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회
하동부원군 정인지가 승려 만우에게
1465년 8월 15일
천봉, 이 나라 도성 한복판에 원각사가 세워지는 판국에 천봉은 왜 보이지 않으시는가. 과거 세종임금 초기시절처럼, 사찰과 승려들을 모두 도성 안에서 쫓아내 산으로 몰아넣던 때라면 몰라도, 지금처럼 버젓이 운종가에 절을 짓는 마당에 무엇이 무서워서 얼굴을 내밀지 않으신다는 말인가. 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민가(民家) 2백여 호를 헐어내고 그 자리에 청기와를 팔만 장이나 쓴 법당(法堂)을 세웠으니, 그 웅장함을 보고 싶지 않으신가. 더구나 사리탑에는 오만 근이나 되는 구리종을 달았다네.
구름처럼 이산저산을 떠도는 천봉이 부럽지만, 속세를 떠난다하여 속세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네. 왜 그런고 하니, 주상전하께서 몽유도원도를 찾고 계시는 모양일세. 안평대군이 강화도로 끌려가고 교동으로 유배된 후 사사되는 과정에서 사라져버린 그림말일세. 그림을 찾으시는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소용 박 씨가 죽어가면서 ‘백팔 글자’라고 말했다(산속에만 있어 모르고 있다면 소문을 들어보게나)는 전갈을 받으신 주상전하께서 화공 안견을 불러들여 몽유도원도를 찾으라 하셨다네. 안견이 신숙주에게 이를 알렸고, 신숙주가 나에게 알려 와서, 나도 자네에게 알리는 것이네. 그 그림이 소용 박 씨의 연서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내가 어찌 알 수 있겠나. 답답한 심정에, 수년 전 그날 안평대군의 별장 치지정에서 돌아와서, 내가 잊지 않으려고 기록해놓았던 것들을 뒤져보았네. 몽유도원도에 대해 안평대군이 쓴 칠언절구의 시가 남아 있더구만.
世間何處夢桃源
野服山冠尙宛然
著畵看來定好事
自多千載擬相傳
이 세상 어느 곳을 도원으로 꿈꾸었나.
은자의 옷차림새 아직도 눈에 선하고
그림으로 그려놓고 보니 참으로 좋다
천년을 이대로 전하여 봄직하지 않는가.
안평대군의 찬시! 당시에 느꼈던 느낌과 지금의 느낌이 같으신가. 모든 것이 다르게 와닿지 않으신가. 우리는 말 그대로 꿈같은 순수한 도원을 찬미했으나, 결국 우리는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그림에 줄줄이 낙관을 찍은 사람들이 되고 말았네. 당시 그 그림이 어떤 목적으로 어떤 의도로 그려졌건 현 상황에서 불온하다 하지 않을 자가 있겠나. 꿈의 도원은 마치 안평대군이 꿈꾸어 오던 세상과 새로운 권세로 해석될 수밖에 없게 되었네. 시 속의 ‘여러 천년(多千)’도 몽유도원도가 ‘영원히’ 전해지면 좋겠다는 의미였지만, 역모의 빌미가 되려면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도 죄가 없다하지 않으니, 여러 천년(多千)이 천년사직이라고 주장한다면 어찌 그 표현이 무고하다고 하겠는가. 안평대군이 꿈꾸는 도원으로 천년사직을 이어가고 싶다고 해석할 테니 말일세.
주상전하께서는 몽유도원도에 대해 들으신 적은 있으나 눈으로는 확인한 바가 없으시니, 그 그림에 찬시를 붙였던 자들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고 계시지는 못할 걸세. 몽유도원도에 찬시를 붙였던 이는 안평대군 이외에도 나와 신숙주(申叔舟), 이개(李塏), 하연(河演), 송처관(宋處寬), 김담(金淡), 고득종(高得宗), 강석덕(姜碩德), 박연(朴堧), 김종서(金宗瑞), 이적(李迹), 최항(崔恒), 박팽년(朴彭年), 윤자운(尹子雲), 이예(李芮), 이현로(李賢老), 서거정(徐居正), 성삼문(成三問), 김수온(金守溫), 최수(崔脩) 그리고 자네 만우1(卍雨)가 아닌가.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안평대군을 포함해서 22명이었고, 이들 중 다수가 반역의 거두로 오인 받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네. 그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살아남은 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 누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것도 싶지 않네. 천봉 자네가 어느 산 어느 절에 있는지 알아내는 것만 해도 여러 날이 걸렸다네.
주상전하께서 몽유도원도를 찾으신다는 말을 화공 안견으로부터 전해 들은 신숙주는 불편한 심기로 서둘러 몽유도원도를 찾아 그 안에 우리가 쓴 찬시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전해왔다네. 껄껄, 신숙주를 ‘숙주나물’이라고 하는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지 않나. 그 그림에 우리가 찬시를 붙일 때는 상황에 따라 찢어버릴 만큼 변덕스러운 마음으로 붙인 것이 아니었으니. 주상전하가 그 그림을 찾으신다 하여 자신이 쓴 시를 없애버리려 하다니 그야말로 숙주나물같이 쉬 쉬어버리는 마음 같지 않은가. 주상전하께서 그 그림을 찾으시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내가 쓴 시를 스스로 무화하면 어떻게 선비로써 시정과 믿음을 지킬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림을 찾아내도 내 찬시를 찢어버릴 생각은 없네. 자네는 어쩔텐가?
주상전하께서 몽유도원도를 찾으시는 이유가 소용 박 씨의 유언인 ‘108글자’와 무관하지 않다고 하는데, 자네는 혹시 아는 바가 있는가. 108은 불가에서 신성수로 다루는 숫자 아닌가. 혹여 소용 박 씨가 말하는 108자가 불교의 신성수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108에 얽힌 특이한 의미가 있으면 알려주게나. 자네는 안평대군과 깊은 우정을 나누었고, 안평대군의 죽음 이후 산을 떠돌며 살고 있네. 만에 하나 그림의 행방을 안다면 말해주게나. 내 바람은 그 그림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당분간은 아니 앞으로 천년간은 찾지 못했으면 하는 것이네. 그림이 그림으로 그 본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을 때까지 말일세.
이 서찰을 들고 가는 내 종자에게 답장을 써서 돌려보내 주게나. 언제 다시 연통이 서로 닿을지 모르니 말이네. 조심하게.
정인지 씀
1 만우(卍雨)는 몽유도원도에 찬시를 붙인 사람들 중 유일한 승려인데, 호가 천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