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천사는 없다
사흘 후 새벽부터 이삿짐 싸는 일이 시작되었다. 작열하는 햇빛 속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족들의 얼굴은 한창 땀을 흘리고 있는데도 건기의 땅같이 스산해 보였다. 거대한 흰 그물에 갇혀 무의미하게 버둥거리는 생선들 같기도 했다.
아버지의 표정은 육 년 전 이곳에 내려왔을 때와는 많이 달랐다. 우울해하는 것도 일종의 여유일까? 그의 얼굴은 군인처럼 경직돼 있었다. 또 동작들엔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있어서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반면 엄마의 얼굴은 파리했다. 엄마를 엄마이게 하던 뻔뻔스러움과 호기, 당돌함을 휘발시킨 뒤 조용히 떨고만 있는 엄마는 너무 낯설었다.
뜻밖에도 누나들은 담담했다. 둘째 누나는 이미 어른이 된 지 오래였고, 셋째 누나는 집의 비극이 무색해질 만큼 아름답기만 했고, 막내 누나는 무너져가는 집의 기둥도 떠받들 수 있을 만큼 강인해 보였다. 흑수정처럼 단단한 막내 누나의 눈동자를 보며 나는 그녀가 인생과 또 다르게 대결할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렇다면 나는? 내 관심사는 오직 한 가지였다. 과연 남아 있는 서른다섯 마리 새들이 우리를 따라와 줄 것인가? 그들을 감당할 수 있는가 없는가와 상관없이 나는 그들을 모두 데려가고 싶었다. 집의 크기도 마당의 크기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새들이 보는 앞에서 열두 개의 새집을 뜯어 짐칸에서도 잘 보이는 곳에 실었다. 두 달 전 리모델링을 해준 그것들을 두드려 보이며 휘파람까지 불었다. 가족들 누구도 내 행동을 놀리거나 말리지 않았다.
아쉬움과 가벼운 비웃음이 뒤섞인 듯한 직원들의 시선 속에서 차가 시동을 걸자 새들의 반이 이삿짐 위에 올라앉았다. 나머지는 짐칸 안이 옹색해 보이는지 공중에서 푸드덕거리기만 했다. 차가 출발하자 그들은 대열을 만들어 우리를 쫓아왔다. 그런 방식으로라도 떠나보자고 미리 약속한 듯했다. 새들의 애착을 확인하고 나자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함평역이 가까워졌을 때 아버지가 트럭 앞 칸의 창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자, 너희들 모두 역에서 내려 기차 타고 와. 집에서 차 시간에 맞춰 출발했으니 곧 탈 수 있을 거다. 광주역에서 만나자.”
“싫어요. 아버지. 트럭 짐칸 안이 훨씬 시원해요. 그냥 여기에 있을래요.”
“맞아요. 차 갈아타는 것도 귀찮아요.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는데. 얘, 수형아. 우리 목포에서 이사 올 때처럼 멋지게 놀아볼까? 마지막으로!”
“다 큰 처녀들이 짐짝같이 트럭 뒤에 실려 구경거리가 된 채 광주 시내를 활보해? 어서 내리지 못해?”
아버지에게서 벼락이 떨어지자 누나들은 주섬주섬 내려 역 쪽으로 걸었다. 한동안 쭈뼛거리던 나는 군인처럼 차려 자세를 하고 크게 말했다.
“아버지. 전 남자니까 여기 있겠습니다. 새들을 돌보겠습니다!”
아버지는 대답을 하지 않고 차창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짐칸 한 귀퉁이의 뚱뚱한 이불 보따리 위에 벌렁 누웠다. 차가 다시 움직였다.
