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회
화공 안견이 영의정 신숙주에게
화공 안견이 영의정 신숙주에게
1465년 7월 9일
대감, 찾아뵙지 못하고, 이렇게 소식을 전하는 입장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림붓이나 잡던 미천한 놈에게 어찌 글붓이 익숙하겠나이까. 혹여 붓이 빗나갈까 염려하여 먼저 적습니다. 주상전하께서 이 미천한 놈에게 몽유도원도를 ‘은밀히’ 찾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주상전하께서 그림을 이유 없이 찾으실 리 없는데, 무슨 변고일까요. 아, 몽유도원도! 워낙 기가 센 작품이라, 또 무슨 일에 연루된 것은 아닐까요? 사람을 죽이는 칼을 만든 대장장이 심정이라고나 할까요.
세월이 흘렀는데… 어떤 그림인지 기억하시겠는지요?
기억을 조금 되살려 드리자면, 미천한 소인이 안평대군 댁에 기거하던 시절, 대군께서 이상한 꿈을 꾸셨습니다. 안평대군이 집현전 학사 박팽년과 함께 말을 타고 가다가 구름과 안개가 서려 있는 봉우리가 우뚝한 산 아래 이르셨답니다. 계속 오솔길을 따라가니 갈림길이 나타나 망설이고 있자니, 한 노인이 나타나 말했답니다. “이 길을 따라 북쪽 골짜기로 들어가면 도원에 이릅니다.” 두 분이 말을 몰아 골짜기로 들어가니, 수십 그루의 복숭아꽃과 향기가 넘치는 계곡이 펼쳐졌답니다. 안평대군은 학사 박팽년을 바라보며 “정녕 이곳이 무릉도원이다”라고 감탄하셨다지요. 마침 학사 최항과 신숙주도 뒤따라와 시를 지으며 내려왔고, 그러던 중 잠에서 깨어나셨다고 했습니다.
안평대군은 그 꿈을 강렬하게 받아들이시어, 소인에게 “그림으로 그리라” 명하셨습니다. 미천한 소신이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생각하며 꿈의 내용을 며칠 만에 그려 대군께 올렸습니다. 이런 말씀드리는 것이 어떨지 모르나, 그림으로 끝났다면, 그림은 그림으로써의 운명을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그림이 완성되고 3년이 지난 1450년 정월 초하룻날 밤의 모임이 문제였습니다. 안평대군은 그 그림을 별장인 치지정에 가져오라고 하신 후, 첫 머리에 ‘몽유도원도’라는 제첨(題簽)을 쓰셨고, 그날 그곳에 모인 집현전의 학사와 문사 20여명이 몽유도원도에 대한 찬문과 찬시를 지었습니다. 하필이면 정월 초하룻날 밤에! 정월 초하루는 한 해의 계획을 세우는 날이니, 이날 안평대군께서 무리들과 한 해의 계획(?)을 세운 것으로 의심을 산 것이지요. 모임이 있었던 날, 미천한 소인은 노모에게 세배를 올리기 위해 안평대군 댁에서 떠나, 그 자리에는 없었습니다.
대감, 이제 기억나시는지요? 몽유도원도는 왼편 하단부터 현실 세계를 전개하여 오른쪽으로 환상적인 도원 세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렇지요. 현실은 부드러운 토산으로, 도원은 기이한 형태의 암산으로 그려져,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점점 높고 웅장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아! 눈에 선합니다. 낮게 깔린 잿빛 하늘 아래, 좁은 계곡을 따라 들어가니, 나무 상치로 좁은 오솔길이 있고, 일순간 환해지는 넓은 들판에 수백 그루의 복숭아나무가 양쪽으로 펼쳐져 있는 곳에 도달하고, 오! 복숭아꽃은 그 분홍빛 물결이 대단합니다. 벌떼가 잉잉거리고 있지만 그림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변에 사람이나 가축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점이 중국의 도원도와 다른 점이지요. 지상과 천상의 중간쯤을 그렸다고나 할까요. 그림 속에 사람을 그려 넣지 않은 것은 아마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 아름답고 화려한 곳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 눈에 선합니다. 대감, 눈에 그려지시는지요? 무릉도원!, 아! 대감 죄송합니다. 화공의 피는 어쩔 수 없어, 그림 이야기를 하니 딴 세상 사람처럼 정신이 나가고 말았습니다.
주상전하께서 몽유도원도를 은밀하게 찾으시는데, 왜 대감에게 그 그림의 행방을 물어보느냐고 언짢아하시겠지만, 대감, 실은 그 그림에 찬시와 찬문을 붙인 20여명의 명단을 소인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실을 주상전하께 말씀드리려고 했다면 이미 그랬겠지만, 그 그림은 제 그림이고, 그 그림으로 인해 더 이상 사람들이 목숨을 잃길 원하지 않습니다. 이 미천한 것이 안평대군 댁에서 쫓겨나던 날 몰래 그림들을 마지막으로 훔쳐보았는데, 그때 찬시를 붙인 이들의 이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천한 화공의 피가 그때 작동했던 것 같습니다. 그림을 다시 본 감격은 잠시, ‘몽유도원도’라는 제첨과 함께 수많은 찬문과 찬시가 붙은 것을 보고 전율을 느껴졌습니다. 지금에야 고백하건데, 그것을 본 순간, 소인이 무릉도원이 아니라 ‘다른 것’을 그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나무 숲에 있는 집의 사립문이 반쯤 열렸는데, 사람도 가축도 없고, 냇가에 빈 배만이 물결을 따라 흔들리는 곳! 너무 쓸쓸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 똑같은 그림이 그토록 다르게 느껴져서, 충격으로 스스로 쫓기다시피 도망쳐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더구나 오른쪽 도원세계의 천정에 매달려 있던 종류석이…, 마치 죽은 자를 묻는 동굴 같았습니다. 무덤 말입니다. 무덤!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대감께서 더 잘 아실 것입니다. 몽유도원도는 여러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간 불행한 그림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상전하께서 그 그림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라고 하시니, 기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하기 그지없습니다. 안평대군께서 사사되신 이후, 안평대군의 별장이 대감께 하사되었습니다. 감히 추론컨대,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별장에 있지 않았나 싶은데, 혹여 대감의 손에 들어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그림의 행방을 알려 주신다면, 화공의 명예를 걸고 찬문과 찬시를 붙인 분들의 이름을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화공 안견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