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알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아 ②
그때 토미가 내 옆구리를 찌르며 씩 웃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썩어 들어가는 속을 열어 보이는 쪽으로 급선회한 녀석이 가소로울 뿐이었다. 일이 어긋났다고 느꼈는지 토미는 미소를 거뒀다. 그 후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내 침묵을 소극적인 호감으로 오해한 불량배들만이 서로 욕을 하고 헛주먹을 날리고 고꾸라지며 난리를 치고 있었다. 혀 꼬부라진 소리로 유행가를 계속 불러제끼는데도 가사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때 멀리서 어린 중학생이 양은냄비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오는 게 보였다. 토미가 냉큼 달려나가 냄비를 받아 큰 바위 위에 놓았다. 그새 바닷가를 다녀왔는지 냄비 안엔 막 잡아 바닷물로 헹군 듯한 세발낙지들이 가득했다. 토미는 옆구리에 낀 종이가방에서 접시와 가위, 초고추장 병을 꺼내 상을 차렸다. 녹초가 된 건달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낙지를 초고추장에 듬뿍 찍어 입에 넣었다. 소주까지 마시자 그들은 죽은 낙지처럼 흐물흐물해져 버렸다.
초저녁 만찬이 끝나자 건달들은 모래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석양빛과 구분이 안 되는 붉고 몽롱한 얼굴을 하고도 아직 방전이 안 됐는지 계속 꾸물거리는 녀석들을 보자 짜증이 났다. 그들도 적의와 호기심을 회복했다. 가장 덩치가 큰 건달이 축축하고 이상야릇한 눈빛으로 토미를 보다 나를 보다 했다. 그는 씩 웃었다.
“야, 토미. 저 새끼 올해 몇 살이냐?”
그러나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내 앞으로 와서 내 몸을 살펴봤다.
“이 건방진 새끼, 고추에 털 났냐? 안 났냐?”
나는 깜짝 놀라 일어섰다. 토미도 벌떡 일어서서 내 앞으로 와서 날 가려주었다.
“두, 두목. 그게 말야. 얘, 얘가 한참 어려. 나보다 네 살인가 다섯 살인가가 적어. 이제 막 열 살이 넘었던가…”
갑자기 윤곽이 또렷해지고 안색이 맑아진 건달이 소리쳤다.
“어리긴 뭐가 어려? 저 새끼 눈을 봐. 저게 어디 국민학생 눈이야? 저 새끼가 빤히 쳐다보면 간이 썰렁해져서… 에이, 씨팔.”
“대, 대장 진정해. 얘, 원래 별 뜻 없이 그래. 겁 많은 걸 감추려고 괜히 눈에 힘을 주고 다니는 거라구.”
“그래? 그럼 어려서 모르는 거면 형님들 하는 거 구경하며 크면 되겠네. 자, 느이들! 모두 이쪽으로 와! 누구 물건이 가장 멀리 물총을 쏴보내는지 두 눈 똑똑히 뜨고 봐! 구경부터 할 놈들은 왼쪽! 선수들은 오른쪽! 자, 시작한다. 앉아. 일어서. 앉아. 일어서. 앉아! 앉아! 야, 새꺄. 정신 안차려! 지금부터 진짜 시작! 꼴찌는 빤스 벗고 토끼뜀 백 번이다!”
그때 토미가 내 손목을 잡고 마을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야! 너 서! 거기 못서? 하는 고함소리가 뒤쫓아왔지만 토미는 개의치 않았다. 풀어질 대로 풀어진 건달들은 우리를 쫓아오지도 못했다. 삼백 미터쯤 달렸을 때 토미는 속도를 줄였다.
