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우리들의 하얀 거짓말 ①
어느 토요일 낮에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빈집 마루 위에 대자로 누워 있던 매형이 벌떡 일어났다. 낮술을 마시고 낮잠을 자다 사람의 기척을 듣고 깬 듯했다. 두 손으로 마룻바닥을 짚고 주위를 둘러보는 매형의 얼굴에서 직장인의 가면은 떨어져나가고 없었다. 매형은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어이 처남. 오늘 나랑 낚시나 하러 갈까?”
“낚시 좋아해요?”
“아니.”
내가 의아해하자 매형은 쓸쓸하게 웃었다. 이럴 땐 또 어김없이 일상에 충실하면서도 그것을 지겨워하는 어른의 얼굴이다.
“싫어해. 나 기다리는 것 되게 싫어하잖아. 그런데 낚시는 기다림을 가르치는 스포츠거든. 그래도 오늘은 기분이 너무 좋아 싫은 것도 한번 해보고 싶어지네. 자, 가세.”
매형은 운동화 뒤축을 꺾어 신고 창고로 가 아버지의 낚싯대를 꺼내왔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운동화 뒤축을 꺾어 신고 따라나섰다.
날씨는, 좋았다. 정말 꿈속의 봄날처럼 화사하고 투명했다. 매형은 비틀비틀 걸으며 계속 휘파람을 불어댔다. 그 소리가 악기의 소리같이 유려해서 나는 멋진 사내는 휘파람도 잘 분다고 생각했다.
정작 강에 도착하자 매형은 미끼를 꿴 낚싯대를 강물에 던져놓고 풀밭 위에 벌렁 누워버렸다. 눈을 감고 팝송을 흥얼대다 벌떡 일어나 낚시대를 들어올렸다 했지만 피라미 한 마리도 걸려들지 않았다. 물고기들도 낚시에 열의와 관심이 없는 사람을 알아보고 피해 다니는 듯했다. 매형 못지않게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는 나는 강으로 뛰어들어 두 손으로 고기들을 움켜잡고 싶은 걸 꾹 참았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매형이 일어서서 낚싯대를 들어올렸다. 그의 낚싯대 끝에서 크지도 작지도 않은 붕어 한 마리가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내가 환호를 해주자 매형은 흙 묻은 양복바지를 걷어 부치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교외의 환한 햇빛 속에서 영화배우 진 켈리의 춤 같기도 하고 사교댄스 같기도 한 원무를 추고 있는 매형은 더 이상 영업부 직원이 아니었다.
그때 환영 같은 매형의 동작들이 점점 커지더니 회전 속도가 빨라졌다. 그의 팔과 손들도 세상을 막 할퀴고 있었다. 표정도 험상궂어졌다. 나는 몇 발자국 물러섰다. 광기마저 내뿜는 그의 동작들을 보며 나는 매형의 본질이 수그러들지 않았음을 알았다.
불현듯 춤을 멈춘 매형이 한 손으로 낚시 바구니를, 다른 손으론 내 손을 잡고 오던 길을 거슬러갔다. 나는 속으론 벌벌 떨면서도 따라 걸었다. 귀가길인 데다, 매형이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십 분쯤 걸었을 때, 매형이 영화에 대해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내가 봐온 영화들과는 주제나 소재, 결말이 완전히 다른 이른바 ‘예술 영화’들이었는데, 듣다보니 아, 이런 영화만을 좋아하는 그의 취향이 가족들이 원하는 성공을 거둘 수 없게 하는구나, 싶었다. 어쨌거나 그는 타인이 무엇을 원하는가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매형이 부담스러워진 나는 오후에 친구 집에 들르기로 약속한 걸 깜빡 잊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매형은 미심쩍어하며 날 보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계속 집 쪽으로 걸어갔고, 나는 반대쪽으로 돌아서서 심호흡을 했다.
비로소 살 것 같았다. 입과 코와 피부의 솜털로 들이마시는 공기가 너무 청신했다. 나보다 강한 기운을 가진 사람과 단둘이, 종일 있는 게 어떤 건지 혹독하게 체험한 하루였다.
옆 동네를 거쳐 읍내에 들어섰을 때 앞에서 종수와 아이들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유치하게 어설픈 적개심을 내보이며 다가온 종수는 갑자기 씩 웃었다.
“어이, 조지. 어디 갔다 오냐?”
내가 싫어하는 별명을 태연히, 그리고 명랑하게 불러제끼는 데도 전혀 불쾌하지가 않았다. 호의도 없고 악의도 없는 농담 같았다. 종수의 표정에도 예전의 오기나 투지는 없었다. 어느새 둘 모두 별명 따위로 신경전을 벌이는 단계는 넘어선 것이다. 넘어서려고 애를 써서가 아니라 그냥 세월이 우릴 실어 다른 곳에 내려놓은 것이다. 나는 종수를 향해 인심 좋게 웃어주었다.
“너야말로 어디 가냐?”