하늘을 보니 여전히 절반의 새들이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전날 내린 비 때문에 청명해진 하늘 속에 박힌 비둘기들의 흰 배에도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돌았다. 갓 태어난 비둘기 알같이 둥글고 깨끗한 그 배 속에 세상의 슬픔이란 슬픔은 다 담겨 있는 듯했다. 나는 눈물이 눈꼬리를 지나 귀와 머리카락들을 적시도록 내버려두었다. 위로의 말 한마디 못 건네는 새들이 어떤 사람보다 가깝게 느껴졌던 것이다. 진하고 끈적한 슬픔이 가라앉고 나자 거센 파도 물살 같은 잠이 나를 덮쳤다. 나는 잠의 급류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다시 눈을 떴을 땐 거대한 물병의 몸통 같은 하늘만 보였다. 나를 따라오던 새들의 흰 배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 몸부터 찾아봤다. 나는 변함없이 트럭 짐칸 안에 누워 있었다. 나는 상체를 일으키고 주위를 둘러봤다. 짐칸 안의 열 마리의 새들이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나를 보고 있었다. 걱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한 눈이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애끓는 마음으로 허공을 둘러봤지만 보이는 건 광활한 하늘과 찢어놓은 솜뭉치 같은 구름들뿐이었다. 초록색 시골 풍경 속에도 날 따라오던 새들은 없었다. 잠깐 물병의 무늬 같은 흰 구름들이 하얗게 부푼 새의 형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나는 곧 정신을 차렸다.
한참 후에야 나는 허공의 새들이 이삿짐 위의 새들의 일부를 설득해서 함께 떠나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순간 내 내장 한 구석이 움푹 패였다. 폭격을 맞은 듯 놀랍기도 하고, 이 모든 사태를 예감하고 있었던 듯 우울하기도 했다. 나는 다시 이불 보따리 위로 드러누웠다. 이별의 순간을 보고 싶지 않아 콤마 상태 같은 잠에 빠져 있었건 걸까. 나는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
새 집에 도착하자마자 열두 마리의 새들은 뜨거운 철판 위에 놓여지기라도 한 듯 격렬하게 튀어 올랐다. 마당이라 부를만한 넓은 뜰이 없는 새 집의 구조에 놀라 마음의 균형을 잃은 듯했다. 우리 가족의 처지의 변화를 전 감각으로 느낀 것일까? 나는 눈빛으로 새들을 다독거려 내 주위로 불러 모았다. 한참 후 두 마리가 내 어깨 위로 올라앉았다. 새들의 감촉을 몸으로 확인하고 나자 마음이 겨우 누그러졌다. 나는 한발 물러서서 집을 살펴봤다.
아닌 게 아니라 새 집은 아버지와 처음 왔을 때 보다 더 좁아 보였다. 눈에 띄게 표정이 어두워진 엄마는 집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마음을 다스리려고 애를 쓰는 듯했다. 그러나 엄마는 엄마였다. 이왕 참는 김에 끝까지 참아볼 것이지 기어이 발에 걸리는 널빤지를 집어 구석으로 던지며 쫑알거렸다.
“살면서 젤 속상한 일들 중 하나가 집 줄여 이사 가는 거라더니. 함평에서 이삿짐 쌀 때 버릴 물건들은 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더 버릴 게 있나 찾아봐야겠네.”
그러나 아버지는 굳은 옆얼굴이나 곤두선 팔뚝의 솜털로도 반응을 보여주지 않고 집만 대강 손봤다. 큰 가구들이 들어앉아 있는 폼까지 확인하고 나자 옷을 갈아입고 외출을 했다. 최대한 빨리 전기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인 듯했다. 그런 그에겐 감상은 물론 불안이나 공포에 할애할 시간도 없어 보였다. 곧게 구획해놓은 길 위를 앞만 보고 똑바로 걷는 그는 하나의 명쾌하고 건조한 길 같았다.
집이 대강 정리되자 나는 물걸레로 깨끗이 닦은 새집들을 지붕 박공 밑에 매달았다. 지붕의 한 끝에서 다른 끝까지, 모양 따윈 무시하고 열두 개를 모두 달았다. 나는 사다리 위에 서서 새집들을 툭툭 두드려 보이며 마당의 새들을 둘러봤다.
“자, 여기가 너희들의 새 집이야. 이사를 오면 낡은 집도 저절로 새 집이 되는 거야. 알겠나?”
새들은 딴 곳을 보며 나를 외면하는 시늉을 했다. 종종거리며 우왕좌왕하는 폼이 저희끼리 다투는 것 같기도 하고 새 집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무시했다. 나는 무서운 표정까지 지어 보였다.
“친구들이 많이 없어졌다고? 걱정할 거 없어. 너희들, 옛날 일 생각나, 안나? 막 함평으로 이사 갔을 때 흩어진 친구들을 모아 옛날로 되돌아갔던 것? 앞으로도 꼭 그렇게 하면 돼. 알겠나?”
