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이별 ①
그날 저녁 식사 시간에 광주의 새 집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식구들은 담담했다. 이사가 결정된 뒤의 나날들은 결정된 사실에 적응해가는 기간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엄마도 신시가지로 개발될 곳에 둥지를 트게 된 것만은 마음에 드는지 집의 구조와 방위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아버지에게 대강 설명을 들은 엄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엄마는 고개를 숙였다.
“마당이 좁다면 비둘기들은 어떡하니? 꽃나무야 조금 키우고 살 수 있겠지만. 이미 저희끼리 한 세상을 이뤄버린 저 영악한 것들을 어떡하면 좋아?”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의 말투가 새들을 귀찮아하기는커녕 진지하기까지 하다는 것이 지금 우리의 상황이 감상이나 농담은 허용되지 않는 생짜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내가 의도적으로 새들을 잊고 있었다는 걸 인정했다. 옛날엔 내가 새들을 잊어도 마당이 널찍해서 그들을 받아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연연해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럼 우리 집 비둘기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그냥 뿔뿔이 흩어져 들비둘기나 산비둘기가 될까? 아님 도시까지 따라가 공원 어딘가에 둥지를 틀고 쓰레기통을 뒤져 먹고 살까? 툭하면 저희끼리 치고받긴 해도 우리가 던져주는 모이에 상징적으로 집착하며 매일 귀가하는 습성을 지닌 그들이 야생적이기만 한 삶을 견뎌낼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자 나는 솔직해졌다. 문제는 나였다. 너무 오래 새들과 감정을 주고 받아온 내가 이 이별에 적응할 수 있을까?
그때 다른 식구들이 밥을 다 먹도록 숟가락도 들지 않던 큰누나가 밖으로 나갔다. 혼자 유아용 숟가락을 들고 설치던 동우가 울었지만 누나는 대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식구들은 어안이 벙벙해서 동우를 달래다 소근거리다 했다.
삼십 분 뒤 돌아온 큰누나는 다른 누나들 틈에 끼어 앉았다. 그 조용한 동작의 존재감이 너무 커서 모두 움찔했다. 그러나 큰누나는 식구들의 반응을 무시하고 야멸차게 말했다.
“저와 동우는 서울로 올라갈게요.”
“그게…… 무슨 말이냐?”
엄마가 큰누나에게 다가앉았다. 큰누나의 눈만큼 큰 엄마의 눈이 누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피곤해, 더 이상 무언가를 알고 싶지도 않아! 하고 외치듯 눈을 감아버렸다.
“이 집에 널 짐스러워하는 사람이라도 있든?”
“저는, 결혼한 사람이잖아요.”
엄마는 누나의 앙상한 두 어깨를 쥐고 인형처럼 흔들어댔다.
“그래서, 저 어린 걸 데리고 돈벌이 해가며 살아보겠다고?”
큰누나는 귀찮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며 엄마를 뿌리쳤다. 누나는 교과서를 읽듯이 또박또박 말했다.
“명동에서 수입 인테리어 소품 가게를 하는 선배가 있어요. 틈틈이 나가서 일을 도와주기로 했어요. 제가 그쪽 감각이 아주 없진 않잖아요.”
아버지가 힘겹게 눈을 뜨고 누나를 봤다.
“이 집에서 네가 편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안다만, 가더라도 조금 있다 가야지. 서울에서 일하려면 남에게 아이를 맡겨야 할 거 아니냐? 맡긴다 해도 아이에게 좋을 리도 없고.”
“일 때문만은 아녜요……. 아이 아빠가 돌아오게 하는 데도 그 편이 나을 것 같아서요. 언제든, 한 번은 와야 할 사람이잖아요.”
그러나 누나는 매형을 기다리는 사람 같진 않았다. 오래된 의무에 습관적으로 집착해온 삶에 지친 여인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누나의 의견을 반박하지 않았다. 매형이 그 무엇 때문에든 돌아와야 할 사람인 건 분명하니까. 아버지는 하나뿐인 조용한 친구인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미이친 놈. 귀신에 씌인 놈. 멀쩡한 사람들이 봐줘야지 어쩌겠어? 아직 사람이 못돼 저러는 걸. 정말 마법에라도 걸려버렸나……? 그래도 계속 살지 말지 한 번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겠지.”
“생각하긴 뭘 생각해요?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못하면 없애야지. 애저녁에 사람 되긴 글렀어요. 차라리 죽어버림 포기라도 하지. 아, 교통사고 내는 인사들은 왜 그런 놈은 피해가?”
“그만 못 해! 어린애 앞에서.”
큰누나의 상처투성이 마음을 실컷 할퀴어놓고도 여전히 분한지 엄마는 씩씩거리며 장판의 격자무늬들을 노려봤다. 그러나 오늘만은 엄마의 격렬한 감정 표현을 비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모두 할머니가 오후 네시부터 계속 주무시는 바람에 이 자리에 안 계시게 된 게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