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회
기미상궁 오 씨가 기미상궁 주 씨에게
1466년 4월 19일
이보게 동생, 잘 있는가. 나는 까막눈이라서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게. 자네가 보내준 서찰에 무슨 내용이 담겼는지 한동안 알아볼 수가 없었게. 궐에서 나온 서찰이라 자칫 다른 사람에게 읽히다가 뒷감당을 할 수 없으면 어짤까나 맘이 안 놓여, 한동안 지니고만 있었게. 최근에 궐에서 평생소임을 완전히 마치고 나온 이가 있어, 그치에게 좀 읽어달라고 했게. 믿을 만한 사람이니 너무 걱정 말게. 지금 ‘그치’가 내 말을 받아서 적으면서, 헤벌쭉 사람 좋게 웃고 있게.
동생, 내가 궐에 남지 않은 이유가 마음속 남정네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나. 파뿌리처럼 허옇게 센 머리로 무슨 정분을 기대하고 궐을 나섰겠나. ‘그치’가 지금 나를 빤히 쳐다보는구먼. 내 마음은 이미 문종 임금님이 돌아가셨을 때부터 궐을 떠나버렸게. 문종 임금은 거의 30년 가까이 세자 자리에 머무르셨는데, 얼굴이 잘 생기셨고 수염도 잔잔하고 부드러운 것이 멋이 있지 않았나. 효성이 지극하셔서 부왕인 세종 임금님 보살피는 일을 친히 하셨게. 기미상궁처럼 아예 세종 임금이 드실 약을 직접 맛보고 수라상도 직접 살피셨게. 한번은 세자저하께서 기미하시고 나도 기미한 음식을 세종 임금님이 드시고 가벼운 배탈이 나신 적이 있게. 세자저하께서는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창백한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부왕 앞에 나가 자기 탓이라고 사죄를 하셨는데, 그 자리를 물러나서는 도리어 나를 위로해 주셨게. 자네가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는지 알 것 갔구먼. 궐 안에서 오십 년 살면서 기뻐서 눈물을 흘려 보긴 그것이 처음이었을 것이게. 기미상궁의 고초를 처음 알아준 사람이 그분이었게. 임금님께서, 속이 쓰리다 하셔도 사람들이 제일 먼저 나를 찾거나 마치 내가 독 넣은 음식을 가려내지 못한 것처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식이었으니, 세자저하의 그 한마디가 평생 얼마나 위로가 되었던지.
그처럼 지극한 효자셨지만, 서책을 좋아하신 탓에 많이 움직이는 습관이 없으시다보니 몸이 점점 불어나 이런저런 병이 생기셨게. 안질과 치질 뿐만 아니라, 온천 요양 중에 허리를 다치신 후부터는 자주 통증을 호소하셨게. 왕이 되셨을 때는 이미 등에 큰 종기가 나 있었는데, 그 길이가 한 자 가량이나 된다고 들었게. 등에만 난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허리에도 큰 혹 같이 둥근 종기가 났는데, 통증이 심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게 되었게. 아무리 아프셔도 중신들과의 업무가 끝난 뒤에나 전의를 불러들이시니, 병이 깊어만 갔었게. 전의들은 고름을 짜내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했게. 여러 왕을 모셨지만, 문종 임금을 모실 때만큼 애틋했던 적이 없었게. 음식에 독이 들어 있어 내가 죽게 된다 해도 그분을 살릴 수만 있으면 괜찮다는 마음이 있었고, 수라상을 받으실 때마다 건강을 회복하시라는 기도를 하면서 기미를 했지.
어, 문종 임금이 돌아가시니, 마치 내 소임을 다하지 못한 느낌도 들고 더 이상 기미상궁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게. 어린 왕이 오르시니, 또 하루하루 그 긴장감이 더해갔게. 문종 임금의 후손이시니 마치 문종 임금 모시듯 모셨게. 하지만… 결국, 그렇게 가셨네. 그 뒤로 궐을 떠날 생각만 줄곧 해왔게. 사람들은 기미상궁을 부러워하지만, 기미상궁의 소임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자네는 알아가고 있을 것이게. 평생 기미상궁으로 일하면서 남은 것이라고는 더 이상 맛을 느끼지 못하는 혀 밖에 없게. 음식이 들어와도 짠지 매운지 맛을 느끼지 못하게. 의원들은 내가 이 약 저 약을 섞어서 먹은 탓이라 하는데(여러 임금님들의 탕약을 기미 하느라 섞어 먹은 탓이라고), 하지만 내가 진단하기로는 너무 긴장한 상태에서 매번 숟가락을 입에 넣는 세월을 오래 살아, 언젠가부터 혀가 더 이상 맛을 느끼려 하지 않는 것 같았게. 내 혀지만 이해가 갔게.
내가 이런 이야기한다고, 밖으로 새어나갈까 서찰을 받아 적는 사람을 걱정하지 말게. 지금에사 말하지만, 지금 내 말을 받아 적어주는 ‘그치’는 예전에 동생에게 살짝 언급했던 대령숙수일게. 연회 음식을 만들면서, 그치가 궐에서 했던 마음고생을 들어보니 어쩜 그렇게 나하고 똑같은지, 마치 내 과거를 그치의 입을 통해 듣는 것 같았게. 서로 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다 보니, 두 사람이 한 생을 나누어 산 느낌이었게. 이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이야기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게. 우리가 주고받은 말 다른 곳으로 새어나갈 일 없으니 염려 말게.
