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1
유선과 헤어진 뒤 나는 한동안 지독한 자기혐오에 빠져 지냈다. 거의 매일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게임 시나리오 쓰는 일도 거의 하지 않았다. 해킹 작업이나 프로그램 짜는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온종일 집에서 뒹굴다가 밤이 깊어지면 어슬렁어슬렁 거리로 나가 술집을 찾아들었고, 술을 좀 마신 다음 거리를 무작정 헤매고 다녔으며, 지치면 집으로 기어들었고, 그래도 잠이 오지 않으면 컴퓨터를 켜고 피투피 사이트나 채팅 사이트를 여기저기 서성거리고 다니면서 또 술을 마셨고, 그러다 취하면 소파나 방구석에 아무렇게나 팩 고꾸라져 잤다. 깨어나면 어떻게 집에 돌아와 무엇을 하다가 잠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가끔은 북한산에 혼자 올라가 희뿌연 매연 속에 잠긴 도시를 내려다보며 뛰어내릴까, 망설인 적도 있었다. 그런 것을 여행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무작정 차를 몰고 서울을 떠나 남쪽으로, 아니면 동쪽으로 헤매고 돌아다닌 적도 여러 번이었다. 이 나라는 땅이 좁고 사방이 막혀 있어 몇 시간만 달리면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일도 없이 7번 국도를 위아래로 치달려 오르내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슨 급한 볼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휴게소 한번 들르지 않고 네댓 시간 동안을 치달려 진도에 이르러 멍청히 바다를 내려다보며 내가 여길 왜 왔지, 자문한 적도 있다. 낯선 도시, 여관방에서 멍하니 텔레비전을 쳐다보며 혼자 소주를 마시다 일도 없이 훌쩍거리며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김영규 선배가 가끔 찾아와 들여다보고 잔소리를 해댔으나,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나보다 훨씬 지독한 알코올 중독이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유선과 헤어진 것이 가을이었는데, 그런 식으로 해를 넘겼다. 설날이 가는지 오는지도 알지 못했다. 봄이 겨워서야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살 수가 없었다. 돈이 다 떨어져버렸기 때문이었고, 몸이 그런 생활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지쳐버렸기 때문이었다. 안간힘을 다해 다시 작업에 매달려 게임 시나리오를 쓰고, 윈도즈 엑스피의 정품 인증 해킹툴을 만들고, 최고라 평가받는 보안 프로그램 카스퍼스키의 키제너레이터를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밤 깊어 취하지 않은 채 텅 빈 집에 들어설 때면, 일에 몰두하여 밤이 깊은 줄을 알지 못하다가 방문을 밀고 거실로 나서면 거기, 어둠과 함께 드센 빚쟁이처럼 당당히 도사리고 앉은 적막을 마주할 때마다 다시 어디론가 달아나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것은 여전했으나, 그때마다 또 다시 자기혐오에 가슴을 찢어버리고 싶었으나, 차츰 그런 것을 잊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멍하니 아무 생각도 않고 지내는 것, 머리를 비우는 것, 그와 함께 가슴을, 몸을 완전히 비워버리는 것. 될 수 있는 한 나의 모든 것을, 욕망이나 슬픔은 물론이고, 기쁨이나 희망까지도, 기억까지도, 내 것이라면 뭐든지 다 비워버리고 내버리는 것. 제일 좋은 편법은 술을 마시며 티브이를 쳐다보는 일이었다. 멍청하게 텔레비전을 쳐다보고 있으면 정말 어느 순간부터 감쪽같이 머리와 몸이 텅 비어버렸다. 적어도 두어 달은 효과가 있었다.
두어 달은 곧 지나갔다. 다시 적막감과 혐오감이 시시때때로 거대한 아가리를 벌려 머리통을 집어삼키려 덤벼들었다. 다시 술을 마시고 여행을 다니고 산을 오르고…… 그런 식으로 가까스로 또 한 해를 견뎠다.
진이를 만난 것이 그 무렵이었다. 여름이 겨워 혼이 다 나갈 듯 무덥던 날 저녁, 나는 김 선배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직장 근처의 카페 '원더 앤 원더'에 앉아 있었다. 온종일 쨍쨍한 햇빛이 아스팔트를 녹였다. 지긋지긋한 날씨였다. 그저 앉아 있을 뿐인데도 진땀이 온몸에서 줄줄 흘러내렸다. 하늘은 새파랬고 거리의 그늘마저 햇빛의 열기에 녹아내렸다.
