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회
임금이 백팔장에게
1466년 7월 6일
백팔장,
그동안 잘 지내셨는가. 정치와 종교라는 것이 전혀 질이 다른 것이라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그것이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네. 정치라는 것도 결국은 왕인 나도 섬겨야 하는 대상이 백성이고, 부처를 섬기는 자네들 역시 사람을 섬기는 일로 귀착되지 않겠나. 그렇지 않은가. 그동안 서로 소원했던 이유를 말씀드리겠네.
작년에 소용 박 씨가 귀성군에게 서찰을 보냈다가 변을 당한 일을 알고 있을 것이네. 그 서찰에는, 해야 될 이야기가 있으니 귀성군을 꼭 한번 만나야 할 것 같다는 말이 들어 있었네. 문제는 소용 박 씨가 서찰 중간 중간에 귀성군을 ‘군’이라고 불렀는데, 마지막 부분이 ‘그리운 백팔장에게 덕중이가’라고 끝이나 있었네. 소용 박 씨가 나인들을 통해 귀성군에게 전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아 귀성군에게 쓴 서찰이 분명한데, 그런 문구가 들어 있었으니 이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덕중이 어찌 백팔장을 알 것이며, 더구나 귀성군을 백팔장이라고 부른 연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임영대군과 함께 그 서찰을 들고 입궐했을 당시에도, 귀성군은 백팔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네. 그래서 소용 박 씨와 자네가 그동안 무슨 연락을 취해 왔던 것은 아닌가, 나 모르게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했었지. 겉으로는 소용 박 씨가 귀성군에게 보낸 연애편지 같지만 실제로는 모반과 관련이 있다는 느낌이 왔네. 연애편지로 가장한 모반, 모반의 연애편지.
진실을 밝히고 싶었네. 정말 귀성군과 백팔장이 의기투합했고, 소용 박 씨가 개입되었는지 말일세. 소용 박 씨는 내가 친국했네. 누구와 짠 것이냐고 물었지만, 그런 적이 없다고만 반복했네. 내가 아는 한 소용 박 씨의 그 말속에는 거짓이 없었네. 백팔장이 누구냐고 물어도 절대로 밝힐 수가 없다고 하더군. 죽어도 밝힐 수 없는 여자의 비밀이라고 하더군. 되풀이되는 국문과정에서 소용 박 씨는 마치 백팔장이 귀성군인 것처럼 말을 하더란 말이지. 하지만 왜 그런지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소용 박 씨가 귀성군을 입에 올릴 때마다 표정이 온화해진다는 사실이었네. 남자로써 느낄 수 있는 본능 같은 것이었지. 소용 박 씨는 귀성군을 단순히 시조카로만 여기고 있지 않았던 것이지.
자존심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불길처럼 분노가 치솟았지만, 그 서찰을 연애편지로 몰고 갈 수밖에 없었네. 모반이라고 여기고 백팔장에 대한 조사를 하게 되면 결국 자네가 드러나게 되고, 백팔장 모임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나와 백팔장 모임의 관계도 드러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지. 그래서 사람들이 추측하는 그대로 소용 박 씨가 귀성군에게 쓴 연서라고 마무리를 지었네. 사람들이 그 서찰을 연서라고 여기도록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왕으로서 남자로서 얼마나 치욕스러운 심정을 감수해야 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네. 하지만 이는 오로지 자네와 백팔장 모임을 지키기 위함이었음이네. 더구나 소용 박 씨가 죽어가면서까지 백팔이라는 말을 남기니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지. 하지만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었지. 게다가 자네에 대한 의심도 풀 수가 없었네.
백팔장, 승려 덕중을 통해 나에게 신탁을 전한 사람이 자네 아닌가. 문종 형님은 등극하시기 전부터 병약하였기에 병사한다 해도 아무도 의심없이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대들은 새 어린 왕이 즉위했을 때 그가 성년들로 자라기 전에 일을 치러야 한다며, 나를 왕으로 세우기 위해 전국의 승려들이 뜻을 같이 했다고 나를 설득하지 않았나. 이들 위해 승려들이 백여덟 조각의 천을 이어 만든 백팔장이라는 옷을 입기로 결의했다는 말을 듣고 감동 하였지. 그래서 그 모임을 위해 백팔장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네. 그렇게 해서 백팔장은 나를 왕으로 세웠고, 나는 백팔장의 뜻대로 이 나라에 불교를 되살리고 융성하게 만들었지. 모임을 이끄는 자네, 백팔장은 말 그대로 나의 짝패라고 여겨왔네. 한 사람이 죽으면 다른 한 사람도 죽게 되는 짝패. 그런데 소용 박 씨가 귀성군에게 보낸 서찰에서 백팔장이라는 이름이 나왔으니 얼마나 놀랬겠나. 확인할 시간이 필요했지.
