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호수 도시로 떠나다 ②
오후 네시 반 함평역 광장으로 걸어 나오던 나는 맞은편에서 토미가 오는 걸 보고 멈춰 섰다. 두 중년 남자의 호위를 받고 있는 토미는 근사했다. 상의와 하의 모두 재색을 입어 온통 무채색인 그의 전신에서 서늘하고도 아련한 광채가 났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걸었다. 중대한 결투라도 앞둔 남자들처럼.
토미의 얼굴은 핼쑥했다. 가까이서 보니 녀석은 칼 주름이 잡힌 바지와 정장 재킷을 입고 있었다. 도복이나 청바지, 잠바를 입은 그만을 기억하고 있는 나는 의아했다.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녀석이 저토록 간결하고 아름다운 성장을 하다니. 게다가 나를 보는 그의 눈빛도 온화하고 그윽했다. 저것은 너와 내가 구분이 잘 안 되는, 한 사람이 아프면 다른 한 사람도 통증을 느낄 만큼 친밀한 관계에서나 가능한 눈빛이 아닌가? 그때 토미가 조용히 내게 물었다.
“광주 갔다 오는 길이냐?”
그의 비현실적인 자상함 앞에서 나는 눈만 끔뻑거렸다. 내가 가까이 가도 녀석의 표정은 똑같았다. 나는 눈을 크게 떠봤다.
“넌 어디 가는 길이냐?”
“으, 으응?”
“어디 가는 길이냐구?”
“그냥 가야 할 곳이 있어. 갑자기 그런 곳이 생겼어.”
“그러니까 그곳이 어디냐구?”
내가 노골적으로 신경질을 부려도 그는 성당 앞 멸치국수 국물 같은 눈빛을 하고 빙긋이 웃기만 했다.
“그냥 가야 할 곳이 생겼다니까. 암튼 우리 한동안은 못 보겠다.”
“어이구, 내 소원이 이제야 이루어지다니. 바라던 일이 너무 늦게 이루어지니까 김이 빠진다.”
“새끼, 삐딱하고 썰렁하기는. 하여간 이뻐해줄려고 해도 이뻐해줄 수가 없어.”
녀석이 눈을 부릅뜨자 내 몸이 불량품 오뚝이같이 앞뒤로 흔들렸다. 흥, 누가 니깟 녀석에게 잘 보이고 싶대? 하고 쏘아주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토미는 옛날의 그로 되돌아가 거만한 동작으로 내 등을 툭툭 쳤다. 우리는 서로를 살벌하게 노려봤다. 갑자기 그가 연극을 끝낸 배우처럼 허탈하게 웃으며 내 두 어깨를 꽉 짚었다.
“잘 지내라. 공부 열심히 하고, 아버지 말씀 잘 듣고. 이제 내가 없으니 좋은 아들이 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녀석의 눈이 붉어졌다. 순간 그의 얼굴 전체가 번들거렸다. 문득 함평에서 그와 내가 보낸 모든 시간이 축축하게 느껴졌다. 토미는 천천히 다가왔다.
“미안하다.”
그는 꿀꿀한 멜로영화에서 막 이별을 한 남자처럼 슬로모션으로 돌아서서 걸어갔다. 남겨진 나는 난생 처음 느껴보는 복잡 미묘한 감정에 당황해서 욕을 했다. 재수 없는 새끼!
아마 토미의 사과는 내가 나중에 그를 떠올릴 때 가장 기분 나쁜 부분으로 기억이 될 것이다. 저 꼴리는 대로 실컷 하고서 내가 두고두고 저를 미워할 기회조차 주지 않겠다고 우기는 저 심보는 또 무언가? 관계의 시작도 끝도 그 뒤의 그림자까지도 다 장악하려 하는 녀석은 여전히 지구와 우주가 저를 중심으로 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나는 도로 쪽으로 침을 퉤, 뱉었다.
나는 절대 녀석과 화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내게 했던 것들을 두고두고 곱씹으며 그의 불행을 비웃어줄 것이다. 내 안의 전장은 영원할 것이며 나는 열심히 먹고 싸우고 힘을 키워 그것을 유지시킬 것이다.
오 분 뒤 나는 문식이네 대문 안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갔다. 문식이는 마당에서 강아지들과 놀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 반가워했다.
“어, 대장. 언제 왔어?”
“보시다시피 방금”
“광주 갔었다며? 지금 오는 길이야?”
“너, 토미 새끼. 지금 어디로 가는지 아냐? 뭐 아는 거 있지?”
“토미? 벌써 갔어?”
“어디로 가는진 모르지만 이미 떠났을 거야. 조금 전에 역에서 봤거든.”
“정말 가버리는구나. 결정되자마자 이틀 만에……. 사실은 토미 아버지가 토미랑 안 살기로 했대. 그걸 뭐라고 하더라? 아, 파양! 맞다. 파양. 허 관장님이 이번 일 겪고 얼마 안 돼 쓰러지셨대. 원래 당뇨병이 있었는데 합병증으로 신장까지 나빠져 소변도 못보고 몸이 퉁퉁 붓고……. 아, 있잖아, 나중엔 눈이 멀 수도 있대. 의사 선생님이 절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고 경고했대.”
그때 문식이 엄마가 큰 양은 냄비를 들고 부엌에서 나왔다. 문식이 엄마는 채소를 데쳐낸 뜨거운 녹색 물을 펌프 옆에 부어버린 뒤 댓돌 위에 앉아 식칼로 시금치를 다듬기 시작했다.