그러던 날씨가 내가 거기 앉아 버드와이저 한 잔을 마시는 사이 돌변했다. 잠깐 사이 하늘에 시커먼 먹구름이 뒤덮이며 세상이 캄캄해지더니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이내 소나기는 우박이 되었다. 은행나무의 퍼런 이파리들이 도로에 흩어지고, 플라타너스 이파리에 구멍이 뚫리고 갈가리 찢겨 떨어졌으며, 나뭇가지들이 뚝뚝 부러지고, 거리를 달리던 차들의 유리창과 지붕에 펑펑 우박이 떨어졌다. 상점의 아크릴 간판에 구멍이 뚫리더니 조각이 나 길바닥에 내리꽂혔다. 공중전화 부스의 유리벽에 우박이 떨어져 우당탕 펑펑 총질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카페의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이런 것을 꼭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기시감(旣視感)에 잠시 시달렸으나, 어디에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유선이와 어딘가 여행을 갔을 때였던가? 아니면…… 혼자 세상천지를 떠돌아다닐 때던가? 행인들이 당황하여 머리를 가방이나 손으로 가리고 황급히 상점의 차양 밑이나 건물 출입구로 뛰어들었다.
네거리의 신호등이 모조리 꺼져버렸다. 차들이 저마다 황색 경고등을 켰다. 교차로에 들어선 차들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네 방향 모두 멈춰 섰다. 과감한, 혹은 무모한 운전자 한 사람이 급히 흰색 그랜저를 가속하여 우박과 떨어진 가로수 가지들이 나뒹구는 교차로를 통과했다. 그 뒤를 미적미적 두어 대의 차들이 따랐다. 곧 네 방향에서 차들이 한두 대씩 움직이기 시작하여 서로의 꽁무니와 옆구리를 스치며 곡예하듯 교차로를 빠져나갔다.
과감하거나 무모하면 추종자들은 생기게 마련이었다. 과감하거나 무모하면. 과감함, 무모함. 그 차이는 무엇일까? 신호등이 고장 나지 않았다면 흰색 그랜저 운전자는 과감할 필요도 무모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신호를 따라 평온하게 교차로를 지났을 것이다. 신호등이 고장 났다는 상황이 그가 과감성, 혹은 무모함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계기가 없으면 과감성도 무모함도 드러나지 않게 되는 것일까? 내가 저 자리에서 운전을 하고 있었다면,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카페 안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던 일을 중단하고 홀린 듯 거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창 하나 사이,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것은 흥미로운 구경거리일 뿐이었다. 창가의 한 커플은 창밖의 동분서주하는 행인들을 가리키며 킥킥 소리 죽여 웃어댔다. 어째서 사람들은 남들이 곤경에 빠진 것을 구경하며 쾌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런 것도 일종의 관음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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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과 헤어진 뒤 나는 한동안 지독한 자기혐오에 빠져 지냈다. 거의 매일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게임 시나리오 쓰는 일도 거의 하지 않았다. 해킹 작업이나 프로그램 짜는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온종일 집에서 뒹굴다가 밤이 깊어지면 어슬렁어슬렁 거리로 나가 술집을 찾아들었고, 술을 좀 마신 다음 거리를 무작정 헤매고 다녔으며, 지치면 집으로 기어들었고, 그래도 잠이 오지 않으면 컴퓨터를 켜고 피투피 사이트나 채팅 사이트를 여기저기 서성거리고 다니면서 또 술을 마셨고, 그러다 취하면 소파나 방구석에 아무렇게나 팩 고꾸라져 잤다. 깨어나면 어떻게 집에 돌아와 무엇을 하다가 잠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가끔은 북한산에 혼자 올라가 희뿌연 매연 속에 잠긴 도시를 내려다보며 뛰어내릴까, 망설인 적도 있었다. 그런 것을 여행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무작정 차를 몰고 서울을 떠나 남쪽으로, 아니면 동쪽으로 헤매고 돌아다닌 적도 여러 번이었다. 이 나라는 땅이 좁고 사방이 막혀 있어 몇 시간만 달리면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일도 없이 7번 국도를 위아래로 치달려 오르내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슨 급한 볼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휴게소 한번 들르지 않고 네댓 시간 동안을 치달려 진도에 이르러 멍청히 바다를 내려다보며 내가 여길 왜 왔지, 자문한 적도 있다. 낯선 도시, 여관방에서 멍하니 텔레비전을 쳐다보며 혼자 소주를 마시다 일도 없이 훌쩍거리며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김영규 선배가 가끔 찾아와 들여다보고 잔소리를 해댔으나,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나보다 훨씬 지독한 알코올 중독이라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유선과 헤어진 것이 가을이었는데, 그런 식으로 해를 넘겼다. 설날이 가는지 오는지도 알지 못했다. 봄이 겨워서야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살 수가 없었다. 돈이 다 떨어져버렸기 때문이었고, 몸이 그런 생활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지쳐버렸기 때문이었다. 안간힘을 다해 다시 작업에 매달려 게임 시나리오를 쓰고, 윈도즈 엑스피의 정품 인증 해킹툴을 만들고, 최고라 평가받는 보안 프로그램 카스퍼스키의 키제너레이터를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밤 깊어 취하지 않은 채 텅 빈 집에 들어설 때면, 일에 몰두하여 밤이 깊은 줄을 알지 못하다가 방문을 밀고 거실로 나서면 거기, 어둠과 함께 드센 빚쟁이처럼 당당히 도사리고 앉은 적막을 마주할 때마다 다시 어디론가 달아나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것은 여전했으나, 그때마다 또 다시 자기혐오에 가슴을 찢어버리고 싶었으나, 차츰 그런 것을 잊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멍하니 아무 생각도 않고 지내는 것, 머리를 비우는 것, 그와 함께 가슴을, 몸을 완전히 비워버리는 것. 될 수 있는 한 나의 모든 것을, 욕망이나 슬픔은 물론이고, 기쁨이나 희망까지도, 기억까지도, 내 것이라면 뭐든지 다 비워버리고 내버리는 것. 제일 좋은 편법은 술을 마시며 티브이를 쳐다보는 일이었다. 멍청하게 텔레비전을 쳐다보고 있으면 정말 어느 순간부터 감쪽같이 머리와 몸이 텅 비어버렸다. 적어도 두어 달은 효과가 있었다.
