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잠녀 고아라가 환관 방비리에게
잠녀 고아라가 환관 방비리에게
1465년 9월 30일
지난 번 나리께 서찰을 쓸 때는, 예의도 체면도 없었어요. 상황이 너무 다급해서 뭐라고 썼는지 사실 지금은 기억조차 잘 나지 않아요. 친잠례를 코앞에 두고 누에들이 하얗게 죽어갔으니, 앞이 막막했지요. 중전마마의 체면과 명예는 물론, 잠녀들의 목숨과 생계가 달린 문제였으니 제 정신이 아니었던 셈이지요. 휴… 나리께서 문제를 해결해 주셨으니 망정이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해요. 친잠례 때는 도리어 중전마마로부터 비단까지 하사받았으니, 나리께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리! 작년과 올해 누에의 양에 대해 비교조사 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망설이다가, 서찰을 올립니다. 저는 경복궁 내잠실에서 일한 지 삼년 째로, 혹여 도움이 될까 하여 말씀드립니다. 재작년과 작년, 누에들이 고치를 짓고 번데기가 되는 과정은 지켜볼 수 있었지만, 고치 안에서 나방이 나오는 과정부터는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말씀드리기가 민망해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저… 암나방이와 수나방이가 만나서… 그러니까 수나방이가 암나방이를 찾아와서… 알을 낳기 위해서 뭔가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시집 안간 잠녀는 볼 것이 못된다고 저희들을 물리쳤습니다.
올해 암나방이와 수나방이가 만나는 장소에 물론 저희들은 없었지만, 나리가 계시지 않았습니까. 이상한 것은 재작년과 작년에는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누에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는데, 올해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세 잠동 중 한 잠동의 누에들이 병이 들었는데도 수확량이 작년과 거의 비슷한 이유가, ‘그 과정’에 누에 손실이 적었기 때문이 아니겠는지요. 혹여 도움이 될까 해서 말씀드립니다.
저, 나리께 긴히 상의드릴 일이 있습니다. 기억하시는지요? 누에들이 병든 시점에 제가 소용마마를 찾아뵈었던 일을요. 소용마마는 제 어려운 상황을 들으시고 즉각 나리와 연락을 취하라는 말씀을 주셨고, 저는 나리께 도움을 요청하는 서찰을 드렸습니다. 그때 소용마마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나리의 도움을 받지 못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저는 아마 다시는 궐에 들어와 일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뿐 아니라, 누에를 키우는 기간 외에도 뽕잎이나 다른 물품 관리를 위해 계속 잠실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순전히 나리 덕분입니다. 늙은 어미를 봉양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나리는 저와 제 집안의 은인이십니다.
그런데 나리, 제가 그때 소용마마를 뵌 것이 마지막일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렇게 떠나실 줄… 죄송합니다. 마음이 울컥하여… 소용마마께서는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 아셨는지, 저에게 서찰 한 통을 남기셨습니다. 잠실 사건이 너무나 급박하던 때라, 당시 저는 그 서찰의 내용을 여쭤보지도 않고 받아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소용마마께서 그렇게 가시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나 할까요. 무섭고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 건네받은 서찰을 모르는 척 없애 버리려 마음먹은 적도 여러 번 있었지요. 하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은 그 분의 마지막 부탁을 차마 묻어버릴 수 없었습니다.
서찰을 건네시면서 소용마마는 그 서찰을 받을 자는 알려주시지 않고, 서찰을 전하는 방법만 알려주셨지요. 시키는 대로 해 보았으나 실패하고 말았어요. 나리를 만나면 자초지종을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소용마마의 서찰은 여전히 제 손에 있어요. 제가 이 사실을 나리께 고백하는 이유는, 제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소용마마께서 나리와 연락을 취하라고 하셨으니 어쩌면 두 분이 이전부터 서로 알고 계시는 관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적어도 소용마마가 나리를 신뢰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에요. 더구나 나리는 저의 은인이시니, 이 일로 저를 곤경에 빠뜨리지 않을 분이십니다. 상의할 사람이 전혀 없는데다가, 내용도 모르는 서찰을 잘못 간수하고 있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그 뒤는 상상하기도 하기 싫어요. 나리, 죄송하지만 소용마마께서 마지막 가시는 길에 편히 눈을 감으실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내잠실의 고아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