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회
상선 전균이 상선 김처선에게
1465년 11월 30일
처선이 이놈, 형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 제끼다니, 엉덩이가 근질근질하느냐? 그렇게 조심성이 없으니 허구헌 날 주상전하께 꾸지람을 듣고 곤장이나 맞지. 하지만 오래간만에 내 이름 부르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좀 나아지는구나.
처선아. 그러지 않아도 너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요즘 당혹한 상황에 몰려 있다. 지난 칠월 칠석의 다음날인가 사정전에서 연회가 벌어졌는데, 말하자면 소용 박 씨 처형 뒤풀이 술자리였다. 그때 찬품단자에 올라온 어만두를 빼고 대신 꿩만두를 올린 일이 있다. 무슨 다른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임영대군께서 주상전하를 위해 꿩을 직접 가지고 입궐하셨기에, 아드님이신 귀성군의 연서사건 때문에 마음이 무거우신 듯하여 마지막 순간에 어만두 대신 꿩만두로 바꾸었을 뿐이다. 전의감과 상의한 것은 아니지만, 과거 종기로 고통 받으시던 문종 임금을 위해 꿩고기 요리를 많이 올리도록 조치했다는 기록을 본 직후였다. 기억을 더듬어 봐. 문종 임금 때 너와 내가 좋은 꿩을 얻기 위해 임영대군 댁까지 드나들었잖은가 말이야.
그런데 그 연회가 끝나고부터 주상전하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지셨다. 소용 박 씨 사건으로 충격을 받으셔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나를 보시는 눈빛이 예전 같질 않으시다. 게다가 당시 연회의 요리를 맡았던 대령숙수가 궐 밖으로 나가도록 조치된 것을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나이도 있는데 요리하는 일이 워낙 고되고 지병도 있어 궐 밖으로 내보낸다 하지만, 그의 출궁이 연회와 무관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처선아, 막상 주상전하로부터 박대를 당하고 주상전하의 속내를 알 수 없는 처지에 놓이고 보니, 주상전하께 구박받는 네 처지가 조금 이해가 되더구나.
이제 와서 곰곰 생각해보니, 어만두를 꿩만두로 바꾼 것이 주상전하의 상처를 건드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연서사건 때문에 주상전하와 임영대군 사이가 금이 갈까봐 마음을 졸이던 차에, 임영대군께서 사죄의 뜻으로 꿩을 가지고 친히 궐에 입궐하셨기에 반가운 마음에 급하게 대령숙수를 닦달하여 꿩만두를 준비한 것이었다. 헌데 그게 문제였다. 내가 한 가지만 생각하고 두 가지를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주상전하와 소용 박 씨의 사랑 이야기 알고 있지. 두 분을 연결했던 고리가 바로 꿩이었다고 들었다. 사냥 가서 잡아온 꿩을 소용 박 씨에게 키우라고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사랑이 싹텄다고 하잖냐. 그런데 소용 박 씨의 처형 뒤풀이 술자리에 눈치 없는 놈이 꿩만두를 올리다니! 내가 왕이라도 나 같은 놈이 미울 것이다. 휴, 빨리 시간이 흘러 주상전하의 심기가 편안해지시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처선아, 이 형님이 이름을 부르는 것을 허락할 터이니, 환관들의 바짓가랑이를 끌어내리는 일은 좀 미뤄주었으면 좋겠다. 꿩만두 사건도 그렇지만, 또 환관들의 이상증후가 음식과 관련 어쩌구 하는 소문이 돌면 내가 더 궁지에 몰리게 될 것이다. 사실, 환관들에게 평소와 다른 특별한 음식을 배포한 일도 없고 새로운 차나 약을 준 적도 없지만, 시기적으로 좋지 않다. 더구나 아랫도리를 내리기에는 날씨가 너무 춥지 않느냐. 봄이 와서 날씨가 따뜻해지면, 그때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솔직하게 내 느낌은 그럴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다. 한두 명의 환관에게 이상 징후가 나타나는 모양인데, 그런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궁녀들 중에도 입가에 제법 긴 수염이 달린 것을 본 적도 있다. 염소 다리가 세 개 달린 채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
처선아, 궐 밖에서 백성들이 셈하는 죽은 자들의 수가 드디어 백팔에 도달했다고 하더라. 숫자 세는 재미에 빠져 있던 백성들이 이번에는 그 백팔 번째 죽음의 당사자가 맞다 아니다로 싸움질들을 하고 있다 한다. 백팔 번째 사람으로 거론되고 있는 사람은 맙소사,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렵다. 어린 왕! (아차, 노산군으로 강등되었지, 버릇이 돼나서) 노산군은 스스로 목을 매고 죽었기에, 그에 합당한 장사를 지내주었다.1 그런데 현왕이 죽인 백여덟 번째 사람이 바로 그 노산군이라는 것이다. 쉬쉬하면서도 이것 때문에 백성들이 언쟁을 벌이고 멱살을 잡기도 한단다.