그러던 중에, 내가 승려 덕중에게 건네라고 준 서찰을 귀성군이, 혼돈하여, 여종 덕중에게 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 나와 백팔장 모임의 밀약서를 기억하는가. 백성의 소리를 부처에게 바친다는 약속을 지켜 세종대왕 어지서문을 108자를 만들었고, 그 끝에 나와 자네의 이름을 적어 합의를 표명하였던 밀약서 말이네. 그곳에는 모임의 이름이자 자네의 이름인 백팔장이 자네 친필로 담겨 있지 않았나. 하지만 합의한 사실을 비밀에 부칠 것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하자는, 그렇지만 백팔장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는 묘책을 찾기로 했었다. 내 이름이 든 부분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자네 이름이 든 부분은 조심할 필요가 있었지. 그래서 우리는 그 밀약서를 나누어 작업하기로 했지. 내 이름이 든 부분을 자네가 가지고, 자네 이름이 든 부분은 내가 가지고 일을 진행하다가, 작업이 끝나면 양쪽이 나누어진 종이를 승려 덕중에게 주어 온전한 밀약서로 보관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작업을 끝내고, 약속했던 대로 밀약서의 일부를 승려 덕중에게 전하려 했네. 귀성군을 시켜서 말이지. 직접 전하지 않고 무엇 때문에 귀성군에게 시켰냐고 묻고 싶겠지. 당시 나는 귀성군과 임영대군을 내 기획에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다. 특히 밀약서를 귀성군이 전했다는 것은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나와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는,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이 되는 것이지. 그런데 귀성군은 여종 덕중에게 그것을 건네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귀성군이 여종 덕중에게 건넨 그 종이에 자네 친필 이름이 들어 있었던 것이네. 이런 저런 정황을 이어 맞추어보니까, 소용 박 씨는 귀성군에게 받은 ‘백팔장’이라는 이름을 귀성군의 별명쯤이나 혹은 은밀히 둘이만 아는 이름으로 착각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 소용 박 씨가 백팔장 모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귀성군도 백팔장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고 대답한 것은 모두 사실이었네.
백팔장, 이런 모든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 마음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 아시지 않은가. 백팔장, 내가 자네에게 완전히 오해를 푼 과정을 설명해주겠네. 사실 귀성군이 백팔장 모임과 정말 연관이 없는지에 대해서는 안심이 되지 않았다네. 그래서 귀성군을 여러 절을 돌아다니게 했다네. 승려 덕중을 찾아오라는 명목으로 말일세. 혹여 연관이 있다면 절을 돌아다니면서 반드시 백팔장 모임의 회원이나 자네와 연통을 할 테니 말일세. 하지만 귀성군은 어느 절의 누구와도 특별한 접촉이 없었네. 자연스럽게 자네와도 연관이 없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되었네. 그래서 귀성군을 궐로 돌아오게 했다네. 중전이 친잠례에 귀성군을 초청하면서 자연스럽게 돌아오게 된 셈이네.
백팔장, 이제 자네와 나 사이의 믿음과 우정은 다시 회복된 셈이네. 하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네. 귀성군이 서찰을 승려 덕중에게 전하지 않고 여종 덕중에게 잘못 전했다는 말을 듣고, 즉각 소용 박 씨의 유품들을 살펴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네. 자네가 가지고 있어야할 밀약서의 일부분이 버젓이 소용 박 씨의 방 벽에 붙어 있었단 말이지. 소용 박 씨가 숨겨 놓았다가 처소에서 끌려가 국문을 당하기 직전에 드러내놓은 것으로 파악되었네. 108자 훈민정음 어지 서문만 붙어 있다고 들었기에 별 염두에 두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조사하는 과정에서 상선이 종이를 덮어 숨겨놓은 그 끝의 ‘총일’이라는 이름을 찾아낸 것이네. 그 말을 전해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짐작할 수 있겠지. 자네가 가져간 밀약서 일부분, 필요한 작업이 끝나면 승려 덕중이 보관하기로 한 것이 어찌 그 벽에 붙어 있단 말인가. 내가 자네를 의심하는 상황이었다면, 이것만으로도 나는 자네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게 되었을 것이네. 하지만 가만 생각하니 내가 보관하기로 한 밀약서도 실수가 있었으니, 자네에게도 의도치 않은 어떤 일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하게 되었네. 어떻게 된 사연인지 알려주게. 곧 계룡산 절에서 있게 될 전체 백팔장 모임을 위해서도, 그간의 오해를 풀고 만나야 하지 않겠나.
이유1 씀
1 세조의 성은 ‘이’ 씨이고, 이름은 ‘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