대령숙수, 아니, 앞으로는 그냥 ‘그치’라고 부를게. 그치는 곧 중촌에 음식점을 차릴 계획이게. 청계천 북쪽을 북촌이라 하고 남쪽을 남촌이라 하는 것은 알았지만, 나도 궐 밖에 나와서 청계천 변을 중촌이라 하는 것을 알았게. 북촌에는 임금님도 사시고 풍수가 좋으니 자연히 지위가 높고 훌륭한 벼슬을 한 고관대작들이 많이 살고, 남촌에는 몰락한 양반이나 하급 공무원들이 모여 산다고 하더게. 중촌에는 청계천 변에 시전이 형성되어 수많은 점포가 늘어서 있게. 각종 종이를 파는 지전, 건어물을 파는 어물전, 비단을 파는 면주전, 중국에서 수입해 들어온 비단을 파는 선전이나 거친 베를 파는 청포전, 왁자지껄 장사치들과 중인들이 모여, 사람 사는 느낌이 나는 곳이게.
대령숙수는 조선 땅에는 없는 음식점을 만들 생각이게. 시전에는 사람들이 많지만 음식을 제대로 먹을 곳이 많지 않게. 보통 땅을 판 뒤 큰 솥을 걸어놓고 장국밥을 말아 파는 정도게. 사람들이 길에 쪼그리고 앉아 먹거나 서서 마셔야 하는 음식 정도게. 음식점이 없으니, 여행자들도 쌀과 멸치와 미역을 봇짐에 지고 집을 나서서, 해가 지면 여염집에 들러 쌀을 내주고 밥을 얻어먹지 않게. 주막에서는 말을 쉬게 할 수 있고 봉노방이나 대청마루에서 잠을 청할 수 있지만, 음식을 제대로 해주는 곳은 없게1. 대령숙수는 여행자나 시전 상인들이 전을 지불하면,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을 하고 싶어 한다게. 아, 놀라지 말게. 기생들이 있는 여각이나 관리들이 일을 끝내고 술을 마시는 고급 음식점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게. 여행자나 장사치들이 편안하게 앉아 따뜻한 음식을 들 수 있는 음식점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게. 그치가 나에게 도와달라고 하는데, 음식 맛도 못 느끼는 혀로 무엇을 도울 수 있을지. 혀가 풀릴 음식을 해준다고 하니 기다리고 있다게.
이건 아직 비밀이지만, 그치가 만들 음식점의 특별 요리가 꿩고기라게. 나처럼 그치도 문종 임금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 많다게. 특히 꿩고기인 치육으로 요리해 바칠 때마다 기뻐하던 문종 임금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하게. 그때 사용된 꿩이 바로 임영대군의 댁에서 온 것이어서 더욱 더 기뻐하시면서 드셨다고 하게. 임영대군께서 아주 좋은 꿩을 구해 궐로 보내면서 임금께는 알리지 말라고 했지만, 그치는 그 사실을 임금께 귀띔해드리곤 했다는게. 알면 부담스러워 할까 봐, 쉬쉬 임금님 모르게 좋은 꿩을 바치는 아우를 두었으니 얼마나 속으로 기뻐하셨게. 그치가 치육으로 넣어 만든 만두나 치육을 올린 십자냉면을 수라상에 올릴 때면, 임금은 임영대군에게 해야 할 감사를 그치에게 했다고 하는게. 우리는 음식점을 차리면 문종 임금을 기리는 마음으로 치육을 사용한 특별 요리를 음식점에서 팔기로 마음을 모았다게.
동생, 요즘도 주상전하께서 수라상에 애기나인을 두시는가. 내 생각에는 주상전하께서 동생의 기미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다른 연유일 것 같은게. 애기나인을 수라상에 앉힌 것이 소용마마 연서사건 이후에 일어난 일이라면, 주상전하께서 소용 박 씨를 잊지 못해서 그러시는 것일게. 임금님이 입맛이 없으실 때는 소용마마께서 왕자군 아지와 함께 드셔서 음식을 잘게 잘라드리기도 하고 같이 기미도 하셨으니 말이게. 왕자군 아지의 재롱을 보시며 활짝 웃으시는 날에는 임금님이 거뜬히 밥그릇을 비우셨게. 너무 염려 말게. 중전마마께서 주상전하의 입맛을 되찾아드리려고 애기나인을 수라상 앞에 앉힌 것 같은게. 지금 생각해보면 주상전하께서 왕자군 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수라상 앞이었게. 휴.
동생, 궐 밖으로 나와서 보니, 궐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백성들이 어쩌면 그렇게 자세하게알고 있는지 깜짝 놀랄 일이게. 물론 부풀려지고 보태진 부분이 있지만, 사건들의 본모습은 거의 알고 있는 상 싶게. 그래서 백성들이 무서운 모양이게. 그치가 팔 아프고, 서찰을 쓸 종이가 모자란다고 그만 쓸 것이라고 하게. 또 소식 전하게.
오 씨
1 드라마에서 보면 주막에는 주모가 있어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조선전기에는 주로 물물교환이었고, 음식을 파는 음식점이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