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회
상선 전균이 임금에게
1466년 7월 4일
주상전하,
중전마마의 초청으로 귀성군이 친잠례에 참석하는 것이 확실해졌음을 아뢰옵니다. 이번 친잠례에도 귀성군은 정해진 같은 자리에 가서 서게 될 것이 확실하옵니다. 바로 채상단 뒤쪽의 왼쪽에서 일곱째 뽕나무이옵니다. 소인이 전하의 윤허를 받아 뽕나무에 바늘구멍을 내기 위해 오늘 새벽 원유에 다녀왔습니다. 귀성군이 바늘구멍 잎사귀를 찾아낸다면 그것은 분명 사전 약속이 있었던 것일 테고, 귀성군은 그 다음 행동을 취할 것이니, 이로써 귀성군과 소용 박 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옵니다. 문제의 뽕나무에 가보니, 주상전하, 그곳에는 이미 바늘구멍이 선명하게 나 있는 잎사귀가 보였습니다. 뽕잎에 새겨진 글자는 열 십 자(十) 여섯 개였습니다.
十 十 十
十 十 十
주상전하, 예전에 소인이 건네 드린 뽕잎의 바늘구멍 모양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十
十 十 十
十 十
十
十 十
木
소인의 어리석은 머리로 푼 글자가 백팔이었다고 감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뽕나무 상(桑)자는 약자로 나무 목(木)과 세 개의 열 십 자(十)로 나타나는데, 木과 세 개의 十을 합치면 (十 十 十 十 八)마흔 여덟이 됩니다. 위 뽕잎 바늘구멍은 木에 十이 아홉 개 합쳐졌으니 백팔이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번 뽕잎에 난 바늘구멍은 열 십 자가 여섯 개뿐이니, 감히 육십이라고 해석해 보았습니다. 바늘구멍은 이미 며칠 전부터 나 있었던 것으로, 죽은 소용 박 씨와 귀성군 사이를 연결하려는 누군가가 궐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상차 강원종은 바늘구멍을 낸 사람이 잠녀인 것 같다고 하면서도 누군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고 하옵니다. 귀성군과 연결되어 있는 어떤 끄나풀이 틀림없습니다. 오늘 새벽, 원유의 뽕나무밭에서 보았던 바늘구멍 난 뽕잎을 따오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내일 소인이 귀성군의 동태를 살펴, 주상전하께서 찾으시는 해답을 반드시 얻을 것이옵니다.
주상전하, 소용 박 씨가 남긴 유품들을 샅샅이 살펴 서찰이나 종이는 하나도 빠짐없이 가져오라 명하신지 며칠이 지났습니다. 감찰상궁에게 물어보니, 소용 박 씨 연서사건이 터졌을 때, 중전마마께서 소용 박 씨의 방을 정리하도록 보명상궁에게 명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소용 박 씨 방의 열쇠를 빼돌린 보명상궁이 중전마마를 핑계 삼아 그 방을 샅샅이 살펴보고 갔다고 하옵니다. 물건들을 그대로 두면 분실될 우려도 있고, 또 그 물건들이 소용 박 씨의 연서에 관한 소문들을 더욱 거세지게 만들 것이기 때문에 소용 박 씨 물건이라면 머리카락 하나도 잘 챙기라고 중전마마의 엄명이 내려졌다 하옵니다. 하오니 소용 박 씨가 유언이나 서찰을 남겼다면, 보명상궁의 손을 통해 중전마마께 갔을 가능성이 있사옵니다. 소용 박 씨의 유품은 내명부 소관이니 중전마마의 명은 당연한 것이옵니다.
소용 박 씨가 머물던 전각은 일 년째 비어있고, 사람들이 발길하기를 무서워하는 곳이라 다행히 몰래 들어가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박 씨의 유품은 모두 치워진 상태였고, 글자라고는 벽에 적힌 부왕이신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어지 서문이 전부였습니다.
훈민정음 언해본의 어지 서문을 특별히 첨삭 하지도 않았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었습니다. 소용 박 씨와 가까이 지냈던 나인들과 비자들은 그것을 본 기억이 없다고 했으니, 귀성군에게 보낸 서찰이 발각되어 내금위로 끌려가기 직전에 소용 박 씨가 그 글귀를 드러내놓았을 가능성이 있사옵니다. 벽의 글씨를 숨겨놓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종이로 덧발라 숨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종대왕 어지 서문의 마지막 ‘할 따름이니라’라는 부분 뒤의 종이를 조심스럽게 벗겨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종이 한 장이 뜯어져 나오면서, 그 끝에 ‘摠一’이라는 글자가 나타났습니다. 총일! 소용 박 씨가 세종어지 서문만 보여주고, 이 ‘摠一’은 일부러 숨겨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흔히 모두 뭉쳐서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總一’을 사용하는데, 소용 박 씨의 벽에 숨겨져 있는 글자는 ‘摠一’이니 무슨 뜻으로 쓰진 것인지, ‘總一’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정도가 아는 전부이옵니다. 게다가 ‘摠一’은 인출한 것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쓴 것이 분명하나, 부족한 소인이 그 글자의 주인을 짐작할 수는 없었사옵니다. 귀성군과 소용 박 씨 사이에 얽힌 비밀과 반드시 관련이 있으리라는 생각에만 머물고, 머리가 어리석어 황송하게도 이렇게 풀지 못한 수수께끼를 그대로 주상전하 앞에 올리게 되었사옵니다. 주상전하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엎드려, 감히 이 서찰을 올립니다.
상선 전균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