처음으로 소극적인 반항을 해봤을 녀석은 두 손을 바지 호주머니에 찌른 채 천천히 걸었다. 이젠 나를 친하진 않아도 서로 이해해줄 순 있는 관계로 만들어두려 하는 노력도 포기한 듯했다. 발효된 슬픔이 고인 그의 얼굴은 아름다웠지만 나는 그의 슬픔에 내 슬픔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엔 내가 겪어온 고통이 너무 컸다. 그가 선물해준 지옥이 너무 컸다. 그리고 지금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든 것은 그 모든 것이 시시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
집에 와보니 추석 때도 안 왔던 매형이 혼자 내려와 있었다. 회사의 기계 시설과 업무 체계가 주문량을 감당 못해 추석 전날까지 작업을 해야 해서 함께 못 왔다는 큰누나의 변명을 기억하는 가족들로선 좀 당혹스런 등장이었다. 또 매형의 복장도 전과는 달랐다. 많이 단정해졌다 해도 튀는 스카프나 무늬 있는 남방셔츠로 포인트를 주는 버릇은 여전했는데 오늘은 무채색 남자였다. 재색 양복 안에 무늬 없는 회색 스웨터를 받쳐 입고 머리를 짧게 깎은 매형은 건실한 샐러리맨 그 자체였다.
엄마가 무성의해 보이는 술상을 둘 사이에 놓고 나갔을 때도 그는 차분했다. 타인에게 예민해질 땐 과민해지는 그의 성격에 비춰볼 때 뜻밖의 반응이었다. 잠시 후 매형은 사죄라도 하 듯 머리를 조아렸다.
“아버님, 요즘 제 심경이 전과는 다릅니다. 상의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 짬을 내서 내려왔습니다.”
순간 아버지의 몸이 움찔했다. 왜 이 위인이 평소와 달리 겸손하게 나오나, 하는 의구심과 긴장, 경계심으로 그의 팔뚝의 솜털들이 곤두섰다. 매형은 눈을 내리깐 채 더 다가앉았다.
“제게 어른이 누가 있습니까? 아버지가 있습니까? 형이 있습니까? 아니면 집안 어른이라도… 솔직히 결혼한 뒤엔 장인어른을 아버지라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비록 자식 도리는 못했지만.”
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정통으로 한 방 먹어버린 사람의 표정이었다. 한참 후 열린 아버지의 두 눈은 붉었다. 나는 이번에도 매형이 이길 것 같다는 불길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실제로 아버지의 얼굴엔 항복한 사람의 체념이 희미하게 어른거렸다. 매형은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기로 작정했는지 아예 술상을 옆으로 치우고 다가앉았다.
“요즘 회사 일이 어렵습니다. 하루하루 변해가는 업계 상황을 저희 회사 조건으로 따라잡는 게 힘이 부칩니다. 자본 문제가 나올 수밖에 없지요. 아버님도 아시다시피 제 입장이 애매합니다. 동업자 비슷한 직원이자 후배다 보니 아주 나 몰라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모든 걸 감수하고 저를 걸어봐도 될 만큼 전도유망한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오고 싶습니다. 직장도 바꿔보고 싶습니다. 그저 그런 작은 회사를 다니는 게 얼마나 고달프고 암담한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체계가 잘 잡힌 큰 회사에서 반듯하게 직장 생활을 해보고 싶습니다.”
아버지는 대꾸를 하지 않고 새빨간 김치찌개만 내려다봤다. 텅 빈 상자 같은 그의 두 눈은 방 안에 있는 것이라면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지켜보던 둘째 누나와 나도 숨을 죽였다. 매형도 불편한지 눈치를 봤다.
“이번엔 저희 아주 나쁘진 않습니다. 집 전세금을 빼서 쓴다거나 하는 짓은 안 했습니다. 쓸 만한 시골집 한 채 구해 저희 세 식구 독립해서 살 수 있습니다.”
