪽 볼을 부비며 수줍게 말했고 김 작가가 당연하다는 듯,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를 바싹 앞으로 끌어당겨 앉았다. “뭘 쓴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경험 많은 선배의 말에 신참내기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정말이지 점입가경이었다. “대학 때는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저희들 세대가 다 그렇죠.” 김 작가는 조금도 틈을 두지 않고 그의 말에 바로바로 반응했다.
그때 내가 읽다 말고 탁자 위에 올려둔 책은 프랑스의 노동운동가이면서 여성 철학자인 시몬느 베이유의《노동일기》였다. 사실 그 책도 내용에 대해 뭘 알고 샀던 건 아니었고 단발머리에 깡마른 얼굴, 칼라 깃이 둥근 코트를 입은 저자의 모습이 매우 철학적이고 멋져 보여서였다. 그때만 해도 책을 고르는 이유라는 건 특별한 게 아니었고 겨우 그런 거였다.
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천천히 읽히던 책이었는데 단 한 문장도 더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자꾸만 읽던 곳을 반복해서 읽으려고 노력했다.
“3시 45분부터 5시 15분까지 레옹과 함께 종이에 싸인 강철 덮개에 리벳을 박는 작업. 윗부분에 접시형 구멍이 뚫린 쇠고리를 연결시키는 것만 주의하면 된다. 공장에서 요구하고 있는 속도, 즉 쉴 새 없는 속도로 일을 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6개의 제품 중에서 4개의 합격품이 나왔다. 시간당 평균 2.88프랑. 아무런 사고도 없었고 그다지 고통스럽지도 않았던 하루였다. 무뚝뚝한 조정공과의 무언의 우애. 아무와도 말을 나누지 않았다. 말을 해봤자 크게 유익한 것은 없다.
뻬르사쥬-제품에 구멍을 뚫는 일-작업을 하고 있는 어떤 여공은 망이 쳐져 있었는데도 머리털이 기계에 걸려서 몽땅 뽑혀버리는 바람에 머리에 커다란 반점이 나버렸다. 사고는 오전 작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일어났다. 그녀는 몸도 아프고 아직도 겁에 질려 있었지만 오후에 다시 일을 하러 나왔다. 이번 주는 굉장히 추운 데다 공장의 위치 때문에 기온의 차가 심하다. 심지어는 연장이 너무 차가워서 작업의 속도가 늦춰지는 곳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