우리가 아는 바로는, 현왕의 즉위 3년 째 되는 해, 경상도 안동의 관노 이동이 금성대군이 모반을 꾀한다고 고변하였다. 그 뒤에도 금성대군이 유배지인 순흥에서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노산군을 복위하려는 반란을 꾀한다는 고변이 들어와, 당시 좌찬성 신숙주가 주상전하 앞에 나가서 금성대군과 어린 왕을 사사하기를 청하였다. 그 뒤 양녕대군, 정인지 대감 등이 어린 왕과 금성대군과 어린 왕후의 아버지인 송헌수를 죽일 것을 청하였을 때 드디어 사사의 명이 내려졌다.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받들어 영월로 가니 노산군은 이미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들었다. 감이 익어가고 있었으니 아마도 그때가 가을이었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백성들 사이에서는 어린 왕의 죽음에 대해 서로 의견들이 엇갈리는 모양이다. 스스로 목을 매어 죽은 자살이라고도 하고, 사약을 받아 처형당했다고도 한다. 그 마지막 순간을 정확하게 아는 자가 누가 있겠느냐. 안다 한들 입 밖에 낼 자가 누가 있겠느냐. 그것은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졌다. 자살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어린 왕이 스스로 활줄에 노끈을 감아 올가미를 만들어 목에 걸고 죽었다고 한다. 사사라고 믿은 사람들은, 어린 왕이 사약을 받아 마신 후 뜨거운 온돌방에 들어가서 죽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세는 현왕이 죽였다는 쪽이어서, 사약을 받고 죽어가는 부분에 대한 묘사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사약을 막 마신 어린 왕을 온돌방에 밀어 넣고, 끊임없이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는 것이다. 사약은 뜨거운 성분인 부자였는데, 부자의 열성과 뜨거운 온돌 기운이 어지럽게 엉켜 어린 왕을 지옥의 불처럼 고통스럽게 지지고 달구었다는 것이다. 소용 박 씨 연서사건으로 성심이 편치 않으신 주상전하께서 이번에는 어린 왕의 죽음에 대한 잔인한 소문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계신다.
처선아, 지금 환관들의 바짓가랑이 안이나 들여다볼 정도로 한가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느냐. 주상전하를 바로 모시기 위해 충심을 다할 때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 서로 힘을 합치자. 그동안은 일부러 네 입장을 몰라라 했지만, 앞으로는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이 형님에게 알리거라. 그건 그렇고, 한때 정음청에서 감독하는 일을 맡았던 상차 강원종이 내게 『훈민정음 언해』 원본과 『월인석보』 1권을 가져다주었다. 이런저런 일로 바쁘기도 하지만, 그것을 들여다본다 한들 백팔의 비밀이 있을 리 만무하다. 네가 경복궁으로 불러들인 잠실의 방비리가 이것을 보고 싶어 한다고 상차 강원종으로부터 들었다. 잠실의 과거 수확이니 훈민정음 언해니 이것저것 관심이 많은 친구인데, 호기심 때문에 심신이 고달프고 출세에 지장이 있는 너와 같은 부류가 아니겠느냐. 이 서책들을 보내줄 터이니, 방비리에게도 보여주도록 하여라. 그 놈도 나에게 한번 인사 오도록 해주고, 옛일보다 지금에 더 충실하도록 일러 주거라. 특히, 처선이 너, 그놈들 바짓가랑이는 끌어내리지 마라.
상선 전균 씀
1 단종의 죽음은 『조선왕조실록』의 1457년 세조 3년 10월21일(신해)에 ‘노산군이 스스로 목매어서 졸(卒)하니, 예로써 장사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