두어 달은 곧 지나갔다. 다시 적막감과 혐오감이 시시때때로 거대한 아가리를 벌려 머리통을 집어삼키려 덤벼들었다. 다시 술을 마시고 여행을 다니고 산을 오르고…… 그런 식으로 가까스로 또 한 해를 견뎠다.
진이를 만난 것이 그 무렵이었다. 여름이 겨워 혼이 다 나갈 듯 무덥던 날 저녁, 나는 김 선배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직장 근처의 카페 '원더 앤 원더'에 앉아 있었다. 온종일 쨍쨍한 햇빛이 아스팔트를 녹였다. 지긋지긋한 날씨였다. 그저 앉아 있을 뿐인데도 진땀이 온몸에서 줄줄 흘러내렸다. 하늘은 새파랬고 거리의 그늘마저 햇빛의 열기에 녹아내렸다.
그러던 날씨가 내가 거기 앉아 버드와이저 한 잔을 마시는 사이 돌변했다. 잠깐 사이 하늘에 시커먼 먹구름이 뒤덮이며 세상이 캄캄해지더니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이내 소나기는 우박이 되었다. 은행나무의 퍼런 이파리들이 도로에 흩어지고, 플라타너스 이파리에 구멍이 뚫리고 갈가리 찢겨 떨어졌으며, 나뭇가지들이 뚝뚝 부러지고, 거리를 달리던 차들의 유리창과 지붕에 펑펑 우박이 떨어졌다. 상점의 아크릴 간판에 구멍이 뚫리더니 조각이 나 길바닥에 내리꽂혔다. 공중전화 부스의 유리벽에 우박이 떨어져 우당탕 펑펑 총질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카페의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이런 것을 꼭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기시감(旣視感)에 잠시 시달렸으나, 어디에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유선이와 어딘가 여행을 갔을 때였던가? 아니면…… 혼자 세상천지를 떠돌아다닐 때던가? 행인들이 당황하여 머리를 가방이나 손으로 가리고 황급히 상점의 차양 밑이나 건물 출입구로 뛰어들었다.
네거리의 신호등이 모조리 꺼져버렸다. 차들이 저마다 황색 경고등을 켰다. 교차로에 들어선 차들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네 방향 모두 멈춰 섰다. 과감한, 혹은 무모한 운전자 한 사람이 급히 흰색 그랜저를 가속하여 우박과 떨어진 가로수 가지들이 나뒹구는 교차로를 통과했다. 그 뒤를 미적미적 두어 대의 차들이 따랐다. 곧 네 방향에서 차들이 한두 대씩 움직이기 시작하여 서로의 꽁무니와 옆구리를 스치며 곡예하듯 교차로를 빠져나갔다.
과감하거나 무모하면 추종자들은 생기게 마련이었다. 과감하거나 무모하면. 과감함, 무모함. 그 차이는 무엇일까? 신호등이 고장 나지 않았다면 흰색 그랜저 운전자는 과감할 필요도 무모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신호를 따라 평온하게 교차로를 지났을 것이다. 신호등이 고장 났다는 상황이 그가 과감성, 혹은 무모함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계기가 없으면 과감성도 무모함도 드러나지 않게 되는 것일까? 내가 저 자리에서 운전을 하고 있었다면,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카페 안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던 일을 중단하고 홀린 듯 거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창 하나 사이,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것은 흥미로운 구경거리일 뿐이었다. 창가의 한 커플은 창밖의 동분서주하는 행인들을 가리키며 킥킥 소리 죽여 웃어댔다. 어째서 사람들은 남들이 곤경에 빠진 것을 구경하며 쾌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런 것도 일종의 관음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