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그때는 몰랐다. 우리가 이렇게 크게 질 줄은, 진정 몰랐다. 월드컵공원의 빈터에서 되지 않는 펑고1)를 치다, 경비 아저씨의 퇴장 명령에 주섬주섬 글러브를 챙길 때, 그땐 정말 몰랐다. 우리의 야구가 웃겨서 쫓아낸 거라고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 마감을 미루고 소설가 박상(37)은 그날도 모르고 상암동으로 나섰다. 황금색 글러브를 왼손에 끼는 순간, 그의 오른손은 위너가 된 듯 꿈틀거렸다. 그때도 몰랐던 것이다. 그가 던진 공이 몇 미터나 날아갈지. 그 공이 날아간 궤적은 마른 남자의 숙인 고개와 비슷한 각도로 휘어졌다.
또 몰랐다. 세상에 야구를 잘하는 사람이 이토록 많을 줄이야. 평범한 땅볼을 평범하게 받아내는 것은 보기보다 놀라운 일이었다. 처음으로 다이아몬드에 섰던 우리, 다이아몬드를 한 바퀴 돌아 홈으로 귀환하기가 얼마나 험난한지 정말 몰랐다. 그때 어찌 알았겠는가. 34:3, 19:0으로 질 것을. 상상력이 풍부하면 그 인생 고달프다지만, 상상에서나 가능한 점수를 우리는 일궈냈다. 그렇게 우리는 져왔다. 이천에서, 포천에서, 시흥에서, 일산에서, 강원도 횡성에서. 시베리아 칼바람의 패배2)도 우리는 지나왔다. 감독을 맡고 있는 시인 박형준(44)이 가장 싫어하는 오렌지 주스는 ‘콜드’다.
그래도 우린 야구밖에 모른다. 각자의 글과 각자의 주량과 각자의 콧물 등을 가지고 야구 하나로 뭉쳐서 여태까지 잘도 져왔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는 목동이다. 그동안 자태를 중시하는 풍조와 KBO의 남다른 비호 아래 급격히 늘어난 장비만이 우리를 보증해주고 있다. 푸른 인조 잔디가 보인다. 언젠가 류현진이 섰을 마운드, 이종범이 자세를 잡았을 타석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예술인 리그가 벌어진 대한민국의 겨울, 승리의 기운이 구인회의 찌들고 허약한 신체를 휘돌아 감는다. 문학을 사랑하는 회계학 전공자 정재욱(34)은 회비를 걷기 전, 팀의 사기를 드높인다. “야구, 몰라요―.” 그렇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야구밖에 모른다.
즐겁지 않으면 야구가 아니다. 져도 즐겁게 져야 한다. 그런데 설설 계속 지니까 실실 웃기도 슬슬 힘들어진다. 잘하고 싶다는 그릇된 갈망, 이기고 싶다는 헛된 욕망이 구인회를 괴롭히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승리에 대한 배고픔이 없다면 패배자라고 할 수 없는 법. 경기가 끝나고 웃으며 악수를 하고 뒤돌아서며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을 때도 우리는 이기고 싶었기에 즐거울 수 있었다. 싫다는 여자에게 구질구질 구애하는 루저처럼, 이기려고 용을 썼지만, 아직은 뺨 맞거나, 정강이 차이기에 바빴다. 소설가 백가흠(36)은 소개팅, 맞선 등의 현실적 구애 행위를 포기하고 밤마다 2백 번 이상의 스윙연습을 했다고 전해진다. 소설가 박성원(40)은 갈비뼈 부상에도 불구하고 예준이를 위해 뛴다. 노총각의 안타에는 어떤 설움이, 아버지의 수비에는 어떤 시큰함이 서려 있는 법이다.
우리의 스윙은 수많은 이론적 지식과 거기에 따라가지 못하는 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상은 이렇다. 무게중심은 뒷다리에 둔다. 시선은 마지막까지 공을 보고 턱을 당긴다. 귀 옆에서 간결하게 나오는 스윙은 임팩트를 강하게 주고 팔로 스윙3)을 끝까지 가져간다. 하지만 현실은, 무게가 중심을 잃는다. 공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시선을 둘 데 없이 민망하다. 귀 옆에서 장엄하게 헛스윙. 임팩트를 주다 보면 팔로 스윙을 하다 넘어지기 십상이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제대로 된 폼을 흉내 내면 더욱 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만의 형식을 갖는 것에 구인회는 두려움이 없다. 평론가 서희원(36)은 최근 슬럼프에 빠졌다가 아내의 응원 방문에 타격감을 완전히 되찾았다. 타격 폼은? 그런 건 모르겠고, 그는 달렸다. 아내의 한마디 “뭐 이렇게 느려?” 그의 장타에는 아름다운 아내의 살벌한 조련법이 있다.
