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3회
하동 부원군 정인지가 영의정 신숙주에게
하동 부원군 정인지가 영의정 신숙주에게
1465년 7월 13일
범옹1, 내가 너무 오래 산 듯하네. 세종임금 시절에는 나도 꼿꼿한 학사였으나, 문종과 어리신 단종을 거쳐 현왕에 이르면서 비바람과 번개를 맞아 휘고 구부러진 노송(老松)이 되어 버렸네. 주상전하께서 몽유도원도를 찾으시기 전에 죽을 수 있는 행운이나 찾아오기를 바라야하겠지.
무슨 연유로 주상전하께서 그 그림을 찾으신다는 말인가, 정녕, 소용 박 씨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소용 박 씨가 저자거리에서 효수되지 않고, 은밀히 교형을 당하고 보니 사람들의 상상이 도리어 머리끝까지 가 있네. 죽어가는 형장에서 ‘백팔 글자’라는 말을 남겼다는 소문이 바람처럼 돌아다닌다고 들었어. 다들 그 의미를 푸느라고 또다시 궐 안팎이 떠들썩해지고 있다니, 쯧쯧, 사람들의 삶이 참 외로우이. 술이나 마시고 헛소리나 하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하니!
범옹, 안견이라는 인간을 너무 믿지 말게. 안견이 안평대군에게서 수양대군 측으로 몸을 옮긴 이유를 돌이켜보게. 안견은 안평대군의 총애를 받으며 산수화를 열심히 그린 사람 아닌가. 안평대군은 시문을 몹시 좋아해 선비들을 곁에 두길 즐겨하셨고, 특히 안견의 그림을 좋아하시어 많이 아끼셨지. 안견도 자기를 알아주는 대군을 위해 많은 그림을 그려 바쳤는데, 그러다가 안평대군과 수양대군 사이에 권력이 이분되고 있으니,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네. 화공이니 천지의 기운을 가늠할 줄 아는 인간인 게야.
안평대군 그늘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지만, 안평대군은 화공 안견을 끈질기게 곁에 두고 싶어 했기 때문에 생각다 못해 안견이 꾀를 내었다고 들었네. 그러니까, 어떻게 된 것이냐 하면, 안평대군이 중국에서 질 좋은 용매먹을 구해 와서 안견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는군. 그런데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용매먹이 사라지고 말았네. 귀하게 여기던 용매먹이 감쪽같이 사라졌으니, 안평대군이 종들을 꾸짖을 수밖에. 그들은 한사코 모른다고 안견에게 혐의를 돌렸기 때문에, 안견은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해 보이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네. 그 순간, 용매먹이 그의 품속에서 떨어졌다고 하더군. 화가 난 안평대군은 안견을 내쫒고는 다시는 출입하지 말라고 명하셨고, 그렇게 안견은 자의반 타의반 안평대군의 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네.
범옹, 그치는 수양대군께서 정난을 준비하는 것을 알고, 결정적인 순간에 배를 갈아탄 사람이네. 우리처럼 나라를 구하고자 현왕을 택한 것과는 다르단 말일세. 하기사 세상 사람들이야 우리를 안견 보듯 하겠지. 오죽하면 쉽게 맛이 변하는 나물에 ‘숙주나물’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마찬가지로 나를 ‘늙은 여우’라고 부른다고 하더구먼. 기가 막히는 일이지만 우리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예견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은가. 그런 판국에 천한 화공의 선택을 탓할 수야 있겠는가. 허나 어린 열두 살의 왕에게 한 나라를 맡겨 수많은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고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능력 있는 자에게 맡겨 백성을 구하고 몇몇의 희생자를 내는 것이 낫다고 느꼈었네.
어떤 의미에서 화공 안견도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일세. 우리가 현명한 선택을 하였다고 여기듯이 말일세. 현명하다는 것은 내 신념이자 철학을 따랐다는 뜻이네. 허나 마음이 허전하이.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 참 부질없지 않은가. 자네가 말했듯이, 그림에도 함부로 느낌과 칭찬을 하지 못하는 신세인데, 생에 무슨 철학과 신념이 있기나 하겠는가. 그림은 그림이었을 뿐이네. 그것이 아니라면,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인가. 너무 오래 산 느낌이 드네. 뭐, 그렇다고 어린 왕의 편에 서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네. 취중진담이라고 했던가. 주상전하 앞에서 ‘백팔 글자‘의 의미를 여쭈었던 것, 단순한 취기 때문만은 아니었네. 이 나이에 무엇이 두렵겠는가. 우리 비록 현왕을 세웠지만, 한번쯤 숨겨진 진실을 보고 싶은 생각은 없는가.
몽유도원도 행방에 대해서는, 내가 승려 만우에게도 알아보겠네. 승려 만우의 행방을 알게 되면 말일세.
정인지 씀
1 범옹은 신숙주의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