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회
세희 공주가 정희왕후에게
세희 공주가 정희왕후에게
1466년 7월 30일
어머니, 살아서 이렇게 어머니께 서찰을 쓸 수 있다니 꿈만 같아요. 이 나라의 왕후시니 어마마마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궐에 머무른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 어마마마라는 호칭이 낯설기에 이렇게 어머니라는 그리운 이름으로 부릅니다. 어머니, 저는 살아 있습니다. 건강한 남정네를 만나 아들까지 낳고 산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셨다지요. 어머니, 어머니도 건강하신지요?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어머니는 제가 어디 사는지 궁금하실 터이니 충청도 어느 깊숙한 곳, 계룡산 정도로 알려 드립니다. 저도 지아비의 신분은 여태 모르는 처지였어요. 그분에 대해 아예 알려고 하지 않았어요. 제 신분을 밝힐 수 없었기 때문에 상대방의 신분은 묻지 않기로 했답니다. 물론 궁금했던 것은 사실이었지요. 지아비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따뜻하고 속 깊은 그 사람은 나에게 물어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그의 신분을 알게 된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어요.
어머니 저에게는 다섯 날 난 아들이 있어요. 다른 동무 없이 산속에서 어린 짐승이나 새들을 벗 삼아 자라는 아이랍니다. 아이가 잠깐 우리 거처를 벗어났던 모양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글쎄, 집 뒤 남새 밭에서 야채를 뜯어 돌아오는데, 집안으로 말을 탄 몇 명의 사람들이 들이닥치는 것이 보였어요. 행색으로 보아서 관원들이나 병사들이 분명했으니, 나, 나를 잡으러 온 것이 분명했어요. 저는 급하게 굴뚝 위에 몸을 숨겼어요. 가슴이 뛰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당 한 가운데 아들이 서 있는 거예요. 다른 생각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고 오직 아들을 구해야만 하는 순간이었어요.
그때 지아비가 급하게 뛰어나와 마당에 무릎을 꿇었어요. 모든 것이 끝났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사람들 중에서 아이에게 말을 걸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왠지 눈에 익은, 그러니까 키가 크고 눈빛이 날카로운 그… 그… 아, 아버지였어요. 나이가 드시어 예전보다 좀 더 주름지고 마른 듯했으나 분명, 아버지가 분명했지요. 아버지가 어떻게 앞마당에 서서 내 아들에게 말을 걸고 있으며, 지아비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을까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때 아득하게 익숙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과인이 이 아이를 앞세워 집에 찾아든 연유는, 음, 이 아이의 얼굴이 나의 어릴 때 얼굴과 참으로 많이 닮은 듯하여, 정말이지 신기해서, 그 부모를 보기 위해 온 것이다.”
어머니. 간신히 서 있던 다리가 힘이 풀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어요.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어요. 아버지는 지아비에게 성과 이름을 물으셨지요. 그는 성이 김씨라고 아뢰었어요. 무슨 사연이 있어 이렇게 깊은 산중에서 살게 되었느냐고 물으셨어요. 저도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볼 수 없는 질문이었어요. 그는 본관이 순천(順天)이고, 태종 임금 때 문과에 급제하고 세종 임금 때 함길도 도관찰사와 평안도 도절제사에 오른, 별호가 큰 호랑이였던 김종서 장군의 손자라고 말이에요. 오! 어머니.
어머니, 김종서 장군이 누구인가요? 김종서 장군은 할아버지 세종 임금을 도와 북방을 개척하고, 그 뒤 몽고족이나 여진족의 위협으로 나라가 위급할 때 총사령관이 되어 노구를 이끌고 변경으로 달려갔을 뿐만 아니라, 지춘추관사, 지경관사, 지정균관사를 두루 역임한 유학자로 문무 양면에서 정상에 오르신 분이 아닌지요. 하지만 아버지는… 양정과 임어을운을 데리고 김종서 장군의 집을 찾아가 철퇴로 김종서 장군과 그의 아들 김승규를 쓰러뜨림으로써 계유정난의 단초를 마련하지 않으셨는지요. 지아비가 바로 김종서 장군의 손자이자 김승규의 아들이었어요. 순간 아버지도 말을 잇지 못하시고 한동안 땅에 엎드린 그의 등만 바라보고 계셨어요.
