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감찰상궁이 제조상궁에게
1465년 6월 23일
궁녀들의 수장이신 제조상궁 마마님,
오늘 감찰한 두 가지 일을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소용마마 처소의 나인1 두 명이 내금위에 잡혀갔습니다.
어명(御命)이라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내명부 감찰부에서는 전해들은 바가 없었습니다. 이리저리 알아본즉, 나인들이 환관들에게 연서를 준 것 같다고 합니다. 환관 최호와 김중호가 먼저 붙잡혀 갔고, 그 뒤에 나인 운비와 송영이 잡혀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마마님, 나인들과 환관들이 서로 연서를 주고받았다면, 당연히 감찰상궁인 소인에게 먼저 알려주고, 내명부 감찰부에서 궁녀들을 다루도록 해주어야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제조상궁마마님, 이런 말씀드리는 것이 송구하오나, 최근 의금부나 내금위에서 월권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의금부는 태종 임금 때부터 양반네들을 재판했으며, 형조는 상민들을 주로 다루었습니다. 내금위는 왕의 측근에서 호위를 맡은 군대이기 때문에 주상전하와 직접 관련된 범죄만을 감찰하거나 국문하지 않습니까? 특히 궁녀들의 잘못은 내명부 감찰부에서 다스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환관과 궁녀들을 내금위에서 끌어들여 취조를 하고 있다니, 이 어디 말이 되는 것입니까?
그뿐이 아닙니다. 의금부나 내금위에 나인들이 잡혀 들어갈 경우 취조과정에 문제가 많다고 합니다. 언제 주상전하의 성은을 입을지 모르는 나인들이 아닙니까. 남자들과의 접촉을 일체 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지라, 몸이 아프면 돌보아주는 내의녀가 따로 있고, 잘못을 저지르면 벌을 가하는 내명부 감찰부가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의금부나 내금위는 나인들의 잘못도 자신들이 처리하려 드니, 사내들이 나인들을 취조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마마님, 더구나 이번 나인들은 소용마마를 모시던 아랫것들입니다. 자칫 잘못하여 소용마마의 비위라도 건드리게 될까봐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제조상궁마마님, 이번 연서사건을 내명부 감찰부에서 다룰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 내명부 감찰부의 위상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마음을 써 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보고드릴 감찰 내용은, 퇴선간2에서 상궁들의 변칙적인 식사가 있었습니다.
궁중의 음식을 감독하는 사람은 환관들의 수장인 상선어른이지만, 퇴선간을 감독하는 사람은 바로 궁녀들의 수장인 제조상궁마마님이 아니십니까. 제조상궁마마님, 제 얘기 좀 들어보십시오.
주상전하께서 수라상을 물리시면 남은 음식을 대전상궁과 나인들이 나누어 먹게 되어 있습니다. 엊저녁 퇴선간에 나온 수라상 물림은 오늘 아침에, 오늘 아침 수라상 물림은 오늘 저녁에 먹는 것이 관례입니다. 왕이 드시고 남은 음식을 내명부에서 나이순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먹게 되어 있어, 맨 먼저 대전상궁이 육십대 이상의 할매 상궁들과 드시고, 그다음에 사오십대의 중다리 상궁들이, 그다음에 이삼십대의 젊은 나인들이 먹고, 그다음 십대 애기나인들의 순서로 상을 물려받게 되는데, 점점 찬과 밥이 부족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물린 아침 수라상을 저녁에 먹지 않고 곧장 아침에 먹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나 직급에 따라 차례차례 먹지 않고 오로지 사오십대 상궁들끼리만 교자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이 무슨, 소첩이 궐에 들어와 이런 해괴한 식사는 처음 들어봅니다. 아무래도 새로 부임한 기미상궁 때문이 아닐런지요? 기미상궁이 이제 막 새로 바뀌지 않았습니까? 기미상궁은 임금의 수라상의 음식뿐만 아니라 탕약 등 모든 음식물의 독약 여부를 알아내기 위해 맛을 보는 임무를 보고 있습니다. 세종 임금부터 문종, 단종 그리고 지금의 주상전하까지 몇 대에 걸쳐 기미를 해오던 오 상궁이 너무 연로하여 기미상궁을 바꾸었다고 들었습니다. 제조상궁마마님, 퇴선간에서 순서나 절차를 어기고 특정 상궁들끼리만 둘러앉아 식사를 한 것에는 새 기미상궁의 오만방자한 의도가 들어있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새 기미상궁의 행태가 보통 요란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오늘 아침 임금님이 수라를 드시는 자리에 애기나인도 한 명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알고 계셨는지요? 만약 모르고 계셨다면, 궁중의 법도와 제조상궁마마님을 깡그리 무시한 처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러나저러나 괘씸하기 이를 데 없는 일입니다. 제조상궁마마님, 새로 온 기미상궁의 오만방자한 소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퇴선간의 실태를 한번 확인해 보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위의 두 가지를 바로 잡아, 내명부 감찰부의 권위를 되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감찰상궁 강 씨
1 왕과 왕비의 시중을 든 정5품 상궁 이하의 궁녀를 일컫는데, 상궁, 나인, 애기나인 등이 있다.
2 왕의 수라상을 올리고 물리는 곳을 퇴선간(退膳間)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