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김옥지가 고아라에게
1465년 6월 24일
내 동무 아라야. 아 어떡하면 좋으냐. 소용마마가 나쁜 일에 말려든 이야기, 너도 들었지? 네가 슬퍼할 것을 생각하니 내 가슴이 아프다. 지금 소용마마는 거처에서 꼼짝 않고 계시고, 아랫것들만 잡혀가서 그간의 경위를 심문당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소용마마가 누구에게 연서를 보냈는지 아니?
들은 대로 옮기면, 임영대군이 귀성군과 함께 입궐하여 주상전하를 뵙기를 청하였단다. 최근 귀성군이 과거 무과시험에 급제를 했으니 성은에 감사를 드리고자 그리고 감축을 받고자 새벽부터 달려온 줄 알았대. 한데 기쁜 기색은커녕, 주상전하를 뵈러 들어가는 두 사람의 얼굴색이 새파랗게 질린 것이 아무래도 이상했다는 거지. 그들이 입궐한 것은, 글쎄, 대전상궁이 들은 것을 모모상궁이 전해 듣고 누구누구가 다시 전한 것인데, 대전에서 전하께서 그들에게 하문하시는 소리가 들렸단다.
“이것이 무엇인가?”
“귀, 귀성군이 받은 서찰이옵니다.”
“무슨 서찰이기에 이른 아침에 이것을 들고 부자(父子)가 나를 찾았다는 것인가?”
“연, 연서라 할 것이옵니다.”
주상전하께서 얼마나 통쾌하게 웃으셨는지, 문 밖에서 대령하고 있던 이들이 서로 쳐다보며 흐뭇해했단다. 오랜 피부병으로 우울해하시고 말이 없으셨던 주상전하께서 귀성군을 맞으며 그렇게 기쁜 모습을 보이셨으니, 주변도 기뻐했던 것이겠지.
“귀성군도 이제 연서를 받을 나이가 충분히 되고도 남았다. 귀성군 같은 옥골선풍에게 연서가 오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그 연서를 가로채 이렇게 궐까지 고하다니, 너무 잔인한 아비가 아닌가.”
주상전하가 임영대군을 나무라신 뒤 귀성군을 감싸 주시는 소리가 들렸단다. 그런데 임영대군과 귀성군은 아무 말도 못하고 벌벌 떨고만 있었다는 거지. 임영대군도 귀성군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주상전하는 더 큰소리로 격려까지 하셨단다.
“귀성군도 이제 사내가 아니더냐. 연서쯤은 혼자 간직할 나이가 되었다. 그것을 아비에게 보여줄 필요는 없느니라. 더더구나 숙부인 나에게까지 보고할 필요는 없느니라.”
임영대군과 귀성군이 여전히 침묵을 지키자, 주상전하께서는 그들을 민망하게 만들었다고 여기셨는지 다음과 같이 하문하셨단다.
“이왕 이렇게 연서를 가지고 왔으니 어느 처자인지 물어보아도 되겠느냐.”
주상전하는 유쾌한 말투로 물으셨고, 귀성군이 제대로 대답을 못하자, 임영대군이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대신 말했다는 거야.
“그 서찰을 보낸 것은… 궐, 궐 안의 여인입니다.”
순식간에 대전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고, 문밖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대전상궁과 전 상선이 놀라서 얼른 듣지 않은 척 자세를 바로잡았다는 거야. 그제야 임영대군과 귀성군이 아침부터 연서를 들고 입궐한 것에는 예사롭지 않은 사연이 있다는 것을 감지했던 것이지. 궐 안의 여인이 궐 밖 귀성군에게 연서를 썼다는 소리에 주상전하께서도 금방 말을 꺼내시지 못하셨던 모양이야. 침묵이 흐르고… 그렇지만 묻지 않으실 수 없었겠지.
“궐 안의 여인이라면, 그것이 누구란 말이냐?”
“덕, 덕… 덕중입니다.”
대전상궁은 재빨리 궁녀들 중에 덕중이라는 이름이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떠오르는 이름이 없었대. 안도의 한숨을 막 쉬려는 순간, 주상전하의 착잡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는 거야.
“그럴 리가 없다. 연서를 쓴 처자는 분명 궐 밖의 여인네일 것이다. 같은 이름이라 네가 착각을 한 듯하구나.”
주상전하께서 그 연서를 읽으시는지 내전이 한동안 조용하더니, 연거푸 기침을 하셨다는 거야. 대전상궁은 주상전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사람이니 주상전하의 숨소리만 들어도 용태를 알 수 있는데, 매우 큰 충격을 받으신 듯했다고 해. 한참의 침묵 뒤에 주상전하의 목소리가 들렸단다.
“직접 건네받았느냐?”
“아닙니다. 환관 최, 최호와 또 다른 환관이 가지고 왔습니다.”
여전히 미심쩍은 듯, 주상전하께서는 두 번 세 번 확인하여 두 환관의 이름을 받아내셨단다.
“서찰을 궐내 환관들이 가지고 왔다면 궐에서 나간 서찰이 틀림없겠지. 환관 최호와 김중호는 궐내 여인의 서찰 심부름을 할 입장이 아닌데 어떻게 그들이 그 서찰을 전했다는 말이냐!”
조금 전 느긋했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주상전하는 노기 띤 음성으로 소리를 지르셨다는구나. 순간, 대전상궁은 궁녀가 아니라 후궁 중에 덕중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 머리에 떠올랐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깨닫자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리더라는 거야.
“여봐라, 당장 환관 최호와 김중호를 잡아들이도록 하여라!”
이렇게 해서 환관들이 먼저 잡혀갔고, 환관들이 다시 서찰을 준 나인들을 밝힐 수밖에 없었고, 잡혀간 궁녀들은 다시 소용마마가 건네준 서찰이라고 실토를 하면서 이 지경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소용마마가 귀성군에게 연서를 보낸 것이나 귀성군이 주상전하께 연서를 갖다 바치며 나발을 분 것이나 둘 다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기절초풍을 할 일이지? 이 때문에 궐 안이 발칵 뒤집어지고 난리가 났다.
아! 어쩌면 좋으냐. 내 동무 아라야. 네가 좋아하는 소용마마를 도와드릴 방법이 없으니, 속상하지? 소용마마를 잡아 문초하라는 어명은 아직 없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 상황이!
네 동무 옥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