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회
왕의 잠저 집사 나영이 보명상궁에게
왕의 잠저 집사 나영이 보명상궁에게
1465년 7월 1일
수양대군이 왕이 되시어 떠난 지 벌써 십 수 년째인가. 이곳은 왕의 과거가 살았던 곳이고, 왕이 쉬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돌아오셔서 쉬실 수 있는 별궁이자 잠저가 아니냐. 주인이 떠났다 하여, 다른 집들처럼, 다른 누가 주인이 되어 차지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이곳은 세월이 흘러도 기왓골의 잡초가 조금 더 자라고 담벼락의 넝쿨이 빽빽해진 것 외에 별로 변한 것이 없다. 주인이 떠난 후에 더 잘 간수되어, 연꽃은 무섭도록 싱싱하게 피고 연못 속의 금빛 잉어는 살이 쪄 움직이지도 못하고, 매를 키우기 위해 지붕 위에 매달아 놓았던 새집까지 여전하다.
서로 보지 못한 지 오래 되었다. ‘덕중의 정원’과 두 덕중의 관계에 대해 알려달라는 네 서찰을 받으니,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우리는 같은 마을의 동무였는데, 네 어미는 지금의 중전마마의 친가이신 윤씨 집안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내 어미는 수양대군의 사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양가가 혼인을 하시니, 네 어미와 내 어미는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그 후 수양대군과 군부인마님1이 왕과 왕후가 되시어 궐로 들어가시면서 너도 궐 안으로 따라 들어가 보명상궁이 되었고, 나는 계속 수양대군의 사저 아니 왕의 잠저에 남아 여집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어린 마음에 네 신세가 부럽기도 했지만, 요즘 궐 안팎으로 떠도는 소문이나 네가 해야 하는 일들을 보게 되니, 이렇게 궐 밖의 한가한 삶이 그렇게 나쁜 것 같지만은 않다.
덕중의 정원이 무엇이냐고? 두 덕중은 어떤 관계냐고?
내 어미가 본 것과 내가 들은 것들을 합쳐서 적어보도록 하겠다. 덕중(소용 박 씨)은 사람들의 눈에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였다. 몸도 가늘었고 목소리도 가늘었고, 혼자 곧잘 있었다. 사람들과 대화하기보다 나무나 풀이나 꽃과 말하기를, 말을 할 줄 모르는 것들과 말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덕중은 어려서부터 식물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효력을 지녔는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 듯하다. 처음엔 수세미물 때문이었는데, 수세미를 삶아서 끓인 물로 피부를 매끄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당시의 군부인마님(지금의 중전마마)에게 우연히 알려드린 후부터, 덕중은 호의를 얻게 되었다.
수세미를 키운다는 명목으로 처음에는 안채의 뒤뜰을 돌보기 시작하더니, 덕중은 점점 그곳에 다양한 채소를 심었고 얼마 안 가 먹을거리를 풍성하게 가꾸어놓았다. 덕중의 소일거리로 키워진 야채들이 점점 사람들의 먹을거리로 변하자, 군부인마님은 더 적극적으로 뒤뜰을 가꾸게 장려하셨다. 군부인은 안채에서 무언가 생산적인 일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기셨고, 덕분에 덕중은 다른 여종들처럼 부엌일을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과일과 채소를 길러내는 특이한 신분이 된 덕중을 집안사람들은 꽃가이라고 블렀다.
덕중이 키운 과일과 채소는 점점 그 양이 풍성해져, 수양대군을 찾는 많은 손님들까지 대접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임금이 승하하시고, 어린 임금이 즉위했을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열세 살이었던 나도 열두 살의 어린 왕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불안했으니, 어른들은 더욱 그렇게 느꼈던 모양인지, 그 즈음 수양대군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며 항상 옆에 몸집이 큰 바위 같은 장사 두세 명을 데리고 다니셨다. 어린 왕을 돕기 위해서인지 수양대군은 주변으로 사람들을 모아들였고, 사직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에취’하고 큰소리로 기침한 뒤 구부정하지만 팔을 앞뒤로 휘저으며 걷는 팔삭둥이 한명회, 팔을 옆구리에 딱 붙이고 걷거나 목구멍에서부터 닭들이 구구거리듯 말하는 권람이라는 한량, 우락부락한 홍달손이라는 자(지금은 이 나라의 대신들이 되셨다)까지 드나들었다. 집현전 직제학 신숙주도 어느 땐가부터 수양대군 댁을 드나들었다. 덕중이나 나나 작은 소녀들은 당시 군부인의 안채 뒤뜰에서 족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군부인께서 덕중에게 안채와 바깥채 사이에 넓게 비어있는 자투리땅을, 통째로, 사용해도 좋아는 허락을 내리셨다. 말이 자투리땅이지, 안채와 바깥채 사이의 땅은 수많은 과실수와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실컷 무엇이든지 가꿀 수 있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펼쳐진 큰 땅이었다. 수양대군께서 허락한 일이니, 덕중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야채와 과일을 키워 집안 식구들의 먹을거리를 만들라고 하셨다. 일손이 필요하면 집안 남자들이나 여자들을 불러다 써도 된다고까지 하셨기에 실제 덕중의 영향력은 상당히 커지게 되었다. 집안사람들은 덕중이 키운 식물들을 구경하는 것을 즐거워했고, 덕중이 키운 야채와 과일을 먹기 위해 날짜를 세며 기다리곤 했다. 사람들은 그곳을 ‘덕중의 정원’이라고 불렀다.
