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보명상궁이 정희왕후에게
보명상궁이 정희왕후에게
1465년 7월 13일
소첩이 중전마마를 뫼시게 된 것은 하늘이 내린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전마마, 내금위로 잡혀갈 때, 소용 박 씨는 다시 살아 돌아오기 힘들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박 씨의 유언을 찾아 전각 안을 샅샅이 뒤졌으나,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서찰이나 그 비슷한 어떤 것도 찾지 못했고, 글자라고는 오로지 벽에 있는 세종어제 훈민정음 언해뿐이었습니다. 혹여 그 속에 유언을 숨겨 놓지 않았나 의심해보지만, 우리가 보아 온 세종어제 훈민정음 언해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소용 박 씨와 가까이 지냈던 나인들과 비자들에게 캐물어보았지만, 이전에는 벽에서 글자들을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귀성군에게 보낸 서찰이 발각되고 내금위로 끌려가기까지, 금족령이 내려진 상태에서 쓴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세종어제 훈민정음 언해본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인데, 손으로 쓴 글씨가 아니라, 활자 인쇄된 것입니다. 처소에서 꼼짝도 못했는데, 어떻게 활자들을 가져다가 벽에 인쇄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전부터 벽에 있던 것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까 벽에 숨겨놓고 있다가, 끌려가기 직전에 드러나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어떤 이유로 그런 것인지, 진정 유언이 이 글자들 속에 숨어 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글자들을 여러 번 읽어보고 살펴보는 와중에, 혹여나!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한 자 한 자 세어보니, 중전마마! 놀라지 마십시오. 바로 세종어제 훈민정음 언해가 정확하게 108글자로 맞아 떨어졌습니다. 신기해서 또 세어 보았지만, 정확하게 108글자가 맞습니다. 언뜻 보면 108글자임을 알기가 어려우나, 이들을 가로로 배열해보면, 108글자로, 아귀가 꽉 맞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전마마, 소용 박 씨의 연서와 벽에 새겨진 세종어제 훈민정음 언해가 관련이 있기는 한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이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열쇠는 귀성군이 가지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중전마마, 어제 귀성군이 잠저에 다녀갔다는 소식을 잠저의 집사가 전해왔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소용 박 씨 연서 사건으로 조선 전체가 시끄러운 판국에 귀성군이 태연하게 잠저를 찾다니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소용 박 씨의 죽음 때문에 마음의 위로를 얻거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그곳을 찾은 것이라 짐작했지만… 주상전하의 명을 받잡고 왔다고 했답니다. 귀성군은 지천으로 엉킨 ‘덕중의 정원’ 나무와 넝쿨 줄기 사이를 헤치듯 걸어 들어갔다고 합니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자랄 대로 자라 하늘을 가리고 있는 오동나무 주변을 한동안 서성이더니, 그냥 돌아갔다고 합니다. 귀성군은 매우 표정이 복잡해 보였고, 심하게 주눅이 들어있었답니다.
귀성군을 살펴보라고 붙여 놓여 ‘눈사람’도 똑같은 말을 전해왔습니다. 잠저에서 나온 후에 귀성군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이 아니라, 도리어 한양의 한복판에 있는 운종가로 접어들었다 합니다. 운종가는 도성 안을 가로 지르고 있는 중심가로, 관청과 상점들이 즐비하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운집하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중국 비단과 장신구, 국산 면포와 마포, 그리고 각종 종이와 건어물과 온갖 종류의 생필품을 파는 상점들이 청계천변까지 이어져 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순간, 사람들과 우마차의 움직임이 많은 곳에 귀성군이 섞여들어 구분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귀성군을 그곳에서 놓친 모양입니다. 이리저리 비슷한 이를 따라가 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합니다. 귀성군은 주상전하의 심부름으로 잠저에 들렀다가 운종가의 시전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귀성군은 누군가를 만나러가는 듯 했다고 합니다. 운종가와 청계천을 중심으로 북촌에는 백악산과 응봉자락이 있고 귀한 왕족과 양반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귀성군은 주거조건이 나쁜, 가난하지만 기개가 높은 선비들. 청계천변의 상인들, 양반을 모시는 종들, 왕을 모시던 내시들, 성균관 소속 노복들이 이곳저곳 흩어져 혹은 모여 살고 있는 남촌으로 갔다고 합니다. 주상전하께서 하명하신 일이 무엇인지 소첩은 알 길이 없으나, 귀성군이 어찌 그쪽으로 발길을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귀성군이 다시 궐로 돌아오리라 여기고, ‘눈사람’은 경복궁 앞 육조거리에서 기다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귀성군은 궐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중전마마, 조금 더 상황을 알아보고, 뵙겠습니다.
보명상궁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