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우리들의 하얀 거짓말 ③
이틀 후 죽은 부녀의 장례식 겸 위령제가 마을 회관에서 열렸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떠돌이 거지에 불과했던 부녀는 이젠 산처럼 거대한 존재가 되어 마을을 압박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이 지나치게 불행했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죽음의 비극성이 그들을 짐작 가능한 감정들의 덩어리인 인간을 넘어선 어떤 존재로 느끼게 했다. 특히 여자들은 비슷한 이야기들을 하며 계속 공포를 만들어가다 끝을 꼭 이렇게 마무리지었다.
“원귀가 되어 계속 마을을 떠돌면 어떡해?”
사람들이 집단적인 죄의식에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들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군의 모든 점쟁이들이 한바탕 살풀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경찰의 조사가 시작되었다. 먼저 토미와 함평중 불량배들이 차례로 불려갔다. 그들은 하나같이 의심받을 만한 행위는 하지 않았다고 잡아뗐다. 중학생 부모들도 너무 이른 흡연에 대해선 비난하면서도 지도소에
서 담뱃불을 끈 것만큼은 확실히 하라고 단도리를 했다.
그 와중에도 종수는 어른들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종수와 그의 패거리들이 워낙 강경하게 잡아떼고 있기도 했지만 순경들도 집요하게 추궁하지 않았다. 오히려 누가 그들을 의심하는 말이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당연히 나도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농촌지도소로 간 쪽은 종수 일행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마을에 해를 입히는 행동으로 느껴졌다. 또 밝히고 싶지도 않았다. 그것이 문식이와 은수를 보호하는 길이기도 했지만, 종수와도 상관이 있었다.
시간이 더 지나자 내 마음은 명확해졌다. 종수와 토미 모두 내가 싫어하는 아이들이지만 둘 중 하나의 편을 들어야 한다면 종수였다. 왜냐하면 종수와 나는 같은 종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한동안 함평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토미를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했다. 오랫동안 나를 고문해온,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겪게 한 그가 나보다 더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고 싶었지만 내가 가해자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누군가의 증오의 대상이 되어 내 삶을 무겁고 칙칙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예민한 토미는 길에서 마주치면 내 표정만으로도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무슨 얘기든 해보려고 시도를 했다. 그러나 나는 한사코 그를 피해 다녔다. 일주일 동안 나는 토미가 축축해졌다 서서히 생기를 잃고 늦가을 도로 위의 은행잎들처럼 바삭해지는 걸 지켜봤다.
*
그 와중에 우리 집에서도 강력 사건이 터져버렸다. 지난 주 금요일 오후 영업주임을 대신해 수금을 나간 매형이 나흘째 귀가하지 않고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겐 열 배는 더 큰 사건이었다. 나쁜 예감은 꼭 적중하는 법이어서 닷새가 지나고 일주일, 열흘이 되도 매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큰누나에게도 전화 한 통 없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매형이 갖고 있을 돈이 만들게 돼 있는 트러블들도 어김없이 진행되었다.
일단 아버지가 수금이 늦는 이유를 급조해 보고했지만, 누가 봐도 매형의 행위는 공금횡령이었다. 최대한 빨리 돈을 만들어 넣지 않으면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누나들이 전국적으로 뿔뿔이 흩어져 수소문 하고 다녔지만 소득은 없었다.
부모님에겐 매형을 찾아 나설 시간도 없었다. 아버지는 동우 출생 직후 팔고 남은 땅을 급매물로 내놓고 흥정하느라 바빴고, 엄마는 일수쟁이들에게 사채라도 빌려보려고 자주 외출을 했다. 외출에서 돌아올 때마다 엄마의 얼굴은 어두워지고 거칠어졌다. 화단의 돌 위에 주저앉아 양말을 벗어던진 뒤 얼굴보다 뽀얀 두 발을 뽀득뽀득 씻으며 투덜거렸다.
“나 참, 이젠 돈놀이 하는 여편네들까지 날 무시하네.”
그러나 엄마는 전처럼 치열하게 분개하진 않았다. 자존심을 챙기는 것조차 사치가 될 만큼 지쳐버린 듯했다. 직원들 사이에선 사흘 안에 공금을 채워 넣지 않으면 매형은 수배 대상이 되고 아버지는 옷을 벗게 될 거라는 얘기가 파다했지만, 아버지는 태연자약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일상만 충실히 관리할 뿐이었다. 불나방같이 영화판 어디론가 뛰어들어 숨어 있을 매형을 비난하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하루에 일 년을 살아낸 듯 폭삭폭삭 늙는 것만은 막을 수 없었다. 엄마도 새 고통에 영 익숙해지지 않는지 아예 두통약을 끼고 살았다.
할머니도 이번만큼은 감정들을 고스란히 표현했다. 올 것이 온 듯한 아찔함이 할머니를 뒤흔들어버린 듯했다. 아니, 어쩌면 할머니는 지금껏 태연한 척하면서도 식구들 몰래 주저앉을 준비를 해오셨던 건 아닐까? 말로는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모든 것에서 자신을 편하게 쓰러지게 해줄 기회를 찾고 계셨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싫었다.
*
사흘 뒤 유난히 빨리 퇴근한 아버지가 가족들을 안방으로 소집했다. 광주 누나들까지 내려와 아랫목에 계신 할머니를 중심으로 둘러앉은 자리에서 아버지는 식구들을 외면했다. 정오쯤 아버지가 매형이 횡령한 공금을 간신히 메워 넣었다는 걸 알고 있는 가족들은 계속 그의 눈치만 봤다. 단 한 사람, 유난히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큰누나만이 턱을 꼿꼿이 치켜들고 앉아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쪽이 미안해하며 쩔쩔매는 쪽보다 1%라도 더 견딜만하다고 판단한 듯했다. 책상다리를 한 채 두 손을 깍지 낀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어머니. 제가 오늘자로 한전에 사표를 냈습니다.”
타인에게 일어난 일을 전하기라도 하듯 담담한 말투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곧 애잔한 미소로 할머니를 어루만졌다.
“모양새 나쁘게 끝내고 싶지가 않아 제가 먼저 움직였습니다. 조금 빨라지긴 했지만 언젠간 떠날 직장 아닙니까?”
아버지는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치받치는지 충혈된 눈을 부릅떴다. 그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셋째와 넷째가 공부하고 있는 광주로 이사 갈까 합니다.”
“자네는 거기서 뭐 하고?”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설마 할 일이 없겠습니까? 직장에 들어갈 순 없어도 조그만 사업은 할 수 있겠지요.”
“사업? 뭔 사업?”
“퇴직금이 남아 있고 이십오 년 직장 생활 동안 닦아놓은 인맥이 있으니 전기 관련 사업이야 할 수 있겠지요.”
그때 엄마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럼 집은, 집은 어떡하구요? 그 알량한 퇴직금으로 사업 밑천 하고 나면 광주에서 작은 집 한 채 살 돈도 안 남을 텐데.”
아버지는 엄마를 노려봤다. 한마디만 더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 험악한 눈빛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엄마도 밀리지 않고 아버지를 노려봤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빨리 시선을 거두고 침울한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신경전을 벌여봤자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선 싸움이란 소모전일 뿐이었다. 계속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할머니는 만사가 귀찮은지 벽에 기댄 채 눈을 감아버렸다.
“나는 안 갈란다.”
“어머니.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깜짝 놀란 아버지는 무릎걸음으로 다가앉았다. 할머니는 그조차도 귀찮은지 한쪽 팔을 더 세게 저었다.
“아, 아니다. 그냥 해본 말이야. 나중에 얘기해. 어여 건너들 가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