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기미상궁 주 씨가 기미상궁 오 씨에게
기미상궁 주 씨가 기미상궁 오 씨에게
1465년 6월 25일
이렇게 독한 자리에서 이십 년 넘어 버텼으니, 형님도 어지간하우. 형님의 추천을 받아 기미상궁이 되고 보니, 안소주방에서 음식 만들던 시절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르겠소. 권세 있고 호사스러운 자리라고 다들 부러워하지만, 이렇게 숨 막히는 자리인줄 형님 외에 누가 알겠수. 어휴, 며칠 되지 않았는데, 머리가 하얗게 세는 느낌이라우.
제조상궁에게 불려가 혼쭐이 난 이야기, 어떻게 된 사건이냐고 물었소? 휴, 주상전하께서는 하루에 다섯 끼의 식사를 하시잖수. 초조반, 아침 식사, 낮것상, 저녁식사, 그리고 야참. 어제 아침 수라상을 받으실 때였우. 주상전하 앞의 대원반에는 쌀밥과 밑반찬과 십이 첩의 반찬이 올라가 있었고, 기미상궁인 내 앞의 소원반에는 팥물로 지은 홍반과 또 다른 탕을 차려두고 있었소. 밥과 탕을 두 가지씩 올리면 주상전하께서 선택을 하시잖우. 주상전하께서 소원반의 홍반을 원하시길래, 은수저로 막 기미를 보려는 순간이었소. 주상전하께서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물으셨다우. 눈에 보이지 않는 독은 어떻게 찾겠느냐. 형님,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말씀드렸소. 전하, 음식에 독이 있다면 수저의 색이 검게 변할 것이니 안심하시옵소서. 목소리와 숟가락 든 손이 동시에 떨리는 거 있잖우. 곧 이어 입안에 넣은 완자탕이 무슨 맛인지 모를 정도였다우. 섬뜩하고 긴장해서 꺼억 트림이라도 토해낼 것 같았소.
기미가 끝난 후, 막 숟가락을 드시던 주상전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우. 눈에 보이는 독은 몰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독을 네가 어떻게 찾겠느냐. 얼마나 내 심정이 쫄아 들었겠어. 주상전하께서 새 기미상궁에게 뭔가 전언을 주시고자 하시는 것 같았지. 눈에 보이지 않는 독이 무엇이옵니까? 알려주시면 쇤네가 목숨을 걸고 찾아내겠다고 했더니, 주상전하께서는 껄껄 웃으시면서, 짐이 그것이 무엇인지 알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겠느냐, 모든 생명은 자기를 지키기 위한 독을 가지고 있다, 그런 후 음식을 천천히 드시는 것이었소. 형님, 그 순간 내가 앉은 자리가 얼마나 무서운 자리인 줄을 알겠더라니까. 숨구멍 같은 자리! 새 기미상궁이 되었다는 사실에 들떠 내 역할을 뼛속까지 통감하고 있진 못했거든. 그제야 내 입안에 떠 넣는 수저 끝에 전하와 내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었소. 손에 진땀이 나더라니까.
주상전하께서 수라를 드시던 자리에는, 나 외에도, 두 명의 상궁이 젓갈류가 놓인 책상반 앞에 앉아 있었고, 애기나인이 주상전하께 멀리 있는 음식도 집어드리고 찬가위로 음식을 잘라 드리고 있었소. 애기나인이 수라상에 앉게 된 경위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우. 내 결정이 아니라니깐. 왜, 이태 전에 어린 인성대군이 저 세상으로 갔잖소. 아, 그러고 보니 소용 박 씨의 아지 왕자군과 세자마마의 인성대군이 같은 해에 하늘나라로 갔구먼. 여하튼 원손인 인성대군 사후로 주상전하께서는 음식의 양도 줄어들고 용안도 점점 어두워지셨잖아. 주상전하의 입맛을 되찾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하던 중전마마께서 애기나인을 수라상에 앉혀보자는 의견을 내비쳤다는 것이우. 애기나인의 해맑은 표정을 보면 시름을 잊으시고 식사를 조금 더 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소. 중전마마의 명이시니 당연히 제조상궁도 알 것이라고 여겼고, 물론 내가 제조상궁에게 미리 보고하지 못한 책임은 있지만, 이제 막 기미상궁이 된 터라 그런 절차를 몰랐다우.
