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영의정 신숙주가 하동 부원군 정인지에게
영의정 신숙주가 하동 부원군 정인지에게
1465년 7월 11일
대감, 건강은 회복하셨지요?
대감, 혹여 화공 안견으로부터 연통을 받으셨는지요? 주상전하께서 몽유도원도를 찾으신다고 합니다. 소용 박 씨가 마지막 남긴 말이 바로 ‘백팔 글자’라는 말을 들으시고, 주상전하께서 안견을 불러 몽유도원도를 찾으라고 하셨다니, 무슨 일로, 이제 와서 그것을 찾으신단 말입니까.
궐 안으로 대소신료들과 학사들이 모여들고 있는데, 입궐의 목적은 각기 다르겠지만, 다들 마음이 심란한 듯 행동이 들뜨거나 얼굴이 상기된 이유는, 그들의 마음속에 일고 있는 ‘백팔 글자’에 대한 의문 때문인 듯합니다. 저마다 그 비밀을 풀기 위해 소문과 자신의 생각과 지략을 모으려고 머리를 대고 수군대고 토론하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소용 박 씨가 쓴 서찰이 연서가 아니라 역모의 서찰이라는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정확하지가 않은 듯합니다. 역모 서찰이라면 귀성군이 살아남았을 리 없습니다. 도리어 주상전하께서 귀성군을 감싸고 계시니, 이 또한 연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연서건 역모 서찰이건 주상전하께서 귀성군을 살려둘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으신 듯한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이런 애증(愛憎)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상께서 안평대군의 ‘몽유도원도’를 찾으시니,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몽유도원도를 찾게 되면 찬시를 붙인 자리에 대감과 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주상전하께서 아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찬미한 것은 안평대군이 아니라 그림이라고 주장한들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소인은 요즘 이상한 꿈에 시달립니다. 목이 잘린 머리 하나가 까만 눈동자를 연 채 허공에서 사람들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꿈입니다. 시체 꿈은 길몽이라는 설이 있으니 적이 안심은 되지만, 그 잘린 목이 아무래도 소용 박 씨의 것 같아 소름끼치기 짝이 없습니다. 소용 박 씨는 참수된 것도 아니고 더구나 저자거리에 효수된 것도 아닌데, 내 꿈속에서는 그런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소용 박 씨가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일까요.
대감, 꿈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안평대군은 꿈에서 본 풍경에 매혹되어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했고, 사람들과 더불어 찬시와 찬문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찬시를 붙인지 1년 쯤 뒤, 유람을 하시던 중에 무계동을 지나게 되었고, 바위들의 형상과 산의 형세와 꽃향기가 마치 꿈에서 본 풍경과 매우 흡사하다고 느껴, 그곳에 정자를 지었습니다. ‘무릉계에 자리한 정사’라는 뜻으로 무계정사라는 편액까지 내걸었습니다. 인왕산 기슭에 있는 그 풍광 좋은 곳에서, 학사들과 문인들과 술과 시를 즐기고 사냥도 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안평대군이 무계동에 무계정사를 짓자 이상한 소문이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종시절의 맹인 지화가 안평대군을 군왕의 운수라고 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을 뿐만 아니라, 이현로는 안평대군이 국군(國君)의 팔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또 예언서에 의하면 ‘신기를 주관할 사람이 나올 땅’이 나오는데, 그곳이 무계정사라는 말도 흘려 다녔습니다. 잘났다는 수많은 입들이 무계정사는 ‘흥룡지지興龍之地’, 즉, 용이 일어날 땅이라고 했습니다. 그 예언들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던 수양대군은 결국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결국 한명회, 권람 등과 함께 안평대군 측을 제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계유정란입니다.
계유정난 이후에 사간원이 제일 먼저 한 것이 바로 무계정사를 철거하자는 상소였습니다. 안평대군을 처형해야 하는 첫 번째 죄목도 바로 무계정사를 지었다는 것이었으니, 이로 인해 안평대군은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사사된 셈입니다. 안평대군이 꿈을 꾸지 않았으면 멸문지하를 당하지 않고, 아들의 목숨을 잃지 않고, 자신도 사약을 받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꿈이 안평대군의 미래를 조정한 것일까요? 그 꿈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안평대군이 군왕이 될 신탁을 받은 것이라고들 했지만, 도리어 그 꿈은 안평대군의 목숨을 잃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안견은 그림은 그림으로 끝나야 했다고 하는데, 혹여 무계정사라는 정자는 정자로 끝나야 했던 것은 아닐까요? 안평대군뿐만 아니라 몽유도원도에 찬시를 붙였던 사람들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들 중에 살아남아 서로 연통이 닿는 사람이 저와 대감과 승려 만우 정도입니다. 주상전하께서 그 그림을 찾으시기 전에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백방으로 은밀하게 알아보고 있으나, 대감께서 혹여 먼저 행방을 아시게 되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화공 안견은 몽유도원도를 다시 찾는 기쁨에 들떠 있습니다. 자신의 그림을 다시 찾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잔뜩 차 있으니, 집요하게 찾으려 들 것입니다. 그림만 남겨놓고 그 그림에 붙인 우리들의 찬시를 떼어내는 것이 후일에 있을 수도 있는 참사를 막는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비록 그림일지라도, 함부로 찬양하거나 칭찬할 일은 아닌가 봅니다.
강녕하시기 바랍니다.
신숙주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