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반의 연애편지: 문종 독살설의 비밀』 역사적 길라잡이
조선왕조의 태조·정종·태종에 이어, 제4대 왕인 세종 집권 하에 형성된 정치적 안정감이 제5대 왕인 문종의 즉위와 함께 급격히 약화되고 있었다. 문종이 병약했고, 세자는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주변의 우려대로, 문종이 재위 2년 4개월 만에 39세 나이로 죽자, 12세의 어린 세자가 등극할 수밖에 없었다.
단종은 태어난 지 삼 일만에 어머니 현덕왕후를 여의었고, 열 살에 할아버지 세종대왕을 여의었으며, 열두 살에 부왕마저 잃은 상태였다. 수렴청정을 해줄 정치적 후견인이 전무한 상태였다. 세종대왕의 유지에 따라 영의정 황보인, 좌의정 김종서가 단종을 돕게 되었으나 어린 왕의 즉위는 정치적 회오리바람을 몰고 왔고, 종친*과 관료들 간의 이해관계에 의해 궁궐 내 관계가 매우 미묘해졌다.
마침내 정권은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을 중심으로 서서히 이분되어 갔다. 성격이 호방하고 억센 수양대군이 무신세력과 뭉친 반면, 상대적으로 유했던 안평대군은 황보인 등 훈구대신들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시나 그림을 좋아하는 안평대군과 달리, 수양대군은 어릴 때부터 병서를 읽고 무예를 즐겼고, 권람이나 한명회 등 계략가들과 양정 홍달손 홍윤성 등 수십 명의 장사들을 부하로 거느렸다. 수양대군은 훈구대신과 안평대군의 위세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지만 ‘호랑이 장군’이라고 불리는 김종서 때문에 함부로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1453년 10월 10일 수양대군이 직접 무사 몇 명을 데리고 가 김종서 부자를 죽이는 것으로 시작하여, 단종을 끌어내리고 왕위에 올랐으니 이 사건이 계유정난이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통해 정권을 장악한 뒤, 아우인 안평대군을 김종서 일당이라 하여 강화도로 귀양을 보내고, 이어 사약을 내려 죽이고 말았다. 1455년 단종 3년 윤 6월, 단종은 왕위를 수양대군에게 내주고 물러났다. 수양대군은 조선 제7대 왕으로 1455년 단종 3년 윤 6월에 즉위했고, 부인 윤 씨를 정희왕후로, 장남인 의경세자를 왕세자로 책봉했다. 세조 3년 왕세자가 20세 나이로 죽고, 2남인 해양대군이 세자로 봉해지니, 그가 나중에 세조를 이은 제8대 왕 예종이다. 세조에게는 정희왕후 외에 세 명의 후궁인 근빈 박 씨, 소용 박 씨, 숙원 신 씨가 있었는데, 이 소설은 세조와 소용 박 씨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게 된다. 세조는 39세에 등극하여 향년 52세로 생을 마감했다.
* 종친(宗親): 왕의 집안사람을 일컫는다.
세조대왕 가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