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1회
백팔장(百八張)이 백팔장의 회원들에게
백팔장(百八張)이 백팔장의 회원들에게
1466년 2월 13일
백팔장이 알린다.
하나, 왕손이 태어나다.
오늘은 나라에 경사가 있는 날이다. 궐 안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 새 세자빈의 첫 아기가 태어나신 날이다. 열 달 전부터, 경이롭게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양수 속에서 힘차게 호흡하며, 세상을 향해 점점 강하게 자신을 알리는 맥박과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올 준비가 되어가는 동안, 우리도 많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아이는 천하의 감축을 받을 것이다. 그동안 왕족들이 끊임없이 저 세상으로 갔으니, 이 새로운 왕족 아기의 탄생은 백성의 슬픔을 위로하고 잠재울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찰마다 군왕께 축하의 말씀을 올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나, 백팔에 대해 설명하라.
최근 소용 박 씨 사건으로 백팔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충천하다. 백팔이 불교와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아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무조건 거부하면 의심을 더욱 사게 될 것이니, 적당히 대답을 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백팔에 대한 물음을 받게 되면, 이해하기 쉽게 백팔번뇌로 설명을 시작하라. 백팔은 불교 숫자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백여덟 가지의 느낌이며, 그 느낌에서 백여덟 가지의 번뇌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 백발번뇌에서 벗어나 한 과를 얻기 위해, 백여덟 개의 목환자를 꿰어 만든 백팔염주를 만들어 돌린다고 말해주거라. 하지만 백팔번뇌는 인간의 번뇌를 백팔 종류로 세분해본 것일 뿐, 그 근원은 하나임을 설명하라. 백팔번뇌는 본래의 자기인 일심을 잃는데서 오는 것, 일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백발번뇌를 끊는 길이 최상의 길이다. 백팔에 대한 질문을 하는 분이 있으면, 염주라도 하나씩 건네 드려라. 108개로 된 백팔염주가 여의치 않으면, 54개로 된 반수염주나 27개로 된 사반수염주도 좋으리라. 이번의 위기를 도리어 불교를 전하는 계기로 삼거라.
하나, 밀약서의 비밀을 지켜라.
뭐든 성할 때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느니라. 군왕께서 불교를 사랑하시어, 궐 가까이에 원각사를 지으시고, 궐내에 간경도감을 설치해 불교 서책을 간행하시며, 궐내 행사에 방방곡곡 승려들을 초청하시고 계신다. 하지만 현왕 즉위 전에 우리가 겪은 차별과 고통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요즘 궐 안팎으로 백팔에 대한 궁금증이 하늘을 찌르니, 자칫 그 관심이 엉뚱하게 우리 백팔장으로 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소용 박 씨에 의해 이런 상황에 도달한 것은 유감이다. 국문을 당하는 과정에서 군왕에게 어떤 말을 남겼는지 알 수는 없으나, 소용 박 씨가 알고 있는 백팔의 의미는 한계가 있다. 그 뒤에 감춰진 진짜 비밀까지 누설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지금 와서 그것이 세상에 드러난다면, 군왕은 물론 장차 우리의 앞날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질 것이다. 밀약서는 도처에 있지만, 그 누구도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이 선문선답의 의미를 알 것이다. 모두가 하나같이 비밀을 철저히 지키도록 해야 하느니라.
백팔장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