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제조상궁이 감찰상궁에게
1465년 6월 23일
감찰상궁 보게나.
연서사건과 관련하여 알아보았는데. 세상에!, 상상도 못 할 난감한 문제들이 얽혀 있네. 단종 임금 시절에도 세 명의 궁녀와 세 명의 별감1이 단체로 연서를 주고받다가 처벌받은 사건이 있잖은가. 이번에도 그런 사건인 줄 알았네. 자네 요청에 따라 문제의 궁녀들을 내명부 감찰부에서 다룰 수 있도록 요청하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사실을 알게 되었네. 놀랍게도, 서찰을 쓴 당사자는, 소용 박 씨의 나인들이 아니고, 바로 소용 박 씨였다네. 소용 박 씨의 절절한 마음이 들어 있다니, 연서인 셈이지! 내가 뭘 잘못 안 것인지 지금도 반신반의지만, 내명부 감찰부에 연락하지 않고 내금위가 움직인 것도 소용 박 씨가 연루되었기 때문이라 했네. 환관들과 궁녀들은 소용 박 씨의 서찰을 전하기만 했다는구먼.
감찰상궁, 더구나 그 연서의 수신자가, 아이고 가슴이 뛰는구먼, 누구인지 아는가? 그 사실을 차마 밝힐 수 없어서 내금위에서도 쉬쉬하면서, 환관들과 궁녀들을 잡아간 것이었네. 다른 남정네도 아니고, 귀성군에게! 귀성군에게 연서를 보냈다네! 귀성군이 누구신가! 주상전하의 동생인 임영대군의 아들이시니 주상전하의 조카가 아닌가. 소용 박 씨에게는 시조카가 되는 셈이지. 왕의 여자가 궐 밖 남자에게, 하필이면 왕의 조카에게 연서를 쓰다니! 이것이 사실이라면, 궐 안은 물론 조선 전체가 발칵 뒤집어질 걸세.
소용 박 씨는 여느 후궁과 다르다네. 다른 후궁들은 수양대군께서 왕위에 오르신 후 궐 안으로 들여 맞이한 분들이지만, 소용 박 씨는 수양대군의 사저에서 어릴 때부터 자라난 여종으로, 수양대군께서 왕으로 즉위하신 후에도 중전마마의 배려로 궐 안에 들어왔고, 주상전하의 성은을 입어 정3품 소용의 첩지까지 받았을 뿐만 아니라, 왕자군2을 낳으신 분이 아닌가. 궐 안에서 그 누구보다 주상전하와 중전마마의 사랑을 받았고, 남부럽지 않은 권세와 호사를 누리고 살지 않았나. 더구나 주상전하 내외와 동고동락한 세월이 얼마며, 얼마나 호의와 믿음으로 맺어져 있던 관계였나. 그런데 소용 박 씨가 귀성군에게 연서를 썼다면, 그것이 사실이라면, 주상전하나 중전마마께서 얼마나 큰 충격을 받으셨겠나. 나도 이렇게 가슴이 떨리는데… 또 이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얼마나 남세스러운 일이 되겠나.
아무래도 소용 박 씨가 아지 왕자군을 잃은 일로 정신줄을 조금 놓은 것이 아닌가 싶네. 그렇지 않다면 감히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겠나. 다섯 살밖에 안된 아기씨가 죽었으니, 기실 괴로웠겠지.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아지 왕자군에게 쏟던 정성과 애정이 엉뚱한 사람에게로 흘러간 모양일세. 이제 보니 소용 박 씨와 귀성군은 좀 특별한 사이이긴 했지. 여느 후궁이라면 종친인 귀성군과 대면할 일이 없지만, 소용 박 씨는 수양대군 사저에 살면서 숙부에게 무예를 배우러 오는 귀성군을 만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소용 박 씨와 귀성군이 알고 지내는 것을 숙모와 시조카 이상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네. 지금 소용 박 씨는 거처에서 꼼짝 하지 않고 있다 하지? 주상전하나 중전마마도 소용 박 씨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말씀이 없으시네.
일이 이렇게까지 된 이상, 내명부 감찰부는 나서지 않는 것이 좋겠네. 자칫 잘못했다가는 내명부를 잘못 다스렸다고 나와 감찰상궁까지 말려들고 말 걸세. 성은을 배반했으니, 모든 잘못은 소용 박 씨가 짊어지고 가야만 할 것이네.
감찰상궁, 소용 박 씨가 귀성군에게 보냈다는 서찰 내용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수소문 해 보게나.
제조상궁 씀
1 조선시대에 장원서나 액정서에 속한 별감은 천민이지만 환관과 마찬가지로 궐 안에서 살았다. 궁중의 각종 행사 및 차비에 참여하고 임금이나 세자가 행차할 때 호위를 맡은 하인이다.
2 왕의 서자에게 주던 작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