형님, 그런데 이런 황당한 일이 있었다우. 주상전하께서 이름을 물으시자, 애기나인은 ‘아름입니다’, 또 나이도 물으시니, ‘아홉 살입니다’라고 대답을 올렸지. 네가 가위로 자른 달걀전을 먹어 보거라. 어린 것은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도 모르고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된 것에 들떠서 조금 큼직하게 잘라 입에 넣고 씹었다우. 다른 음식도 다 먹어보라고 권하시니, 어린 것이 음식을 하나씩 입에 넣고 씹는거라. 우리는 말릴 수도 안 말릴 수도 없어 어쩔 줄 몰라 했소. 기미는 내 소임이고, 모든 음식의 기미가 끝났는데도 주상전하께서는 마치 다시 기미를 시키는 형식을 취하시니, 나로서는 다른 상궁들 보기가 민망하기 그지 없었다우. 세종 임금대에서부터 음식과 관련된 불상사는 전혀 없었잖수. 그런데도 주상전하께서는 불안하신 것인지, 어린 것이 잘 먹는 것이 보기 좋아서이신지? 그것도 아니면 새 기미상궁이 미덥지 못한 것인지? 도무지 헤아릴 길이 없었다우.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기분 이해하겠소?
뭐, 어제 아침 물림을 저녁에 먹지 않고 사오십대 상궁들과 곧바로 둘러앉아 먹은 이유를 말하라기에, 정말 수라상 음식에 이상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그것도 한자리에서 여러 명이 한꺼번에 식사를 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소. 제조상궁은 처음에 불같이 화를 내다가, 조금이라도 음식에 대해 의심이 생기는 날이면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라는 내 단호한 대답에, 그 문제는 중전마마와 상의해보아야겠다고 얼버무렸는데, (아름이 년의 재롱이 한몫했는지) 주상전하께서 밥그릇을 다 비우셨다는 말에 마침내 기세가 누그러들더란 말이지. 형님, 글쎄 마지막에는, 감찰상궁이 하도 뭐라고 해서… 라며 은근슬쩍 나를 위로까지 하더라니깐.
순례 형님, 형님은 이제 자유 할매가 되었으니 좋겠수. 일을 완전히 놓기에는 이른 나이지만, 세종임금 시절부터 문종 임금과 어리신 단종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4대째 수라상 기미를 해왔으니, 그 세월이 얼마나 길고 끔찍했을까. 더구나 임금님들이 예외 없이 피부병과 종기에 끊임없이 시달렸으니, 그 끝없는 탕약을 매일 여러 차례 기미해야만 했잖우. 지속적으로 탕약을 섞어 기미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쯧쯧, 머리가 흰 파뿌리처럼 하얗게 변해버렸지. 그 동안의 노고를 아시는 중전마마께서 여생을 편하게 쉴 수 있게 해준다고 하셨다니, 그나마 다행이오.
들리는 소문에는 형님이 궐 밖의, 출궁한 궁녀들이 모여 사는 궁말로 가고 싶다고 했다는데, 그게 사실이우? 그렇게 떠나면 섭섭해서 어떡할라고 그라우. 마음을 굳혔으면 어쩔 수 없지만, 궐밖에 나가기 전에 한번 찾아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쓰겠어. 나가 살게 되면 계속 소식 전해주오. 형님은 까막눈이라지만 요즘 언문 잘 쓰는 사람들 주변에 많으니 부탁하면 될 것이유. 서로 소식 전하면서 살자우.
기미상궁 주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