어떤 상대 팀은 야구 선수의 신체를 가지고 있다. 예술인 야구대회의 선수 대부분은 예술인의 신체를 가지고 있었지만, 경기도 어디쯤에서 만났던 야구팀은 그야말로 우락부락, 연천의 산적 같기도 하였다. 구인회의 평균 연령은 30대 중반 언저리, 평균 신장은 측정된 바 없으나 보통 문학인의 길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작다는 말이네 이 사람아). 사실 야구는 사이즈보다는 센스가 크게 작용하는데, 그것도 보통 문학인의 센스와 차이가 없다(몸치라는 말이네 이 사람아). 그중에 잘하는 사람도 있어, 팀의 에이스가 되기도 한다. 시인 여태천(39)은 작은 체구에 강속구와 각종 변화구를 던질 줄 아는 선수였다. 그와 동시에 어깨 속에 뼈를 던질 줄도 알았다. 그날 경기도 이천에서 들린 그의 뼈 소리. 감히 맑았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의 야구 사랑에는 뼈가 있다.
‘록커스’와 벌인 오전 경기는 그야말로 박빙의 한판이었다. 글 쓴다는 우리에게 오전 경기는 예술적으로 흐느적거리기 다반사였지만, 그들은 더해 보였다. 역시나 예술의 길은 춥고 어두운 것인지. 어쨌든 구인회가 한 점 차로 이겼고, 감격의 정식 경기 첫 승을 거두었다. 감동의 지진해일이 밀려올 줄 알았건만, 의외로 덤덤한 우리. 위너의 입장이 맞지 않는 유니폼 하의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어색하다. 제구력과 강속구를 갖춘 투수 겸 유격수, 평론가 조강석(40)은 팀 승리를 앞두고도 한 이닝4)을 더하자는 속내를 내비친다. 패배의 위기에서, 그는 한 타자 더 상대하고 싶었다. 어깨가 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모자 속에서 두 눈은 활활 불탔다. 멋지다. 정수리가 허전하지만 괜찮다, 야구 모자와 함께라면.
이중 계약 파문의 당사자 시인 고운기(48)는 이번 대회 다른 팀(올드 이글스)의 유격수로 출전하였다. 최고령의 모성애가 느껴지는 실책이 이어진다. 젊은 유격수 시인 박준(27)과 그는 20년이 넘는 나이 차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내야수, 불규칙 바운드는 20년을 넘어서 모두에게 공평하다. 점수도 아슬아슬했지만, 시간 제한은 더 아슬아슬했던 게임이었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우리가 졌을 수도 있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앞에도 말했지만, 야구 모른다. 이렇게 한 경기를 이기고 우리는 2위를 확보했다. 네 팀이 참가한 경기, 첫 경기가 준결승이었고 이렇게 결승에 진출했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저 감독님의 용맹한 작전으로 소중한 점수를 뽑아냈기 때문이다! 라고 힘주어 말하겠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드디어 한 경기를 이겼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는 날이 이기는 날보다 많겠지만, 뭐 어떤가. 우리의 팀 케미스트리5)는 루저라는 이름으로 끈적끈적 매여 있다. 에디터 박대일(39) 구단주의 풍만한 섬세함과 가열한 추진 능력에 힘을 받아 우리는 야구의 세계로 거침없이 간다. 소설가 이도(37) 주장의 자기 암시에 우리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얻는다. 지더라도, 혹은 이기더라도 괜찮다. 우리는 문학에서처럼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로운 글을 짊어지고 문학의 마운드를 오르는 신인 투수가 될 것이다. 칠 테면 쳐보라지. 또 던질 테니까. 밤새워 글을 쓰고 혹은 술을 먹고 그리고 공을 던진다. 우리는 구인회, 패배를 모르는 거침없는 야구단. ‘록커스’와의 사투에서 모든 힘을 쏟아낸 구인회는 이어지는 ‘무스’와의 결승에서 거짓말처럼 지고 말았다. 당신의 영광의 시절은 언제였나? 나는, 야구를 하고 있는, 바로 지금이다. (*)
서효인 | 2006년 <시인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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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펑고 연습 | 감독 또는 코치가 일정한 방향으로 쳐주는 공을 야수가 받아내는 수비 연습. 고백하건대, 제대로 받은 적도 얼마 없지만 ‘일정한’ 방향으로 날아온 적도 없다.
2) 콜드 게임 | 이제 두 번째 구절을 부르고 있을 뿐인데, 정색하고 울리는 실로폰 소리, 땡! 콜드 패배를 당한 날은 노래방에서조차 취소 버튼을 누르기 싫다.
3) 팔로 스윙 | 휘두른 어깨가 원을 그리며 퍼져간다. 어깨와 배트가 백두산 천지의 동심원처럼 청아하게 돌아가고 있다면 분명히 안타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승엽이 아니고, 대체로 울퉁불퉁하다.
4) 이닝 | 야구는 시간제 경기가 아니다. 스리 아웃이 되어야 비로소 한 단위가 넘어가는 것이고, 그것을 이닝이라 부른다. 어떤 이닝은 5분, 어떤 이닝은 한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대체로 후자다.
5) 팀 케미스트리 | 팀 화학 혹은 팀 융화. 이런 거야 경기 후 이어지는 거나한 뒤풀이를 통해 얼마든지 높일 수 있다. 그러니까 구인회의 화학은 고밀도 초정밀 명품 화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