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이별 ②
사흘 후 새벽 나는 검푸른 새벽 빛 속에서 눈을 떴다. 다시 눈을 감았지만 머릿속은 맑았다. 깨서 움직이고 싶은 마음 반 계속 잠 속에 머물고 싶은 마음 반인 상태에서 벽을 보고 누웠을 때, 마루 쪽에서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 아악.”
어젯밤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지 않고 얘기를 나누다 잠들었던 식구들이 모두 일어났다. 그들은 쏜살같이 마루로 달려 나갔다. 성깔도 대단하지만 겁도 제일 많은 셋째 누나가 흰 린넨 잠옷 차림으로 문설주에 기대 선 채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하, 하…… 할머니가.”
아버지가 열려진 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식구들이 빛을 등지고 서는 바람에 더 어두워진 방에 황금색 이부자리가 놓여 있고, 그 위에 할머니가 반듯하게 누워 계셨다. 색다른 예식이라도 치르듯 의연하고 정갈한 할머니를 들여다본 아버지는 털썩 주저앉았다. 할머니의 가슴과 어깨, 얼굴을 어루만지던 그는 두 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고개를 푹 숙였다.
“할머니, 돌아가셨다.”
문턱 위에 서 있던 엄마가 총알처럼 달려 들어갔다. 우리도 따라 들어갔다. 엄마는 엉거주춤 앉아서 할머니의 몸을 세게 흔들었다.
“어머니. 일어나세요. 지금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가시면 애비 마음이 어떻겠어요? 어머니가 안 계시면 저희가 이 무섭고 독한 날들을 어떻게 헤쳐 나가겠어요?”
엄마는 할머니를 계속 흔들어댔다. 생기와 탄력을 잃은 할머니의 몸이 흐느끼듯 출렁거렸다. 엄마의 눈에서 덜렁덜렁 떨어져 내린 굵은 눈물들이 할머니의 얼굴과 목을 적셨다.
“어쩌면 이렇게 매몰차세요? 단 며칠도 앓으시지 않고, 자식 도리 할 시간도 안 주시고. 늘 절 못마땅해하며 틈이라곤 안 보이시더니, 어쩜 이렇게 돌아가시는 것까지도 잘나셨어요?”
나는 엄마가 감정을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매사에 분별 있고 현실적인 할머니가 계셔서 엄마가 유치하고 거만한 다혈질의 여자로 살아올 수 있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일이 터지면 화부터 내고 본다거나 말의 반은 책임과 아무 상관이 없다거나 스트레스를 받자마자 위가 아파버리거나 하는 것이 그 증거들이었다. 엄마는 본인이 생각해온 것 보다 훨씬 더 할머니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때 한바탕 통곡을 하고 난 둘째 누나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못 믿겠어. 어제도 혼자 목욕을 하셨거든. 도와드리겠다고 해도 필요 없다고……. 어디 그뿐이야? 머리에 동백기름도 바르시고, 평소엔 아끼느라 입지 않던 흰 모시 저고리도 다려 입으시고.”
“맞다. 방 청소도 하셨어. 더러운 곳도 없는데 걸레질을 샅샅이 하시고, 서랍장 속의 옷들도 꺼내 다시 개켜 넣으시고. 혹시 이렇게 돌아가실 줄 알고 계셨던 거 아냐?”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버지의 충혈된 큰 눈이 우리 남매들을 포획했다. 느끼는 대로 신비롭고도 정확한 견해들을 쏟아낸 누나들은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는 우리를 집 뒤쪽 문 쪽으로 몰아내며 계속 야단을 쳤다.
“돌아가실 줄 알고 계셨다니. 그런 걸 아는 사람이 어딨어? 갑자기 돌아가신 할머니 앞에서 기껏 한다는 짓이 요망한 입방정이야?”
식구들은 조용해졌다. 그러나 속으론 계속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을 거라고. 세상과 인생의 이치에 환해서 자주 예언자처럼 보였던 할머니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이다. 또 결정적으로 할머니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리고 틀림없이 앞으로 당신이 가족의 짐이 될 거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또 두렵기도 하셨을 것이다. 형편이 나빠진 상태에서 도시로 나가 사는 게 어떤 건지 아는데 생각만 해도 피곤하셨을 것이다. 이제 그만 걷고 싶으셨을 것이다.
정오 무렵 우리 집에선 평범한 초상집 풍경이 펼쳐졌다. ‘근조’라는 검은 한자가 쓰인 등이 빨간 대문 옆에 내걸렸고, 마당에 열 개의 돗자리가 깔렸고, 안방의 병풍 뒤에 할머니의 관을 둔 상태에서 전을 부치는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검은 옷을 입은 손님들이 열심히, 배불리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자 다시 우울해졌지만 생각을 진전시키고 싶지 않았다. 복잡한 감정도 싫었다.
엄마는 무쇠솥 안에서 팔팔 끓고 있는 칼칼한 국물 속으로 돼지고기를 큼직하게 썰어 넣으며 계속 투덜거렸다.
“매정한 양반, 독한 양반. 흥, 폼이 목숨보다 중요한 양반. 고랑고랑 앓으며 대소변 수발 받는 게 그렇게 싫으셨나? 맞아, 내가 그 양반 흐트러지는 꼴 한번 보는 게 소원이었거든. 그런데, 날 한심해하실 만하네. 정말 이렇게 정을 떼주고 가는 사람도 있네.”
