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
상차 강원종이 상선 전균에게
상차 강원종이 상선 전균에게
1465년 6월 29일
상선 어른, 강녕하신지요?
음, 일이 어떻게 진행되어 가느냐고 물으신다면, 친구 방비리 때문에 잠깐 망설이긴 했으나, 어찌 상선어른의 명을 거역하겠습니까. 문제는 지시하신 그대로 하긴 했으나, 결과가 애매합니다. 지금쯤이면 잠실이 온통 난리가 나서 친잠례가 취소되거나 적어도 보류되어야 하건만, 뭐, 그런 기색이 전혀 없고, 참, 누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했는지, 잠실은 잠잠합니다. 방비리는 채상단을 거의 완성하여 친잠례 준비를 끝내가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음,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이놈이 잠실을 살펴보러 갔으나, 방비리는 원칙을 내세워 원유 안으로 소인을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본래 그런 놈이니까요. 주상전하를 위한 뽕잎차를 마련할 것이라는 이유를 대고 겨우 들어갈 수 있었는데, 잠실 주변으로, 마치 개미 한 마리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참나, 방비리 식의 방어진이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잠실 안을 확인해보고 싶었으나, 규칙을 어길 명분이 없었습니다. 괜히 들어가 보겠다고 우겼다가 의심을 살 것이 틀림없어, 지나가는 말로 누에들은 건강하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뽕잎을 따고 있던 노자들은 한결같이 “지나치게 건강해서 끊임없이 먹어대는 통에 고달프다”고 답했습니다. 병들라고 해코지를 해놓았는데 누에들이 아무 일 없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 뭐, 이렇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더 어슬렁거릴 수가 없어, 방비리에게 차 만들 뽕잎이나 뜯어 돌아가겠다며 슬금슬금 원유를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한데 방비리가 쌓아놓은 채상단을 한번 봐두려고 그쪽으로 발길을 옮기다가, 얼핏 뽕나무 곁에 서 있는 한 잠녀를 발견했습니다. 잠녀가 뽕밭에서 서성댄다 하여 이상할 것 없지만, 그녀의 태도가 수상쩍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들킬 것을 염려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주위를 살피더니, 치마말기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는 듯했습니다. 제 위치에서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꺼낸 물건으로 마치 뽕잎에 바느질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작업이 마쳐진 듯, 마찬가지로 조심스런 태도로 주위를 살피고 사라졌습니다.
잠시 후, 그 뽕나무 곁에 가 보았으나 특별한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떤 비밀스런 작업을 해놓은 것 같아서, 문제의 뽕잎과 그 주변의 잎 몇 개를 따서 가져왔습니다. 혹여 독이라도 묻혀 놓은 것은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와중에, 우연히 잎사귀 하나를 허공으로 들어 보았더니, 그냥 보아서는 보이지 않던 미세한 바늘구멍들이 나 있었습니다. 햇살이 그 바늘구멍들로 선명하게 빠져 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지금 보니 뽕잎이 말라갈수록, 그 구멍들은 더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무 목(木) 위에 빛 같은 반짝거림이 박힌 것으로 이런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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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
누에라는 벌레들은 까다롭기로 유명하지요. 오죽이면 천충이라고 했겠습니까. 저렇게 뽕잎에 바늘구멍을 내놓는 것은 당연히 누에를 위한 일은 아닙니다. 혹여 바늘에 독이나 더러운 것이 묻어있다면, 당연히 누에는 금방 병이 들게 됩니다. 독이나 이상 물질이 묻어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무슨 연유로 뽕나무 잎사귀에 바늘구멍을 내놓았는지, 참나 살다 보니, 뽕잎을 지켜야 하는 잠녀는 뽕잎에 구멍을 내고, 해코지를 당한 누에들은 멀쩡하고, 친잠례는 차질없이 진행되고, 도무지 … 앞뒤가 잘 꿰매지지 않습니다.
방비리에게 잠녀의 이상한 행동을 알릴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잠실의 책임자인 방비리를 곤경에 빠뜨리게 될까 봐 조심스럽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방비리가 우리의 ‘그 일’을 알게 되면 곤경에 빠질 수도 있기에 그쪽의 약점도 하나쯤 쥐고 있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문제의 뽕잎을 서찰에 동봉했다가는 자칫 마른 잎이 바스라져 버릴 것이니, 원하신다면 가져다 보여드리겠나이다. 앞으로 원유에 뽕잎차를 빌미로 한두 번은 더 드나들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상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 상선어른처럼 칼 같은 분이 이렇게 횡설수설하는 소인을 별 꾸짖는 기색이 없으시니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앞으로 소인이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주시옵소서.
강원종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