수양대군은 처음부터 덕중을 여자로 보신 것은 아니셨고, 가끔 뒤뜰에 들르면 덕중이 키우는 화초나 과일에 관심을 보이곤 하셨다. 덕중은 온 힘을 다해 ‘덕중의 정원’을 풍성하게 가꾸어나갔고, 군부인이나 수양대군은 그녀를 더욱더 신뢰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덕중의 정원으로 한 승려가 찾아들었다. 아니 외출했던 수양대군께서 데려온 승려였는데, 빡빡 민 머리에 눈빛이 아름답게 도드라져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목에는 길게 칼자국이 나 있었다.
그 승려는 수양대군과 특이한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이라고 들었다. 그의 본래 이름이 무엇인지는 모르나, ‘덕 있는 중놈’이라는 뜻으로 덕중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문종 임금이 막 즉위하신 가을에, 그는 포졸들에 의해 끌려가고 있었다고 한다. 도첩을 소지 않고 도성 안을 돌아다니다가 붙잡힌 것이다. 목에는 칼이 씌워져 마치 큰 죄인처럼 끌려가고 있었는데, 곁을 지나시던 수양대군이 그 광경을 보셨던 모양이다. 수양대군은 사헌부 포졸들에게 그 승려의 죄가 무엇이냐고 물었고, 포졸들은 승려증이 없어 원래 호적이 있는 곳으로 돌려보내려 하는데 혹여 도망을 갈까 하여 칼을 씌운 것이라 대답했다. 수양대군은 특별한 죄가 없는데 목에 칼을 씌워 데리고 가는 것은 잔인하다시며 칼을 벗기기를 명하셨다. 승려는 대로에서 칼을 쓰고 끌려가던 몰골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목에는 이미 길게 상처가 난 뒤였다.
그러니까 승려 덕중에게 수양대군은 은인이나 다름없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승려 덕중은 자주 수양대군 댁에 드나들었고, ‘덕중의 정원’에 자신이 심고 싶은 화초는 물론이고 심지어 벌레까지 몰고 왔다. 그중에 웃지 못할 사건이 생겼으니, 사냥을 즐기시는 수양대군께서 몇 마리의 꿩을 사냥해 오시다가 승려 덕중에게 들켰다. 승려 덕중은 수양대군에게 살생을 하면 안 되니 이미 죽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살아 있는 것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 모양이었다. 그러다보니 사냥에서 잡혔으나 질기게 살아남은 꿩이며 토끼며 다른 짐승들까지 ‘덕중의 정원’으로 들어가서 살게 되었다. 덕중의 야채를 망치지 않는, 주로 나무들과 자연수들이 심겨진 곳을 그들을 위해 내주어야 했다. 꿩이나 새를 위해서는 마른 풀로 엮어 만든 그물을 지었고, 토끼나 네 발 달린 짐승을 위해서는 작은 울타리들을 만들어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꿩과 토끼와 새들이 들어왔고, 그들은 점점 불어났으며, ‘덕중의 정원’은 나무와 화초와 가축과 산새들로 어우러져 하나의 세계를 이루게 되었다.
아! 그래, 수양대군께서 덕중에게 꿩을 키우게 하다가 사랑에 빠졌다는 항간의 소문은 아마 이런 맥락에서 생겨났을 것이다.
승려 덕중이 나타나므로 해서 ‘덕중의 정원’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는 수양대군의 허락 하에 자유롭게 ‘덕중의 정원’을 드나들었다. 별로 말이 없던 덕중이 그 승려와는 곧잘 이야기를 하는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승려는 갖가지 풀이나 야채의 이름, 부풀어 오르는 꽃씨방이나 계속 뻗어나는 식물줄기들의 변화를 덕중만큼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깊은 산속 절간에 살았던 덕중은 자연스럽게 자연에서 먹을 것을 얻는 법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사랑하는 법도 알고 있었다. 도리어 그는 ‘덕중의 정원’에 없는 매발톱, 쑥부쟁이, 금낭화, 초롱꽃, 자초기 등 야생초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덕중은 그 승려와의 만남으로 성격이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말이 없던 덕중이 그 승려와의 만남으로 입을 떼기 시작했고, 그렇게 덕중은 사람과 대화를 할 줄 아는 소녀로 자라나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덕중의 정원’과 두 덕중의 관계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거의 전부이다. 그 후 수양대군께서 궐로 들어가셔서 왕이 되시고 군부인이 왕후가 되신 뒤 덕중도 궐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렇게 ‘덕중의 정원’은 자연스레 방치되었다. 그때 심어놓은 과실수들 덕분에 ‘덕중의 정원’에는 요즘 지천으로 과일이 열리고 있다. 아무도 따먹는 사람이 없으니 과일이 다시 떨어져 거름이 되고, 더 비옥한 땅이 되어 점점 더 풍성한 정원이 되고 있다. 아예 길이 없어질 정도로 나무와 넝쿨과 풀이 무성한 곳이 되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이 잠저의 정원 안으로 가끔 돌이 날아들고 있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잠저 주변을 서성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알아보니, 덕중이 귀성군에게 연서를 보내서 궐 안이 발칵 뒤집어졌을 뿐 아니라 그것이 궐 밖까지 소문이 나서 백성들이 잠저 구경을 와서는, 이런저런 심사로 잠저 안으로 돌을 던져 넣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주상전하께 던지는 돌인지 소용 박 씨에게 던지는 돌인지, 주상전하나 중전마마께서 이를 아시면 상심이 크실 텐데, 어쨌건 소문은 점점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다. 심지어 장터에는 소용 박 씨 이야기를 들려주고 돈을 챙기는 이야기꾼이 생겨날 정도라고 한다.
소용 박씨와 귀성군의 연서 때문에 난리인데, 왜 승려 덕중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일까?
나영, 왕의 잠저에서
1 상감을 부르는 호칭은 전하이고, 세자는 저하이며, 중전, 세자빈, 후궁, 공주, 옹주, 대군, 군은 마마라고 부르고, 대군과 군의 부인을 군부인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