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준이 쓴 이야기들은 한 조각 한 조각 분해되었다. 인물도, 그들의 움직임도 하나하나 그 타당성이 추궁되었다. 연애가 필요한가, 이 영화에? 영규와 서진이 꼭 사랑에 빠질 필요가 있는가? 영화의 통속적 재미를 위하여 만들어낸 설정 아닌가? ‘살룡전선’ 조직원들이 수사당국에게 쫓기고 도피하고 싸우는 부분, 이다지 길어야 하는가? 스릴러 영화나 액션 영화도 아닌데. 영규와 서진이 수사관들에게 쫓겨 용왕대굴로 들어간다는 설정은 얼마나 타당한가? 어째서 하필 용왕대굴인가? 배를 타고 뭍으로 탈출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야기가 꼭 재주도에서만 벌어져야 하는가?
용왕대제 준비과정, 용왕대제 지역대회와 전국대회 과정에서 인간들이 벌이는 무자비한 경쟁, 가혹한 훈련, 다툼, 질시, 편법 같은 이야기들은 재미있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계의 축약이라 해도 좋았다. 다만 군데군데 반복되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깔끔하고 매력적으로, 선명하고 냉혹하게 현실을 풍자하고 조롱할 수 있는 멋진 이야기들이 필요했다.
심사위원들 사이의 암투, 뇌물을 주고받으며 심사 과정도 엉망이 되고, 나아가서는 심사 결과를 왜곡하는 과정, 그것이 발각이 나고 수사가 시작되고, 심사위원이 자살을 하는 이야기들 역시 재미있었다. 그들은 나이 어린 후보들의 목숨을 돈 몇 푼으로 거래하고 있었고, 그들의 거래에 따라 후보들의 삶과 죽음이 뒤바뀌는 것이 냉정하고 차분하게 묘사된 것은 마음에 들었다.
플롯은 크게 보면 용왕대제와 ‘살룡전선’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성준이 별로 힘들이지 않고 써내려간 용왕대제 쪽 이야기들은 그럭저럭 재미가 있는데,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인 ‘살룡전선’ 부분은 재미도 없고 긴장감도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전반적으로 플롯도 인물 관계도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용왕대제 쪽에 좀더 비중 있는 인물들을 배치하고, ‘살룡전선’은 아예 이야기의 배경으로 밀어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영규가 나섰다. 그러면 내 역할 없어지는 거야? 내 역은 그쪽이잖아. 정우가 발끈했다. 그런 사심 버리고 객관적으로 진지하게 토론에 임할 수 없어, 형? 자꾸 그러면 당장 서울로 쫓아버린다. 아니, 아직 ‘살룡전선’을 포기할 때는 아니었다. 대안을 찾아야 했다. ‘살룡전선’을 포기하는 문제는 대안을 찾을 수 없는 경우에 다시 고려해볼 사항이었다.
각오를 하기는 했으나 성준은 영규와 정우의 추궁이 고통스러웠다. 화도 났다. 시나리오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니들이 써라, 하고 서울로 돌아가버리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는 참고 견뎠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그들의 추궁이 타당했으니까.
시나리오는 아직 초고일 따름이라는 것을 그는 거듭 스스로에게 상기시켰다. 그저 시놉시스에 약간 살을 붙인 정도에 불과했다. 브레인스토밍을 요구한 것은 그 자신이었다. 성준과 정우가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영규가 덩달아 따라나섰고, 반갑지는 않았으나 그들은 영규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밤이 깊어지자 정우는 휴식을 제안했다. 성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무래도 플롯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네. 정우가 그를 격려했다. 이 초고가 있었으니까 이런 얘기가 나올 수 있었던 거야. 이게 없었으면 이런 얘기가 어떻게 나오겠냐? 영규도 말했다. 그런 대로 재밌어.
바다는 게으르게 뒤척이고 있었고, 달빛이 바다 속 깊은 곳까지 자맥질해 들어가 푸르고 흰 빛이 물속에서 조각조각 부서졌다. 초저녁부터 바닷가 모래사장을 뛰다 걷고, 걷다 뛰며 폭죽을 쏘아 올리고 소리를 지르고 사진을 찍던 젊은 아이들은 사라졌다. 바다는 진양조의 민요라도 부르듯 한가롭고 평화롭게 출렁거렸다. 바다를 바라보는 동안 그들은 또다시 조용해졌다. 그들 사이에 오간 온갖 이야기들이 아직 방 안에 메아리처럼 떠돌고 있었으나 창을 열자 파도 소리에 그 메아리마저 씻겨 나갔다. 그 역시 비린내에 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