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상선 전균이 상차 강원종에게
1465년 7월 14일
원종이 이놈아, 지난 번 뽕잎을 쥐고 선 너를 보니, 뭐랄까, 꼬인다고 할까. 목소리나 가녀린 몸이 완연한 여자가 아니더냐. 아니 머리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고 입주변이 오므라드는 모양새라니! 젊은 할매가 되어 가고 있었다. 원종이 이년아, 내가 왜 너에게만 관대하냐고? 계집 같은 너에게 험악하게 굴 것도 없다. 게다가 네가 나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이런저런 소문이나 주변 상황을 나에게, 고맙게도 네 자신의 판단은 개입시키지 않고, 사실 그대로만 잘 전해주고 있지 않느냐. 나쁜 머리 운운하며 이런저런 사실들을 나열해놓는 술수를 내가 모르겠느냐. 그것이 나에게 중요한 귀띔이 된다는 것을 네 년은 잘 알고 있다.
가지고 온 뽕잎도 마찬가지다. 우선, 환관 방비리의 오줌발이 시원찮아 뽕잎 차를 건넸다? 네 말 그대로 믿는다. 한데, 우리의 기대와 달리 친잠례는 별 문제없이 치러졌다. 사실 잠실에 아무런 변고가 없어서 네가 나를 속인 것이 아닌가했다. 섭섭해 할 것 없다. 알아보니 친잠례를 거행하기 직전에 누에 세 잠동 중에 한 잠동에 변고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한 잠동의 누에가 하얗게 굳어가는 병에 걸렸다. 그것이 참, 방비리는 이 사실을 중전마마께 그대로 고해 바쳤다. 중전마마는 방비리의 충고를 받아들여 병든 한 잠동을 매병1을 위한 약으로 사용하겠다고 주상전하께 말씀드렸다. 그것이 참, 주상전하께서 크게 기뻐하시면서, 앞으로는 누에가 병들어도 약으로 쓸 수 있으니 더욱 누에치기를 장려해야겠다고 하셨다. 방비리는 병든 누에로 도리어 신임을 얻었다. 그것이 참, 전화위복이라고 해야겠지.
방비리가 보통 놈이 아니다. 원종이 네 년이 일러준 대로, 이번에 ‘그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정말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방비리 때문에 환관들이 아내들에게 구박을 받게 생겼다. 비록 양물2은 없으나 여자를 안고자 하는 감정은 남아 있어야 여자들을 곁에 둘 수 있다. 방비리나 너는 곁에 여자가 없으니 이런 마음을 알지 못할 것이다. 양물이 없는 지아비의 심정이 어떻겠느냐. 그래도 그동안 잠실 덕분에 사내구실은 하고 살았는데, 당분간 나뿐만 아니라 많은 고자들이 밤마다 괴로울 것 같다. 어찌 되었건 그동안 우리가 몰래 ‘수나방이’를 퍼내었다는 사실을 들켜서는 안 된다. 친구라 하여 방비리 앞에서 자칫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방비리가 경복궁을 떠날 때까지는 참도록 하자.
네 년이 가지고 온 뽕잎의 바늘구멍에 쓰진 글자? 무엇인지 알아냈다. 어쩌면 그것이 소용박 씨의 백팔 글자의 비밀을 풀어줄지도 모른다. 뽕잎에 있던 구멍은 그야말로 백팔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글자가 백팔이 되느냐하면, 뽕나무를 상목이라고 하지 않더냐. 뽕나무 상(桑)자를 쓰는데, 약자로 쓰면 나무 목(木)과 세 개의 열십자(十)로 나타낸다. 즉 木과 세 개의 十를 합치면(十 十 十 十 八) 마흔 여덟이 된다. 그래서 마흔 여덟 된 자를 상년이라고 한다. 아래 뽕나무 잎사귀 구멍은 木에 十이 아홉 개 합쳐졌으니 얼마가 되느냐. 바로 백팔이 되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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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
원종이 이년아, 너는 더 자주 잠실에 방비리를 보러 다녀야겠다. 잠실 뽕나무에 바늘구멍을 낸 잠녀가 어떤 년인지, 왜 백팔을 뽕나무 잎에 새기는지 알아보도록 하여라. 원유에 허가없이 드나들던 유일한 사람이 소용 박 씨다. 틀림없이 소용 박 씨의 백팔 글자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더구나 너는 한때 정음청에서 일한 놈이 아니냐. 내가 알기로 정음청도 이번 백팔 글자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궐내 돌아다니는 소용 박 씨의 연서를 읽어 보았느냐? 공교롭게도 『월인석보』안의 훈민정음이 언급되어 있다. 음, 정음청이라! 활자 제조와 인쇄를 맡은 주자소 외에 언문에 대한 서적을 연구하는 언문청이 있는데, 왜 정음청이라는 인쇄기관을 따로 만들었을까? 지금에야 슬슬 정음청의 본색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집현전 학자들의 요람이나 다름없는 언문청에서 감히 불교서적을 간행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집현전 학사들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유교사상에 젖어있었으니까. 그래서 정음청을 따로 만들어 겉으로는 ‘소학’이나 ‘삼강행실도’등을 번역했지만, 실제로는 불교와 관련된 서적을 언문으로 번역했을 것이다. 당시 그곳에서 일했으니 잘 알 것이다. 유학자들이 끊임없이 정음청의 실체에 대해 의심을 가졌던 일말이다. 게다가 음, 당시 정음청은 수양대군의 주도하에 있었다.
백팔의 비밀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소용 박 씨가 죽어가는 형장에서 내뱉은 것이니, 하루 빨리 그 어둡고 더러운 비밀을 알아내어, 확 제거해버려야 한다. 그래야 주상전하의 옥체를 상하게 만드는 혼란과 슬픔의 기운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주상전하께서는… 내가 아끼는 원종이 이년아, 앞뒤가 잘 꿰맞춰지지 않아도 좋으니, 부지런히 나에게 귀띔해주기 바란다.
전균 씀
1 매병은 치매증상을 일컫는다.
2 양물은 음경(陰莖)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