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환관 방비리가 상선 김처선에게
환관 방비리가 상선 김처선에게
1465년 6월 27일
상선 어른의 배려로 경복궁으로 돌아온 지 벌써 보름이 더 지나고 있습니다. 강녕하신지요? 지금 막 나쁜 소식을 접하고 울적한 마음에 서찰을 씁니다. 주상전하께서 이번 연서사건의 일차적인 책임이 환관에게 있음을 분명히 했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리 아녀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서찰을 주더라도 환관은 공부를 하고 서책을 읽은 사람들이니 거절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경복궁에 첫 출근을 하던 날 그들이 잡혀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환관 최호와 김중호가 박살형을 선고받았다니, 맞아서 죽게 생겼습니다. 아니 그들은 죽을 때까지 맞을 것이옵니다. 본래 고문을 할 때는 엉덩이나 장딴지만을 때리게 되어 있지만, 박살형은 몸의 어떤 부위건 죽을 때까지 때리는 잔인한 사형법이 아닙니까. 그들의 엉덩이 살이 터져 오르고, 장딴지와 다리의 뼈가 드러나고, 어깨가 깨지고, 그리고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말 그대로 박살이 나고 말 것입니다. 살점과 피가 튀어 오르는, 그 생각을 하면 소인의 몸에 피가 끓는 듯합니다.
물론 왕실 사람들과 궐 밖 종친 사이의 문안편지를 담당하는 문안비가 엄연히 따로 있는데, 궁녀들이 부탁한다 하여 혹은 유혹한다 하여 자신의 직책을 넘어서는 일을, 비록 그것이 선의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환관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서찰 한 통을 전달한 죄로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알고 전달했건 모르고 전달했건 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서찰을 주고받은 당사자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데, 그 서찰을 전달한 궁녀들과 환관들만 죽게 생겼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면 꾸중을 감수해야겠지만, 문종 임금 때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문종 임금께서는 환관들을 수족과 같이 아끼셨기에, 우리에게 군기감, 정음청, 책방(冊房), 사표국 등 모든 기관의 감독권을 주셨습니다. 문종 시절에 받은 환관의 권한 중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다들 싫어하는 잠실 감독권 정도입니다. 과거 환관들의 위상은 무너져버렸고, 요즘은 하루가 멀다 하고 환관들이 매를 맞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고신1을 빼앗기거나, 귀양을 가거나, 죽어가는 형국입니다. 상선어른도, 현왕 즉위 후 어린 왕을 복위시키려는 정변에 무고하게 관련되어 삭직을 당하고 유배되신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소인도 경복궁 사옹원에서 쫓겨나 창덕궁 잠실로 가지 않았습니까.
주상전하께서는 계유정난에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는 정난공신의 칭호를, 즉위 과정에 도움을 준 사람에게는 좌익공신의 칭호를, 게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회유하고 충성을 얻어내기 위한 사람들에게는 원종공신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있습니다. 주상전하께서는 이 공신들에게 과분할 정도의 토지와 집과 노비들을 하사하셨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보호하고 계십니다. 상선어른, 주상전하께서 공신들에게 내린 가장 큰 상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바로 “비록 죄를 범하여도 영원히 용서한다”는, 무죄 선언이셨습니다. 공신들에게 내려진 이 후한 상 때문에 얼마나 큰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지 상상도 못하실 것입니다.
공신들 중에 가장 먼저 문제를 일으킨 이가 바로 무신 민발 어른입니다. 이석산이 잔인하게 살해되었을 때 유력한 용의자는 민발 어른이었지만, 주상전하는 공신이니 의심만으로 구속할 수 없다고 하시면서 벌하지 않았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호군 김한이 사망해 상중일 때 홍윤성 어른은 그 집에 억지로 숙박하면서 그 딸을 범하려고 했는데도, 주상전하는 큰 공훈이 있는 신하는 국가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한다며 벌주시지 않았습니다. 공신들에게 하신 약속을 철저히 지키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대우와 배려는 이미 법을 넘어선 것입니다. 이들 살인자들과 강간범들이 예조판서나 중추원 판사로 임명되고, 홍윤성은 얼마 전에 겸예조판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공신들이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주상전하께서는 더 큰 은혜를 내려주시기로 마음먹으신 듯하니, 이 일을 어찌합니까.
상선 어른, 주상전하의 배려와 지지를 믿고 공신들이 휘두르는 권력의 남용 때문에 백성들이 더없이 고달파지고 있습니다. 우리 환관들에 대한 대우는 즉위 초기에 비해 나아졌다고는 하나, 매우 선별적이고 차별적이십니다. 계유정난에 큰 공을 세웠다 하여 내시수판부사 자리를 내리시고 임금님의 음식을 관리하게 하는 등 최대한 우대하는 천 상선과 달리, 같은 상선이라도 김 상선 어른께는 작은 꼬투리에도 역정을 내시고 심지어 매를 치시고 더구나 문제 많은 환관의 뒤치다꺼리를 맡기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번 두 환관이 개입된 연서사건의 마지막 책임도 결국 상선 어른이 지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상선 어른, 연서사건과 관련된 환관들의 죽음을 그대로 두고만 봐도 되는지요. 정작 서찰의 당사자들은 멀쩡한데, 아무것도 모르고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 한 두 환관만 죽어가지 않습니까. 이 어이없는 결과에 궐내 환관들은 분노와 슬픔으로 다들 어쩔 줄 모르고 있습니다. 살인자와 강간범이 큰 벼슬을 차지하고 서찰 한 통을 전달했다는 이유로 환관들이 목숨을 잃는다면, 이 불공평함을 환관이나 백성들에게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이 방비리는 경복궁으로 온 후부터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합니다. 문종 시절과 같은 당당한 환관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 이 방비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선 어른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내잠실의 ‘문제’는 덕분에 잘 해결되었습니다. 상선어른의 도움으로 법도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어려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김 상선 어른, 덕분에 친잠례가 아무런 차질없이 진행될 것입니다.
내잠실 방비리 배상
1 조정에서 내리는 벼슬아치의 임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