“방화죄는 씌울 수 없다더라. 목격자도 없고 저도 한사코 아니라고 하고. 그래도 나중에 농촌지도소 문에 숟가락을 건 것은 인정하더란다. 심한 장난만으로 살인죄나 살인미수죄를 씌울 순 없지. 또 허 관장님이 사춘기인데다 정신적으로 방황하기 쉬운 혼혈아라는 걸 정상참작해달라고 탄원하는 글도 냈고. 아들 간수를 못해서 그렇지 덕망은 쌓은 분이잖니? 딱 거기까지 하고 손을 놓은 거지.”
문식이 엄마는 분홍빛 꼭지가 살아남게 다듬은 시금치들을 모아 바구니 속으로 던져버렸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 아니라고 애 욕하는 사람들도 있더라만, 입양도 동정심만으로 할 일은 아니지 싶더라. 친아들이라면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가 있어도 나 몰라라 하겠니? 몸이 아파서 못 키운다는 것도 핑계야. 아플수록 더 곁에 두고 수발이라도 받으려 하지.”
“…….”
“토미도 걱정이다. 한동안만이라도 따뜻한 정을 맛본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저렇게 험하게 굴러다닐 땐 아버지 정만으로 안되는 게 있어서 그런 건데.”
“그럼 토미는 오늘 어디로 갔는데요?”
“잠깐 보호시설에 있다 고아원으로 간다더라. 고아원에서도 몇 살까지 있게 될지 모르지. 아, 사람들도 정말 웃겨. 설마 어린애가 사람을 죽이려 했겠어? 그리고 토미가 그랬다는 증거 있어? 눈치를 보니 거기에 여럿이 있었던 것 같던데. 양조장집 아들도 있었고”
나는 뒤로 물러섰다. 정말 사람들은 토미가 모든 죄를 저지른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경찰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모두 얼마쯤 불편했을까? 문식이 엄마는 이미 결론이 난 마당에 더 눈치 보고 말고 할 것도 없다는 듯 속말을 쏟아냈다. 동네에서 사고로 사람이 죽었으니 어떻게든 매듭을 지어야 하고, 내 아이만은 아니었으면 싶고, 그 중 고아인 토미가 젤 만만하고…….
나는 몇 발자국 더 물러섰다. 문식이 엄마의 예리함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문식이 엄마의 동정도 토미가 마을을 떠난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만약 토미가 돌아온다고 하면 문식이 엄마는, 아니 마을 사람들은 다시 그를 밀어낼 것이다. 그의 모든 행동에서 그를 쫓아내야만 할 이유를 찾아내고야 말 것이다. 결국 토미는 언제든, 어떤 핑계를 통해서든 추방되고 말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평소의 나라면 넋을 놓고 봤을 강아지들의 재롱도 보지 않고 문식이 집을 나왔다. 문식이 엄마가 저녁을 먹고 가라고 외치는 소리도 시장의 소음같이 멀고 귀찮기만 했다.
정처 없이 걷는데 몸에서 오한이 났다. 다시 인생이 무서워졌다. 집단의 힘이나 못된 속성에 대해 꽤 안다고 자부했는데 이토록 지독한 결론을 눈앞에서 본 건 처음이었다. 우리가 했던 놀이 속의 권력관계도 모두 어른들을 흉내 낸 것에 지나지 않았다니. 나를 괴롭히다 못해 무감각하게 한 내 고통도 어떤 결정적인 고통의 흉내였다니……. 나를 악마처럼 위협해온 토미를 한순간에 날려버릴 수도 있는 것이 세상이라는 구조의 힘이었다.
나는, 토미에게 담백한 연민을 느꼈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쳐버린 녀석은 슬프고 나쁜 것들로 가득 찬 인생 속으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는 봄볕 같은 부모의 애정을 알지 못할 것이고, 최초로 믿었던 사람에게 버림받은 상처도 잊지 못할 것이고, 아마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그는 세상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를 믿거나 사랑하는 일이 죽는 것보다 힘들어질 수도 있다. 나는 토미를 용서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가 겪게 될 고통이 내가 겪어온 고통보다 지독할 테니까. 그렇다면 나의 복수도 이미 이루어진 것인가?
계속 걷다 고개를 드니 태권도장 앞이었다. 내 두 발은 왜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을까? 나는 정문 앞으로 다가갔다. 문은 철통같이 잠겨 있었다. 그래도 지나칠 수가 없어서 건물 왼쪽에 있는 창문을 슬쩍 밀어봤다. 뜻밖에도 문은 쉽게 열렸다. 주인의 마음이 복잡하고 허술하다는 증거였다.
중국 무술 영화의 세트 같은 텅 빈 도장 한 가운데에 허 관장이 정좌하고 있었다. 부석부석한 얼굴엔 병색이 짙었고, 몸은 죽은 단풍잎처럼 허탈해 보였다. 거지 부녀 사건이 터지기 전보다 이십 년은 더 늙어 보이는 그에게 등에 포효하는 호랑이의 얼굴이 박힌 멋진 도복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역으로 나가 삼 년간 키운 양아들과 이별의 의식을 치르는 것도 힘에 부쳐 할 만큼 약한 남자가 돼 있었다.
그리고 그는 토미 못지않게 두려워하고 있었다. 통증을 두려워하고, 사랑을 두려워하고, 사는 일을 두려워하고……. 두려움 덩어리인 그의 얼굴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보기 쉽지 않은 남자 어른의 눈물을 목격한 나는 당황했다. 허 관장의 모습에 지친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지자 말할 수 없이 불편했다. 미래의 내 얼굴 같기도 한 그 얼굴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거리 쪽으로 돌아서서 힘겹게 발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