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환관 방비리가 상선 김처선에게
1465년 8월 1일
상선 어른, 오늘 궐 밖 내시부1에 다녀왔습니다. 나간 김에 내시마을에 잠깐 들렀었는데, 최근 소용 박 씨 사건에 연루되어 죽은 환관 김중호와 최호 아내들의 삶이 비참하다고 합니다. 고자에게 누가 시집을 오겠습니까. 환관의 아내들이란 진작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거나 가난 때문에 팔려온 경우가 대부분 아닙니까. 고아나 다름없는 처지의 여인들이 다시 지아비의 보호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으니, 그 딱한 모습이 이루 말할 수 없다 합니다. 게다가 소용 박 씨의 서찰이 연서가 아니라 모반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풍문 때문에, 자칫 말려들까 염려하여 그들을 돕기는커녕 가까이하지도 못한다고 합니다. 차마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것은 비록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는 하나, 환관의 아내들은 평생 처녀의 몸이 아닙니까. 속설에 환관의 아내와 정을 통하면 과거에 급제한다는 말까지 있어, 이래저래 학문이 모자란 과거 응시생들이 이들을 겁탈하겠다거나 돈으로 사보겠다는 농과 은밀한 시도를 심심찮게 하고 있다고도 하니, 산 사람이 죽은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을 정도로 비참하다 들었습니다. 존경하는 상선 어른, 환관의 위상을 위해서라도 그들의 처지를 외면하지 마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상선 어른, 내시마을을 떠도는 또 다른 소문이 있었습니다. 남성액 분비가 없는 환관들은 얼굴이 궁녀들처럼 희게 변하고 목소리도 가늘어지고 수염이 나지 않는 것이 정상이 아닙니까. 정사를 통해 방사를 하지 못하니 몸의 기운을 소모하지 못해 살이 찌기도 합니다. 보통 사내들이야 남성액의 영향으로 머리털이 빠지기도 하지만, 환관들에게 그런 현상은 일어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몇 환관들에게 탈모현상과 함께 수염이 자라나는 변고가 있다고 합니다. 환관에게 대머리현상이 나타나다니, 이 무슨 조화일까요? 이 때문에 환관들 사이에서는 정말 고자인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합니다. 소문이 은밀하게 돌고 있으니, 더 확대되기 전에 상선어른께서 이를 확인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상선어른, 궐로 돌아와서 더 의문스러운 사건과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친잠례와 양잠을 결산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점입니다. 상선 어른도 아시겠지만, 누에가 4번의 잠을 자고 나면 5령이 됩니다. 5령이 되면 뽕 먹는 것을 멈추고, 약 3일에 걸쳐 고치를 만듭니다. 고치 하나에서 근정전을 가로지르고도 남을 정도의 긴 실이 나오지 않습니까. 고치를 지은 후 약 3일이 지나면 그 속에서 번데기가 생겨나고, 그 후 12∼16일이 되면 나방이 됩니다. 그런데 상선 어른, 친잠례 직전에 세 잠동 중 한 잠동의 누에들이 병이 들지 않았습니까. 대략, 세 마리 중에 한 마리는 고치가 될 수 없었습니다. 한 잠동이 병들었으니 당연히 올해 누에량은 작년 것보다 적어야 하는데, 그 량이 작년과 비슷하게 나왔습니다. 소인으로써는 다행한 일이지만, 작년과 올해 양잠 방식의 어떤 차이가 이런 결과를 불러왔는지 세밀하게 살펴볼 작정입니다. 그 원인을 알아내면, 앞으로 보다 많은 누에나 비단실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상선 어른, 소인은 창덕궁 잠실에서부터 경복궁 잠실까지 거의 10년을 잠실에서 보내온 몸입니다. 워낙 잠실에 오래 있다 보니, 나름 양잠의 이치를 터득한 듯합니다. 누에를 키우면 비단실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유익한 부산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뽕의 빨간 열매인 상실(桑實) 혹은 오디는 새콤달콤해서 주전부리로도 좋지만, 말린 오디를 이용하는 상심주는 오장을 보하고 눈과 귀를 밝게 한다고 합니다.
최근 강 상차가 저에게 뽕잎차를 주었는데 오줌발이 시원찮은 제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설레발이 있기는 하나 좋은 친구입니다. 백화증에 걸린 누에(白?蠶)들과 누에알을 낸 종이(蠶布紙)도 한방에서 약용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제사(製絲)과정에서 나오는 번데기는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누에똥도 가축사료로 그만입니다.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으니, 여러 유익한 부산물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곧 찾아뵙겠습니다.
방비리 배상
붙임말: 잊었습니다. 최근 소용 박 씨의 백팔 자가 훈민정음 언해본과 관련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상차 강원종에게 훈민정음 언해본을 보여 달라고 할 작정입니다. 한때 정음청에서 일했으니 훈민정음 언해 원본을 소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구해지면 상선어른께도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조선시대 내시부는 궐 안이 아니라 궐 밖 경복궁 옆(현재 효자동) 마을에 있었고, 내시부에서 파견된 내시들은 궐 안의 내원반에서 일했다. 내원반에는 오랫동안 궐 안에 머무는 장번내시들이 주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