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작업이 끝나갈 무렵, 구내 스피커에서 영화가 상영될 예정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오후 작업은 없다는 것, 점심 식사 후에 강당으로 집결하라는 것, 영화 관람으로 오늘의 일과는 끝나니까 강당에서 나오는 대로 모든 수감자는 즉시 감방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대강의 내용이었다.
가끔 벌어지는 특별할 것 없는 행사였다. 자선단체나 종교단체에서 찾아와 개과천선하라고 중언부언 쓰잘 데 없는 소리들을 늘어놓거나 맹물 같은 종교 영화나 구닥다리 영화를 보여주었다. 수감자들은 별로 반기지 않았다. 크지도 않은 강당에 가득 모아놓은 수감자들을 향해 연사가 떠들어대는 소리들이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증폭되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 아예 잠을 청하는 수감자들이 태반이었다. 영화가 상영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행사가 벌어지는 날이면 일찍 감방으로 돌아가 지루하게 보내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수감자들은 오히려 짜증을 냈다. 감방 안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싸움도 잦아졌다.
높은 콘크리트 장벽으로 둘러싸여 직사각형으로 조각난 하늘은 눈이라도 내릴 듯 거무스레 웅크리고 있었다. 조각난 운동장으로 몰아치는 바람이 싸늘했다. 감시탑 위의 교도관들은 두꺼운 파카 속에 목을 웅크리고 발을 구르며 강당으로 행진하는 수감자들을 지켜보았다.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청주여자교도소의 모든 수감자들은 교도관들의 재촉을 받아 강당에 집결했다. 창문으로 흘러든 겨울 햇볕 속에 먼지들이 분분히 날았다.
몇몇 건강 걱정이 많은 수감자들은 얼굴을 다 가리는 마스크를 꺼내 썼다. 교무국장이 강당 연단에 올라서서 해뜩한 눈빛으로 연설을 늘어놓았다. 다행히 길지는 않았다. 그녀는 멀리 여기까지 찾아와주신 관계자 여러분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재밌는 영화 감상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는 말로 인사를 끝냈다. 수감자들은 큰 관심 없이 박수를 쳤다. 창문에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지고 불이 꺼졌다. 캄캄한 공간에서 마른기침 소리가 콩콩, 여기저기 들려오다가 잠잠해졌다.
교무국장은 뒷문 쪽으로 걸어갔다. 수감자들이 모두 집결한 다음에야 강당에 들어서 있던 김영규, 홍정우와 마주쳤다. 그녀는 인사를 건넸다. 영화 끝나면 나오셔서 차 한잔 같이 해요. 그럼요, 그래야죠. 정우는 유쾌하게 말했다. 김 변호사님도요. 교무국장의 말에 영규는 난 술이 좋은데, 하고 중얼거렸고, 교무국장은 술은 아직, 하며 먼지가 가득한 강당에서 서둘러 빠져나갔다.
영규가 몇 번이나 청주여자교소도에 드나들며 교도소장에게 부탁하고, 커피도 사주고, 포도주도 사주고, 갖은 애를 써서 겨우 마련한 시사회였다. 일주일 전에는 정우와 함께 필름을 싸들고 와서 교도소장을 포함하여 몇몇 간부들에게 미리 영화를 보여주었다. 사전 검열을 받은 셈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저녁을 같이 먹으며 술도 한잔했다. 나흘 전에야 겨우 허락이 떨어졌다.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도 영규는 교도관 한 사람을 따로 만나 한 가지 어려운 부탁을 해야만 했다.
그날 정우는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성준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그 새끼, 어릴 때부터 연애도 못했어. 누군 연애 안 하고 살았어? 왜 이리 유별스러워? 듣다못해 영규가 물었다. 성준이 듣지도 않는데 욕을 그리 해대면 기분이 좀 낫냐? 도대체 내 영화 첫 시사회가 왜 하필 교도소야? 그놈 때문이잖아.
영규는 성준의 마음을 돌려놓으려 애썼다. 서진에게는 미안했으나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서진이 교도소에서 나오면 어쩔 거냐? 결혼이라도 할 거냐? 사람이 쉽게 변하는 줄 아냐? 마지막으로 그런 말을 했을 때 성준은 알아, 하고 일어서서 멀어져가다가 돌아와 나직하게 말했다. 그거 알아? 형 지금 괴물 같아.
정우까지 불러와 둘이서 함께 성준에게 술을 퍼먹이며 설득해본 적도 있었다. 별 대꾸도 없이 알았어, 알아, 하며 술만 퍼마시던 성준은 나중에, 헤어지려는 때에 횡단보도 앞의 신호등 기둥을 한 손으로 짚고 몸뚱이를 사방팔방 꺼떡거리며 이런 말을 했다.
“이놈의 도시고 신호등이고 교도소고 법이고 뭐고 다 없다고 가정해보자.”
영규는 나 어떻게 먹고살라고, 하고 투덜거렸다.
“세상에 있는 거라고는 나하고 진이뿐이라고 치자. 우리가 어땠을 것 같아?”
영규는 잠시 생각해 보았으나 답변이 궁하여 반문했다. 내가 아냐? 성준이 되물었다.
“내가 알려줘?”
그래. 영규가 대답했다.
“알려줘?”
알려달라니까. 영규가 또 대답했다.
“정말 궁금해?”
그렇다니까. 영규가 말하자 성준은 한동안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가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할 것은 뻔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말해주겠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나하고 진이가 이 지경이 된 건 나하고 진이 때문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