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
상당 부원군 한명회가 봉원 부원군 정창손에게
상당 부원군 한명회가 봉원 부원군 정창손에게
1465년 7월 13일
봉원 부원군, 어떻게 지내시는가?
이 팔삭둥이의 설움을 잘 아시리라 여기고 있네. 다들 나에게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세를 지녔다는데, 고작 그런 권세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을 떨어뜨리는 권세를 지녀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아닌가. 세자빈으로 궐에 들어왔던 어린 딸은 손자를 낳다가 죽고, 그 손자인 인성대군은 다섯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네. 게다가 마음과 생각을 나누던 권남1이 지난겨울에 졸하고 나니 주변이 허전한 것이 마음이 제 자리를 잘 잡지 못하는 것 같네. 서로 만나 한잔하면서 같이 늙어가는 외로움이나 풀고 싶지만, 벗할 자가 없네.
요즘 소용 박 씨 사건으로 세종어제 훈민정음에 대해 말들이 많아서 부원군께 도움을 청하고자 하네. 부원군은 세종시절 한때 집현전 학사가 아니셨나. 언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으리라 생각하네. 요즘 빈청이나 언문청이나, 심지어 예문관이나 홍문관이나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소용 박 씨의 108글자에 대해 논하고 있는데, 오늘 내가 언문청에 갔을 때도 학사들의 서안 위에는 세종어제 훈민정음이 올라와 있었고, 108글자가 무슨 뜻인지 갑론을박하고 있었네. 죽은 소용 박 씨의 방벽에 세종어제 훈민정음 언해가 붙어 있는데, 정확하게 108자라는 것이 확인되었네. 이것에 대해 아는 바가 있으신가?
언문청의 학사들은 시끄러운 분위기로 토론을 하다가, 내가 들어서니 입을 꽉 다물어버렸네. 그런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외로움이 사무친다네. 영의정을 지내고 세자빈의 아비인 부원군이었던 것이 무슨 소용인가. 집현전이 없어진 것이 마치 나 때문인 것처럼 여기니, 마치 나를 학문이나 글자와는 무관한, 무식한 옛날 경덕궁지기로 바라보던 그때 그 눈빛들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네. 그래서 내가 정색을 하고 무슨 논의를 하고 있었는지 물었더니, 한 젊은 학사가 마지못해 아래와 같이 적힌 종이를 펼쳐 보여주었다네. 세종어제 한문본과 언해본을 비교해놓은 것이었지.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세종어제 훈민정음 한문본이 54자이고, 언해본이 108자라는 것이네. 나는 그것이 우연이라는 생각에 듣고만 있었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축자적 번역에 따르면, 그러니까 한자 한 글자 한 글자에 언문이 대응되도록 번역하면, 이렇게 108 글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더구먼. 축자적 번역을 하게 되면 108자가 아니라 110자 이상이 되었을 터인데, 누군가가 이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108자로 꿰맞춘 것 같다는 것이네. 일부러 조사를 두개 겹쳐 쓰거나 심지어 한자에는 있는 단어를 언해본에서는 생략을 한 것도 있다고 하더구먼. 그렇게 해서 일부러 글자 수를 짜 맞춘 것이 역력하다고, 다들 수긍하는 눈치였네. 부원군 생각은 어떠신가.
자네는 한때 집현전 학사였고, 훈민정음 창제 반대로 파직까지 당한 경험이 있으니 훈민정음에 얽힌 많은 일들을 알고 있을 것이네. 백팔 글자에 대해 아는 것이 있으면 속 시원히 좀 알려주시게.
한명회 씀
1 권남은 권람의 옛 이름으로 1465년 2월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