내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별 수 없이 나도 또 매형이 전세금을 탕진했을까 봐 불안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정말 아버지가 다시 돈이 만든 고통 속으로 말려들어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믿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매형이 아주 바닥을 치는 사람은 아닐 거라고. 사람에 대한 평가라는 게 참 우스웠다. 누군가에게 자꾸 실망해 눈높이를 낮추다보면 그를 평가하는 기준도 소박해진다. 상대를 폭발하게 하지 않는 것도 무슨 대단한 자질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한꺼번에 열 살은 먹어버린 듯한 아버지는 두 손을 휘휘 내저었다.
“일단 수형이 방으로 건너가 잠 좀 자둬. 나머지는 내일 얘기하지.”
오래 별러온 얘기를 토해낸 매형은 내 방으로 와 곧장 잠이 들었다. 코까지 고는 그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얄밉고 한심했다. 왜냐하면 안방에선 식구들의 걱정과 토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매형의 말 따윈 들어볼 필요도 없다며 계속 밖에 있던 엄마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괴로워했다.
“이젠 아예 이 시골로 내려와 평범한 시골 아낙네로 늙어가겠다고?”
“엄만… 어떻게 언니가 평범한 시골 아낙네야?”
둘째 누나가 상상만 해도 싫다는 듯 눈을 흘겼다. 엄마는 그래, 너 잘 걸렸다, 하는 표정으로 누나 쪽으로 돌아앉았다.
“시골 아낙네가 아님 뭔데? 말해봐!”
“엄만… 언니의 지성과 미모가 있는데 어떻게”
“이 맹추야. 시골에 처박혀 얘 몇 낳아 키우고 살다 보면 다 시골 여자 돼. 너, 한 이십 년쯤 땡볕에 나가 뼈 빠지게 농삿일하고 나서 네 피부를 봐라. 가뭄에 탄 논바닥같이 쭈글쭈글할걸. 행여 군수 부인으로 살면 모를까? 흥, 너도 정신 차려!”
나는 시간이 갈수록 더 신랄해지는 엄마를 멍하게 봤다. 엄마가 큰누나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는 게 놀라웠기 때문이다. 그때 문득 엄마야말로 매형이 전세금을 빼서라도 화려하게 한탕해 국면을 바꿔주길 바란 장본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상승의 가능성을 잘라버린 매형의 시골행이, 그걸 가능케 한 체념과 성실이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표정은 거꾸로 안정돼가고 있었다. 고생 끝에 단답형 답안을 찾아낸 수험생 같았다. 나중엔 마당으로 나와 달을 보며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우기까지 했다. 할머니도 아버지의 말마다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안심시켜주었다.
“그래, 옆에 두고 지켜보는 게 그중 젤 나은 방법 같네. 적어도 대놓고 엉뚱한 짓은 안 할 거 아닌가? 다행히 제 마음 단속도 꽤 하는 것 같고. 애비도 이젠 애들 걱정 그만하고 회사 일이나 신경 쓰시게.”
자정이 되자 식구들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엄마는 스웨터를 껴입고 손전등을 찾아들고 집 뒤의 계단식 채마밭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엄마를 따라갔다.
검고 거대한 망토자락 같은 채마밭 위에 털썩 주저앉은 엄마는 손지갑에서 담배를 꺼내 피웠다. 안쓰럽게 반짝이는 성냥 불빛 속에서 보니 역시 금관이었다. 인생에서 영화를 추방시킨 뒤 엄마는 담배에 더 깊이 매여가고 있었다. 걱정이 됐지만 말릴 수도 없었다. 내가 보기에도 인생이 엄마에게 담배를 피우도록 몰아붙이고 있으니까.
예전의 엄마의 고통 속엔 폼이나 감상이 비계같이 끼어 있었지만 요즘은 아니었다. 엄마의 고통은 선혈이 터져 나오는 진짜 생채기였다. 나는 화를 내지도 않는 엄마가 너무 가엾었다. 엄마를 전처럼 철없고 까다롭고 자만심 가득한 여자로 만들 수 있다면 바보 광대 짓을 하며 채마밭 주위를 백 번이라도 돌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