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상차 강원종이 상선 전균에게
1465년 6월 22일
상선 어른,
강녕하신지요?
상차(尙茶) 강원종이옵니다.
부르신다하기에 뵈러갔으나, 상선어른께서도 갑자기 주상전하의 부름을 받아 가시고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뵙고 오려고 반나절이나 기다리다가 하릴없이 돌아왔습니다. 다시 불러주시옵소서.
음, 환관들의 최고 자리에 계시는 상선 어른께서 모르실 리 없지만, 어제 내금위에서 환관 최호와 김중호를 잡아갔다고 합니다. ‘유별나게 성실하고 순종적인 것도 죄가 되나 부지? 근무 태도나 시험 성적이 너무 좋아 주변에 위화감을 준 것 아냐?’ 뭐, 주변에서는 이런 식입니다. 도대체 잡혀간 연유를 상상할 수 없으니 농을 하는 것이지요. 당혹해하고들 있습니다. 이런저런 추측이 전부여서, 소인이 귀한 차 알갱이 몇 개를 들고서 내금위에 가서 내막을 알아보았습니다. 내금위 갑사들도 감을 잡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하기야 어명으로 잡아들였을 뿐이지, 아직 국문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죈지 어찌 알겠습니까. 정보를 준답시고 뭐라고 했는데, 나인들과 환관들이 서찰을 주고받고 어쩌고저쩌고, 소인의 머리로는 앞뒤가 잘 꿰맞춰 지지 않았습니다.
상선어른, 혹시 상선어른께서 소인을 호출했던 이유와 주상전하께서 상선어른을 부르신 이유가 같은 것은 아닌지요? 환관 최호와 김중호가 잡혀 들어간 것과 연관이 있는지요? 주상전하께서 어제 오후에 피부병에 좋다며 즐겨 마시던 난초차를 물리치셨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환관들을 잡아들이라는 어명을 내린 직후가 아니었나 합니다. 차를 물리치신 후, 주상전하께서는 급하게 상책(尙冊)1을 불러들여 서책을 찾아오라고 채근하셨습니다. 음,『월인석보』였습니다. 월인석보라면 부처의 일대기를 다룬 서책이 아닙니까? 환관 최호와 김중호와 월인석보라! 역시 소인의 머리로는, 앞뒤가 잘 꿰맞춰 지지 않습니다.
음, 상선어른, 환관 최호와 김중호는 그렇다 치고, 창덕궁에서 일하던 환관 방비리가 경복궁 내잠실로 돌아왔습니다. 한때 사옹원에서 같이 일한 적이 있는데, 진상품 중에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꿩고기 등 육류 식재료를 수납하는 일을 감독했더랍니다. 궐에 방비리가 다시 나타나자 사람들은, ‘또 잠실로 가다니 달고 있는 것이 많았던 모양이지, 그 방망이가 또 나타났는가’ 등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방비리를 놀림감으로 삼거나 얕잡아보기도 합니다만, 사리가 밝고 올곧은 인간입니다. 그의 별명 방망이는 단지 방씨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남의 비리나 잘못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고 방방 뛰면서 주변을 힘들게 하는 면이 있어서 붙은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런 이유로 기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의 말마따나 친잠례 채상단을 쌓으러 왔으면 다행이지만, 중전마마의 밀명을 받고 잠실을 감찰하러 왔는지, 아니면 김 상선으로부터 특별 임무를 받고 왔는지, 이것인지 저것인지, 역시 나쁜 머리로는 앞뒤가 잘 꿰맞춰 지지 않습니다.
환관 방비리를 입에 올리는 이유는, 상선어른과 소인이 여태 해왔던 ‘그 일’ 때문입니다. 눈치가 빠른 방비리가 어쩌고저쩌고 간파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뭐, 예외가 없습니다. 상선어른이라고 혹은 친구라고 덮어줄 위인이 아니거든요. 누에들은 벌써 세 번째 잠을 자고 있다고 합니다. 중전마마의 친잠례 행사는 네 번째 잠을 자고 난 5령2으로, 누에가 가장 왕성하게 뽕잎을 먹을 때 치르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도 ‘그 일’을 하실 생각이신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움직여야 할 시기는 친잠례가 끝난 뒤 누에가 고치를 짓고 들어가 번데기가 되는 시점이니까, 8월 중순에서 말쯤이 될 것입니다.
상선 어른, 다시 부르시면 말씀드릴까 했는데, 이래저래 주변과 심경이 어지러운 상황이니 올해에는 ‘그 일’을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 어떨까 합니다.
이제 소인은 주상전하께 퇴짜 맞지 않을 차(茶)나 잘 준비해두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월인석보와 최호와 김중호와 퇴짜 맞지 않을 차라! 역시 앞뒤가… 나쁜 머리가.
다시 불러 주시옵소서. 한걸음에 달려가겠습니다.
상차 강원종 배상
1 상책(尙冊)은 임금이 원하는 문서나 서책을 찾아다주는 일을 맡은 환관이다.
2 알에서 부화한 개미누에가 1령이며, 뽕잎을 먹고 4일 만에 잠을 잔 뒤 처음으로 허물을 벗는데 그때가 2령이다. 누에의 피부는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크고 새로운 피부를 만들기 위해 계속 허물벗기를 하는데, 부화한 지 7일 만에 잠을 자고 2령이 되고, 11일 만에 다시 잠을 자고 3령이 되고, 16일에 다시 잠을 자고 나면 4령이 되며, 알에서 부화한지 22일 만에 잠을 자고 5령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