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환관 방비리가 상차 강원종에게
1465년 6월 22일
원종, 그동안 잘 있었나?
나, 방비리일세. 기억나는가? 문종 임금 시절 사옹원1에서 자네와 같이 일했던, 별명이 방망이였던 방비리일세. 우린 임금께서 드실 식재료 진상품을 감독하는 일을 하지 않았나. 어린 임금을 모실 때까진 같은 길을 갔는데, 현왕의 즉위와 함께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되었지. 나는 창덕궁 잠실로 발령을 받아 떠났고, 자네는 경복궁에 남아 삼강행실도 등을 훈민정음으로 언해하던 정음청2에서 근무했었지. 서로 얼마나 변했을까. 여자처럼 몸과 목소리가 가늘어진다고 걱정했었는데… 어째 거의 여자가 되었는가? 껄껄. 나는 이번에 경복궁 내잠실을 감독하는 품관3으로 발령을 받아, 자네가 있는 경복궁으로 되돌아왔네.
내가 창덕궁 잠실로 이동할 때 자네가 했던 말, 기억나는가? 그때 자네는 “잠실에는 한번 가면 족한데, 두 번이나 가다니”하고 농을 했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박장대소하지 않았나. 그 시절을 생각하니, 아니 농을 잘하던 자네 생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나오네. 남자를 고자로 만들 때 상처가 아물기 전에 찬바람을 쐬면 대개 죽기 않나. 상처가 아물 때까지 지하에서 석 달 이상 머물러야 하는데, 그 상황이 마치 잠실의 누에 처지와 비슷해서 생겨난 은어가 ‘잠실 간다’가 아닌가. 환관이 되기 위해 이미 ‘잠실’을 다녀온 내가 다시 창덕궁 잠실로 간다고 하니, 자네가 그렇게 비꼬지 않았나. 그런 익살 덕분에 유쾌한 심정으로 창덕궁으로 떠날 수 있었지. 그런데 또 세 번째 잠실로 오고 말았네.
사실 나는 어제 아침에 경복궁 내잠실에 첫 출근을 했네. 내잠실 감독도 하고 곧 있을 친잠례에 중전마마가 사용하실 채상단을 쌓을 사람을 물색하던 중 내가 적임자로 선택된 모양이야. 경복궁에 새로 적응해야 하고 채상단을 실수 없이 쌓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출근을 하자니,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이 바로 자네였네. 우리처럼 허물없이 지내기도 힘든데, 몸이 떨어져 있다 보니 마음도 멀어져서 그동안 격조했네. 앞으로 경복궁에서 같이 일하게 되면 옛날처럼 잘 지내보세. 첫 출근을 위해 운종가의 종루를 지나고, 육조거리4를 지나고, 광화문을 통과하여, 궁궐 입구가 보이니, 가슴이 뛰더군. 아마 경복궁으로 다시 소환된 것이 나름 감회가 깊었던 모양이네.
입궐하고 보니 시각이 조금 이른 느낌이었네. 첫 출근하는 품관이 너무 일찍 나타나면 잠녀들이나 종비(從婢)5들이 불편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남은 시간 궁궐 구경을 좀 했다네. 경복궁을 밟은 지도 근 10년 되었으니. 발길이 자연스럽게 근정전으로 향하고 있었지. 근정전은 대궐 안에서 가장 화려한 곳으로 현왕의 즉위식도 그곳에서 이뤄지지 않았나. 근정전 마당의 중앙인 어도(御道)를 중심으로 동쪽의 문반 품계석, 서쪽의 무반 품계석이 보였네. 왕의 길이신 어도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근정전의 위용과 아름다움을 오랜만에 만끽하면서 천천히 걸었네. 근정전 뒤쪽 주상전하가 머무르는 대전, 그 뒤로 중전이 머무는 교태전… 중전마마가 머무시는 교태전이 위치상 가장 깊숙한 곳이라지만, 실상 더 깊숙한 곳에 후궁들의 전각이 있지 않나. 정궁에 대비되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정궁 뒤에 산다고 해서 후궁(後宮)이라고 부른다고 들었네. 이 후궁 뒤로 금원이 있지. 바로 내가 중전마마의 친잠례를 위해 세울 채상단도 바로 그 금원 안이 될 걸세.
궐에 처음 들어온 사람 마냥 이리저리 구경을 하고, 잠실로 가려고 궐내 각사 쪽으로 몸을 틀었을 때, 이보게 원종,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네. 저만치서 누군가 잡혀가고 있더란 말이지. 자세히 보니 두 명의 환관이었는데, 내가 아는 치들은 아니었고, 두 손이 묶인 것이 환관의 위상이 영 말이 아니었네. 그런 이른 시각부터 환관들을 잡아들일 일이 무엇인지, 거참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지. 뛰어가서 물어보았지만, 내금위 갑사들이 대답을 피하며 환관들을 끌고 서둘러 가버리더란 말이지. 자네, 또 괜한 일에 내가 나섰다고 타박을 하겠구먼. 하기야 궐에 들어오자마자 잘 알지도 못하는 일에 개입될까 봐, 끝까지 따라가지는 못했네. 궐내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자네니까 말하지만, 그 광경을 보고 나니 첫 출근하는 아침의 느낌이 개운치 않네. 나쁜 일이 생길 것 같은 암시를 받은 느낌이랄까. 환관들이 잡혀가는 … 창덕궁에 오래 있다 보니, 경복궁은 항상 이렇게 예기치 않은 사건사고들이 넘치는 곳이라는 것을 잊고 지냈네. 경복궁에 출근하는 이상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느낌이 드는군. 여하튼 오래간만에 경복궁 안에 들어왔더니 생소하고 낯선 일이 많은데, 앞으로 궐에 잘 적응하려면 아무래도 자네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네.
사실, 오늘 아침나절에 자네를 찾아갔더니 상선6 어른을 뵈러 가고 없더군. 상선 어른께 인사도 드리고 자네도 만나볼까 했지만, 자네가 두 상선 중에 어느 상선을 만나러 갔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네. 주상전하의 음식을 책임지는 천 상선인지 환관들을 총 지휘하는 김 상선인지. 두 상선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
원종, 궐에 들어와 자네의 근황을 물어보니, 정음청이 폐지된 뒤, 주상전하의 차(茶)를 담당하는 상차(尙茶)가 되었다고 하더군. 사옹원에 있을 때부터 차를 좋아하더니만, 좋아하는 것을 다루게 되었으니 좋은 자리라 할 것이네. 다음에 이뇨 작용에 좋은 차가 무엇인지나 알려주게. 다시 연락함세.
내잠실 방비리 씀
1 조선시대 궁중의 음식을 담당한 이조에 속한 관청이다.
2 《문종실록》에 '정음청'이 처음 나오는데, 세종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3 조선 시대에 품계를 가진 벼슬아치를 통틀어 이르던 표현이다.
4 경복궁 입구에 6개의 중앙관청인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가 있던 거리를 일컫는다.
5 잠실에서 뽕잎을 말리는 임무를 맡은 노비로, 연엽모(演葉母)라고도 한다.
6 임금의 식사는 환관들의 최고 자리라 할 수 있는 두 명의 상선(종2품)이 감독하고, 술은 한 명의 상온(정3품)이, 차는 한 명의 상차(정3품)가 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