지아비가 그렇게 훌륭한 가문의 자손이었다니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역모의 거두로 여기는 자의 손자이니 아버지가 결코 살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앞을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지아비와 아들을 구하려면 제가 나서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저는 이미 죽은 몸이 아닌지요. 죽은 공주가 왕과 그 신하들 앞에 버젓이 나타난다면, 아버지를 속이면서까지 저를 떠나보낸 어머니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어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벌벌 떨면서 땅에 엎드려 있는 유모를 바라보더군요. 유모가 간신히 고개를 들자, 그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고 계시던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것이었지요.
“이제야 알겠노라, 이 아이가 왜 내 얼굴을 닮았는지.”
순간, 아버지는 아이의 어미가 누구인지 알아차린 듯 했어요. 마음 같아서는 당장 달려 나가서 아버지의 품에 얼굴을 묻고 싶었어요. 아버지를 미워한 것은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저를 낳아주신 아버지인걸요. 어릴 때 제 입이 올바르다 하여 아버지는 저를 참으로 많이 귀여워하셨어요. 아버지의 칭찬으로 키워진 입술이 아버지를 공격했으니, 왕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딸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여기셨을 거예요. 더구나 아버지가 어떤 분인데, 제가 하룻밤 사이에 죽었다는 어머니의 말만 그대로 믿고 장례를 치르게 하셨겠어요. 아버지는 저를 살리기 위해 유모와 저를 함께 빼돌렸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을 거라는 생각이 그제야 드는 것이었어요. 울음이 나와서 입을 틀어막고 있었어요.
“과인은 계룡산 절에 가는 중인데, 불공행사가 끝나고 돌아갈 때 다시 들르도록 하겠다. 그때는 아이의 어미도 볼 수 있었으면 하는구나.”
그렇게 아버지는 우리 집 마당을 떠날 채비를 하였답니다. 아버지가 나가시기 전 제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보였어요. 나중에 지아비와 다시 들으니, 그때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거예요.
"김종서의 피를 물려받았다면, 그나마 좋은 배필을 찾은 듯하구나.”
그렇게 아버지와 수행하던 관원들이 떠나갔어요. 계룡산에서 거행되는 불공행사에 가신다고 하셨어요. 계룡산에는 도를 닦는 승려들도 많고 또 왕이 참석하는 행사이니 국가적인 큰 불교행사이겠지요. 돌아가시는 길에 아버지께서 다시 들르시겠다 하셨으니, 어머니 저는 어쩌면 좋아요.
어머니, 아버지가 가시고 나서 지아비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지아비는 제가 공주라는 것을 알고 있었대요. 제가 가지고 있던 패물이며 장신구들이 예사롭지 않았고, 노모가 딸에게 너무 깍듯해서 양반집 규수이지만 역모에 휘말려 자신과 같은 처지가 된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대요. 그러다가 유모가 어머니에게 서찰을 보낸 일 때문에 제가 유모를 꾸중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제 신분을 눈치 챘었다고 그제야 얘기를 했어요.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의 처지도 털어놓고 싶었고, 피차에 그렇게 하는 것이 더욱 더 신뢰하는 관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터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했어요.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운 어머니, 결국 우리는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는 이곳을 떠날 생각입니다. 불공행사가 끝나고 아버지께서 다시 들르셔도 우리를 찾지는 못하실 거예요. 저는 이미 죽은 공주가 아닌지요. 다시 아버지나 어머니 곁으로 돌아갈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돌아가서도 저는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거예요. 세종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남긴 유언은 잘 받았어요. 형제끼리 잘 지내라는 것과 음식의 중요성을 잘 알아야 한다는 두 가지 당부를 하셨더군요. 세종 할아버지는 어떻게 미래를 그렇게 잘 내다보셨을까요.
사랑하는 어머니, 앞으로는 어머니의 서찰을 받을 수도 어머니께 서찰을 보낼 수도 없게 될 거예요. 하지만 한 가지는 약속하겠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스리는 이 나라의 선한 백성으로 우리는 잘 살아갈 것입니다. 어머니도 저 생각으로 절대 눈물 흘리지 마시고, 도리어 행복한 삶을 다시 찾은 딸을 축복해주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옵소서.
마지막 서찰, 세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