“농촌지도소! 그곳에서 애들과 놀다 오려고.”
농촌지도소는 전에 내가 토미와 싸웠던, 지금의 농촌지도소가 생기며 헐리거나 다른 용도로 쓰일 때까지 한동안 비어 있게 된 건물이었다. 외지고 널찍해서 아이들이 아지트로 애용하고 있는 듯했다. 역시 종수도 눈짓으로 그쪽을 가리켰다.
“너도 갈래? 거기서 집에서 삶아온 거위고기를 먹으며 놀 거야. 삶은 거위알도 있어. 팍팍하긴 해도 맛이 아주 없진 않다더라.”
“너나 많이 먹어라.”
“새끼. 잘난 척하기는. 먹는 것 따윈 관심 없다 이거지? 그래, 영원히 폼이나 잡고 쫄쫄 굶고 살아라.”
뜻밖에도 꽤 날카롭게 나를 할퀸 녀석은 내 발을 거는 시늉을 하고 지나가버렸다. 그러나 그 동작도 지극히 담백했다. 그때 문식이가 종수 뒤에 선 아이들 틈에 박혀 있는 게 보였다. 문식이는 종수를 따라 커브를 돌며 나에게 윙크를 했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상황쯤은 그도 나도 선선히 넘기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얼른 뛰어나가 녀석의 팔을 붙잡고 말았다. 문식이가 당황하며 오늘의 권력인 종수의 등을 봤다.
“어, 대장. 왜 그래!”
나는 턱으로 종수의 뒷모습을 가리켰다.
“혹시 말야. 이건 그냥 내 생각인데, 그러니까 갑자기 생각난 건데, 종수 저 새끼 이미 토미랑 한 판 붙지 않았냐?”
“대장이 그걸 어떻게 알어?”
“내가? 왜 몰라? 그 뻔한 걸. 그런데 그거 너만 알고 있는 거냐?”
“그, 그래. 나만 있는 데서 둘이 싸웠거든.”
“그럼 비밀을 지켜주는 대가로 종수가 토미에게 뭔가를 줘왔겠네.”
“그랬겠지. 줄 게 많잖아. 그런데 대장, 그 일과 무슨 상관있어?”
“상관있지.”
“어떻게?”
“나 간다.”
나는 돌아서서 달렸다. 한참 뛰다 돌아보니 여전히 오늘의 권력이 두려운 문식이가 허둥지둥 종수를 쫓고 있었다. 나는 뾰족한 돌멩이 하나를 그쪽으로 차버렸다.
사태는 간단했다. 토미는 종수와 나를 같은 방식으로 꺾은 뒤 상대의 공포와 수치심을 이용해 착취를 해온 것이다. 어쩌면 내가 싸움을 걸었다고 생각한 최초의 사건도 사실은 그에게 유도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종수도 제 싸움의 결과가 알려져 힘을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더 웃기는 건 토미가 우리를 위협했다기보단 우리 스스로 묶여 노예 노릇을 자청했다는 것이었다. 그런 우리의 주인은 바로 공포였다. 공포에 지배당해 종수도 나와 똑같은 덫에 치었을 거라는 뻔한 사실을 짐작도 하지 못한 것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약국 앞을 지날 때 앞에서 토미가 걸어왔다. 나는 녀석을 노려봤다. 해머 같은 내 분노로 녀석을 작은 못처럼 부러뜨려버리길 바라면서. 그러나 녀석은 툭 부러지기는커녕 성큼성큼 잘도 걸어 내 앞으로 왔다.
“날 만나러 오는 길이냐?”
“아, 아니”
그때서야 나는 오늘이 내가 그에게 전기부품들을 갖다주기로 약속한 날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찜찜하지도 않았다. 아, 아직도 내게 의무가 남아 있었나, 싶어 뜨악했다.
이미 내 공포의 수명이 다해버렸다는 걸 아는 토미는 불쾌해하지도 않았다. 그를 장악한 건 또 다른 방식으로 상납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자의 짜증과 피로였다. 또 그의 자존심이 나를 향해 막을 치기 시작한 것도 느낄 수 있었다. 토미는 마을 쪽을 보며 말했다.
“그럼 내일 보자.”
“모레!”
“좋아.”
“그런데 너 지금 어디 갔다 오는 길이냐?”
“형들과 함께 있었어. 저어기, 농촌지도소에서.”
“그래? 너희들도 거기서 놀아? 요즘 자주 모이네.”
“그만 가라! 모레 약속은 잊지 말고”
우리는 미련 없이 작별을 했다. 집 쪽으로 걷는데 감기가 시작됐는지 몸이 으슬으슬했다. 걷는 속도를 빨리 했지만 열이 나기는커녕 한기가 피부 밑으로 파고들었다. 감정의 격동에 너무 많은 힘을 쓴 것일까. 술과 꿈 모두에 취해 먼저 집으로 간 매형이 걱정됐지만 이젠 그런 감정도 귀찮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