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회
감찰상궁이 제조상궁에게
감찰상궁이 제조상궁에게
1465년 12월 10일
마마님, 한 해가 끝나갑니다. 지금까지 지켜본 사항을 다음과 같이 보고합니다.
첫째, 보명상궁에 관한 것입니다. 맥아리 없는 눈동자와 느릿한 태도는 여전하지만, 최근 동궁을 자주 들락거리는 것이 눈에 띕니다. 세자빈의 산달이 다가오니 중전마마께서 신경을 쓰시는 것은 당연하지만, 왜 하필 보명상궁인지 마음에 걸립니다. 지난 유월 친잠례가 끝나갈 즈음 세자빈이 구토를 해서 얼마나 혼비백산을 했습니까. 잠실의 답답한 공기 때문에 숨이 막혀 그런 것이라 여겼는데, 알고 보니 회임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때 중전마마께서 부정타지 않도록 세자빈의 회임 소식을 입에 담지 말라고 상궁들에게 금언령을 내리지 않으셨습니까. 소용 박 씨가 처형을 당한 직후였기에, 그 원귀가 태아에게 보복을 할까 저어하여, 그러신 것으로 헤아려집니다. 마마님은 중전마마께서 왜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 그 이유를 아시는지요?
마마님, 주상전하께서 형제의 혈족이나 측근을 죽이면 같은 해에 전하의 혈족이나 측근이 그에 짝하여 죽어갔지 않습니까. 의경세자가 궐에 들어와 2년 만에 죽었을 때, 항간에는 문종의 현덕왕후가 “내 아들을 죽였으니 네 아들도 죽이겠다”고 주상전하의 꿈에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합니다. 게다가 의경세자 가신 후, 해양대군이 세자가 되셨고, 한명회 대감의 딸이 열여섯의 나이에 세자의 첫 번째 세자빈에 책봉되셨습니다. 세자빈은 이듬해 첫 아들을 낳고 바로 죽었습니다. 문종 임금의 부마인 정종을 죽인 뒤였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 그 어린 원손인 인성대군이 죽은 해애 어린 아지 왕자군이 죽었습니다. 잘 생각해보면 정말 ‘짝’이 딱딱 맞아 떨어지게, 같은 해에, 아드님들이, 혹은 며느리나 부마가, 어린 왕자들이 죽어간 것입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인성대군은 세자의 아들이고 아지 왕자군은 전하의 서자이니, 두 분 모두 주상전하의 혈족 아닙니까. 응보에 따른 결과라면, 두 분 중에 한 분이 주상전하의 혈족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쇤네 생각이 아니라, 사람의 입들이 이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야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더 가관인 것은, 이제 소용 박 씨를 죽였으니, 올해 안에 누가 그 응보의 대상인지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라 합니다. 누가 주상전하의 편이고 누가 형제의 편인지 헤아려 구분하고 있다 합니다. 어쩐 일인지 중전마마는 소용 박 씨의 죽음에 상응하는 대상이 세자빈의 복중에 들어 있는 원손이 아닐까 걱정하시는 것 같은데, 그 또한 이상하지 않습니까. 얼마 남지 않은 올해가 무사히 지나가면, 중전마마의 걱정도 사라지고 괜한 소문이었다는 것도 밝혀질 것입니다.
마마님, 그동안 지켜본 결과, 보명상궁은 중전마마의 일정을 챙기거나 작은 종이서류를 만지는 것 외에도, 무엇인가 기록하는 작업에 하루 중 상당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한 일입니다. 매일매일 있었던 일을 기록하거나 일기를 쓰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마마님, 지난 번 소용 박 씨의 방 자물쇠 사건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립니다. 하필이면 소용 박 씨 거처의 자물쇠를 흘렸을 것이며, 그것이 또한 왜 하필 중전마마의 눈에 띄어 보명상궁 손으로 넘어갔겠습니까. 필시 쇤네의 수중에 있던 자물쇠를 손 빠른 자가 빼낸 것이 틀림없습니다. 제 수중의 자물쇠를 빼내갈 수 있다면, 궐 안의 무엇인들 빼낼 수 없겠습니까. 보명상궁의 짓이라면, 궐내의 그 어떤 것도 그년의 수중에 넣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마마님, 보명상궁의 정체를 밝혀야 합니다. 내명부 질서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나인들이나 상궁들이 지니고 있는 서찰들을 압수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별 의심 없이 보명상궁이 끊임없이 써대는 그 무엇인가도 손에 넣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둘째, 기미상궁 오 씨가 드디어 궁녀로써의 직분을 벗고 출궁하게 되었습니다. 네 살 때 애기나인으로 입궐하여 출궁하기까지 50년을 궐에만 머물렀으니, 궐 밖에는 특별한 연고도 가족도 없어진지 오래라고 합니다. 정읍원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기보다는 궐 뒤 궁녀들이 끼리끼리 모여 사는 궁말에 갈 계획이라 합니다. 그것이 참,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도 모른다고 하더니, 마마님 놀라지 마십시오. 그렇게 점잖고 조용한 기미상궁이 마음에 사내를 품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석 달 전쯤에 궐내연회 음식을 담당하는 대령숙수가 궐 밖으로 나간 일, 기억하시는지요? 나이도 들고 병도 있고 해서 내보내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대령숙수 때문에. 기미상궁이 정읍원에 들어가지 않고 궁말로 가는 것이라 합니다. 기미상궁과 대령숙수는 ‘부부’ 맹약을 했던 모양입니다. 정읍원에 가면 사내를 가까이에서 볼 가능성이 없지만, 궁말에 가면 그래도 대령숙수를 한번이라도 만날 가능성이 있으리라 여기는 모양입니다.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쇤네는 얼마나 놀랐는지, 그리고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심했습니다. 그런데, 궐 안에서 애정 행각을 벌인 것도 아니고, 여태 감찰상궁인 쇤네도 눈치를 채지 못할 만큼 마음의 짝으로만 지낸 것인데, 차마 떠나는 마당에 죄를 물을 수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마님께서 그 죄를 물으라 하시면,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마지막 가는 길을 중벌로 다스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찰상궁 강 씨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