*
이 주일 뒤 나는 K 국민학교로 전학을 했다. 첫날부터 나는 아주 복잡한 감정에 휩싸여버렸다. 하필이면 그날이 이 학기 반장 선거일이었던 것이다.
선생님이 나를 소개한 뒤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말씀하셨을 때, 나는 시작의 말도 고르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도시 아이들 앞에서 딱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어떤 것을 내세워도 그들에게 자랑할 만한 꺼리는 아닌 것 같았다. 심지어 복도의 거울이 비쳐주는 내 외모조차도 너무 시골스러워 보였다. 여자아이들 몇 명이 노골적으로 관심을 표현하며 내 어깨를 툭툭 쳤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런 종류의 관심은 아니었다.
한 학기를 보내며 이미 많이 친해진 아이들이 서로 추천을 해주고 공약 발표를 하고 이 학기 선거답게 몰표를 얻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심사가 꼬여갔다. 나도 저렇듯 흔쾌하게 뽑혀 전폭적인 힘을 가진 존재가 돼보고 싶다는 욕망이 내 살과 뼈 속에 시퍼렇게 살아 있었던 것이다. 꽤 많은 파워게임 속에서 고통을 받아왔는데도 힘의 매혹은 여전했다. 아니 내 육체는 지난날의 고통을 기억하고 있지도 못했다.
이방인 주제에 탐을 내며 속을 끓이는 나의 기운을 다른 아이들도 느꼈을까? 가장 많은 표를 받아 당선된 아이가 내 주위를 어른거리다 직격탄을 날렸다.
“야, 곱슬머리! 이리 나와! 여기 교단 앞에 서서 네가 젤 잘하는 걸 해봐. 노래든 춤이든 싸움이든. 그럼 우리들의 반장으로 모셔줄 수도 있지.”
흥, 네까짓 게 잘하는 게 있기나 하겠어? 하고 빈정거리는 듯한 그 말투는 내 비위를 정통으로 할퀴었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싸움을 시작했다. 예상대로 싸움만은 내가 우위였다. 내 열등감이 처절하게 깊었는지 아니면 광주 아이들의 체력이 방목으로 큰 시골 아이들만 못한 건지 모르지만, 나는 몇 번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상대의 목을 쥘 수 있었다.
그때 교실 앞쪽의 미닫이문이 열리며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우리는 아이들 앞에서 야단을 맞았다. 담임선생님의 꾸짖음은 불공정했다. 그는 승자인 나를 심하게 야단쳤다. 아이들이, 특히 여자애들이 상현이가 먼저 건드렸어요, 하고 여러 번 외쳤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잘잘못을 떠나 골칫덩어리 싸움꾼이 나타났구나, 자칫 학급의 질서가 엉망이 돼버리겠구나, 하고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는 오랫동안 혀를 찼다.
“전학 온 첫날부터 쌈박질이라니. 선생님은 널 처음 봤을 때 순박하고 착실한 모범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잘못 봤나보다. 앞으로 지켜보마.”
첫날부터 문제아, 싸움꾼으로 낙인이 찍혀버린 나는 귀갓길에도 혼자일 수밖에 없었다. 여자아이 둘이 계속 날 힐끔거리며 따라왔지만 그것도 내 잘못에 확대경을 들이대는 행위 같아서 싫었다. 나는 빨리 달렸다. 숨이 차서 더 달릴 수 없게 되자 호흡을 조절해가며 빨리 걸었다.
계속 걷자 머리가 맑아지며 온몸이 싸늘해졌다. 힘에 대한 갈망이라면 토미, 종수와 부대끼며 바위가 거친 물살에 풍화되듯 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살아나다니, 낯선 친구들 앞에서 날 조롱하다니……. 그렇다면 이 욕망이야말로 영원한 것이 아닌가? 그것이 수학이나 과학의 법칙처럼 요지부동의 것이라면 나는 또 무엇이었을까? 그냥 그 법칙을 충실히 작
동시켜 낸 꼭두각시 인형에 불과했을까?