나는 엄마식의 이상한 저주에 웃고 말았다. 정말 엄마의 말투엔 복수의 기회를 놓친 사람의 억울함마저 배어 있었던 것이다. 지켜보던 누나들과 직원 부인들도 몰래 웃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엄마의 목소리에선 힘이 빠졌다. 다른 강렬한 감정이 식구들을 강타한 것이다.
아버지가 사표를 낸 후의 첫 행사인 할머니 장례식은 삼 년 전의 큰누나 결혼식과는 많이 달랐다. 손님들도 적었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도 산만하고 피상적이었다. 아마 아버지의 힘에 대한 인정이라는 핵이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직원 가족들도 전처럼 체계적으로 움직이며 최대의 에너지를 내주지 않았는데, 그것도 우리를 계속 아프게 하고 지치게 했다. 삼일장을 치르며 누구보다 그걸 민감하게 느꼈을 엄마도 조용히 있는데 설거지를 하던 김 과장 부인이 기어이 상처를 헤집었다.
“정승 집 강아지 죽을 때와 정승 죽을 때가 다르다더니. 이게 바로 세상인심이지 싶네. 수형이 할머니 한 달 전에만 돌아가셨어도 호사를 누리셨을 텐데. 확실히 만복을 타고 태어난 분은 아닌가 봐.”
부지런히 상을 차리고 치우던 누나들이 노려봤지만 그녀는 모른 척했다. 셋째 누나는 다가가서 두 손을 허리에 척 얹기까지 했지만 곧 포기했다. 다른 때 같으면 김 과장 부인을 응징했을 엄마도 씻어놓은 그릇들을 들고 부엌으로 가버렸다.
석양녁에야 나는 새들이 식구들 앞에 등장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새집 앞으로 가서 새들과 나만 아는 곡조를 휘파람으로 불어봤다. 여기저기서 새들이 머리를 내밀었다. 집에 있는 새들이 삼분의 일도 못됐다. 비로소 이틀 동안 아예 밤에 귀가하지 않은 새들도 있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그렇다면 새들은 어디에 가 있는 걸까? 벌써 조직적으로 들비둘기로 살아가기 위한 훈련이라도 시작한 걸까? 그렇다 해도 말릴 수도 없었다. 모이와 물을 주고 똥을 치워주는 일만 거른 게 아니라 집에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는데 이제 와서 그들의 인생 진로를 간섭하면 그게 더 웃기지 않는가?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쳤다. 문식이었다. 검은 스웨터와 검은 바지를 진지하게 맞춰 입은 그는 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서있었다. 문상을 끝내고 계속 나를 찾고 있었던 듯했다. 어른이 된 문식이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들과 똑같이 생긴 문식이 아버지가 내 머리를 따뜻하게 쓰다듬어주셨다.
“수형이가 많이 슬프겠구나. 할머니를 많이 좋아했는데. 하지만 할머니는 멋진 분이셨으니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다. 너무 많이 슬퍼하면 할머니 걸음이 무거워지니 더 울지 말거라. 응?”
문식이와 나는 빨간 대문 밖으로 나와 천천히 걸었다. 공기가 써늘하면서도 약간 매웠다. 나의 복잡한 감정들이 깨끗한 공기마저 오염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한참 더 걷자 무겁기만 했던 머리가 맑아졌다. 토미 패거리처럼 껄렁하게 담배라도 피워버리고 싶은 충동을 꾹 참고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심호흡을 했다. 문식이도 나를 따라 요란하게 심호흡을 했다. 우리 둘은 또 요란하게 진저리를 친 뒤 웃었다. 문식이가 물었다.
“너 오늘 종수네 이사 간 거 알아?”
“아니. 그런데 왜? 양조장은 어떡하고?”
“너 몰랐어? 한 달 전에 종수 엄마 돌아온 거? 다 알던데. 몰래 돌아와서 쉬쉬하며 대문 안에서만 살았지만 소문이야 말 타고 천 리는 갔지.”
“종수 아버지가 종수 엄마를 받아들이셨어?”
“받아들였으니까 일주일 만에 잘 되던 양조장을 내놓고 삼주 뒤 손해를 보고도 팔았겠지. 세 식구가 오늘 새벽 아무도 모르게 마을을 떴다더라.”
그랬구나. 종수에게 그토록 많은 일이 있었구나. 토미가 아버지를 잃는 동안 종수는 엄마를 찾았구나. 그토록 무신경하게 자신을 모욕하고 떠난 여자를 순순히 받아들여주는 남자도 있구나. 한쪽에선 지독히 굴욕적이고 또 한 쪽에선 지독히 무감각할 수 있는 게 사랑이구나. 어쩌면 종수 엄마도 상대가 받아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돌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연 많은 부부는 종수가 거지 부녀를 가두고 숟가락을 걸어놓게 한 장본인이라는 것도 눈치 챘을 것이다. 아들의 실수를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이곳을 떠남으로써 아들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는 부수적 효과까지 계산했을 것이다.
토미는 누명을 쓴 채 모든 것을 잃고 떠났는데 종수 부모는 아들의 단 하나의 어둠을 지워주기 위해 이사까지 했다? 나는 초저녁 별 하나 떠 있지 않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슴이 퀭했다. 우리의 어린 시절이 끝장나버렸다는 걸 수긍해야 했다. 내가 하느님이라 불러온 신이 인간의 비겁하고 추잡한 모습만을 도려내 보여주며 우리가 근본적으로 나쁜 존재라고 비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