탈진한 상태에서 집에 도착해 대문을 열었을 때 기분이 이상했다. 비좁은 마당 안에 감도는 적막이 함평 집의 반도 못 되는 새 집을 삼켜가고 있었다. 누군가 날 쥐어짜고 있기라도 한 듯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나는 새집들 앞으로 걸어갔다. 예감대로, 새집들은 텅 비어 있었다. 언제라도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했다. 또 새들이 함평 생활 초기처럼 새로 살게 된 마을을 탐색하는 중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왠지, 아니 절대로 그런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책가방을 마루 위에 던졌다. 나는 마루 끝에 쭈그리고 앉아 새들을 기다렸다. 고집스럽게.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날이 어두워지자 먼저 엄마가 돌아왔다. 막내 누나가 돌아왔고, 셋째 누나도 돌아왔다. 수형아, 왜 안 들어가고 있어? 하고 묻던 셋째 누나는 내가 계속 대답을 하지 않자 새집들을 올려다봤다. 그리곤 혀를 차며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언젠가는 새집들이 텅텅 비는 사태가 오고야 말 거라고 예감했다는 듯이.
마루와 안방을 오가는 누나들이 내 눈치를 봐가며 비둘기 이야기를 하는 걸 내 뒤통수에 달린 또 다른 눈은 봤다. 방 안에서 누나들이 저녁 밥상을 둘러싸고 앉아 시큰둥하게 숟가락질을 하며 나누는 대화도 크게 들렸다.
“비둘기들이 끝내 안 돌아오면, 그땐 수형이 쟤 어떡해?”
“어떡하긴? 지치면 들어오겠지. 밖에서 잠들면 안고 오면 되고.”
“비둘기들도 이젠 제 갈 길로 갈 때가 됐지. 이 집을 봤으면 즈이들도 생각이란 걸 했을 거 아냐? 걔들 이사 온 날 마당 좁은 것 보고 놀라서 튀어 오르는 것 봤지?”
잠시 후 누나들 속으로 끼어든 엄마의 목소리는 작지만 냉정했다.
“섭섭하긴 하지만 이젠 헤어질 때가 됐다. 개도 십 년 이상 키우면 안 좋다는 말이 있어. 사람 옆에서 사람을 닮아가다 못해 사람 속을 꿰뚫고 희롱까지 하거든. 우리 집 새들도 거의 영물이 다 돼 있었어.”
뾰로통해진 셋째 누나가 숟가락을 탁, 놓으며 투덜거렸다.
“그럼 할 수 없지, 뭐! 헤어져야겠네.”
*
나는 자정이 다 될 때까지 마루에서 새들의 귀가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두 팔로 무릎을 싸안고 앉아 태어난 순간부터 함께 성장해온 이복형제를 잃은 듯한 슬픔에 골몰했다. 새들은 내가 아주 어린 남자에서 조금 큰 남자로 성장해가는 걸 샅샅이 지켜보고 또 저희들의 인생을 거울처럼 들이 밀어주던 만만한 친구들이었다. 동시에 인간의 세계이자 남자의 세계인 한 세계를 생생하게 재현해준 빼어난 배우들이기도 했다.
아, 아니다. 녀석들은 이복형제가 아니라 내 한 쪽 심장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정말 영혼이 가벼워진 것 같기도 하고 온몸이 기우뚱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이 이별을 믿을 수 없어선지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난 남자치곤 눈물이 많은 편인데도 오늘은 눈이 젖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만큼은 환하고 따뜻한 방 안에서 식구들과 섞여 웃고 싶지 않았다. 이별의 의식을 치러주듯, 최대한 많이 외로워하고 괴로워해야 할 것 같았다.
엄마가 쟁반에 담아 갖다 준 밥도 먹지 않고 꿋꿋이 앉아 있던 나는 그 자세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누군가의 두 손이 날 가만히 흔들었을 때, 나는 눈을 떴다. 통금 직전에 들어온 듯한 아버지가 내 앞에 서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밖의 일이 뜻대로 안 된 것일까? 몹시 지쳐 보이는 그는 아버지라기 보단 고단한 늙은 남자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이 싫고 불편해서 고개를 숙였다.
그때 안방의 괘종시계가 열두 번 종을 쳤다. 내가 계속 아버지를 아는 척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앉자 그는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달도 별도 없는 검푸른 초가을 하늘과 텅 빈 열두 개의 새집들을 번갈아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