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그보다 더 큰 아이들이 그의 어깨 위를 짓누르고 ③
학교에 도착해보니 원무과 창구가 닫혀 있었다. 창구의 진녹색 창을 계속 두드리자 안에서 직원이 나와 마감 시간이 지나서 등록금을 받아줄 수 없다고 말했다. 엄마가 아무리 사정을 해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화가 날대로 난 엄마는 눈을 꼭 감고 숨을 고른 뒤 내 손을 잡고 총장실로 갔다. 엄마가 딸의 입학 문제로 총장님과 면담을 하고 싶다고 말하자 비서 아가씨는 사무적으로 말했다.
“총장님은, 오후에 학교에 들른 교육부 장관님과 함께 나가셨습니다. 오늘은 안 들어오십니다.”
그날 우리는 광주 중심가의 친척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대학으로 가서 총장을 만나 조목조목 따졌다.
“학교가 장사하는 곳입니까? 공부하는 곳입니까? 저희 딸은 부모가 대학에 안 보내주겠다고 하자 꼬박 사흘을 굶었습니다. 그렇게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이 등록 마감을 딱 이십 분 넘겼다는 이유만으로 공부를 못 하게 되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지금 당장 충장로에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볼까요? 이십 분 지각했다고 영영 공부를 못 하게 돼 인생이 바뀌는 게 과연 교육적인 일인지?”
난처해진 총장은 두툼한 안경테를 계속 만지작거리다 총무처장을 불렀다. 이십 분 뒤 다섯 명의 교직원들과 회의를 하고 나온 총장은 특별히 누나의 입학을 허락한다고 통보했다. 총장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은 뒤 엄마에게 악수를 청했다.
“정말 대단한 어머니십니다. 따님도 어머니를 닮았으면 보통이 아니겠군요. 제가 한번 불러서 만나보겠습니다.”
*
셋째 누나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대학 생활이라는 새로운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에너지 많은 사람답게 수업에 완벽하게 출석하면서도 모임이란 모임엔 다 끼는 듯했다. 책값을 부풀려 받아낸 돈으로 깜찍하고 화사한 옷들을 사 입고, 공들여 화장을 하고, 미용 잡지를 봐가며 직접 머리 손질을 했다. 원래 예쁜 누나는 하루가 다르게 예뻐졌다.
셋째 누나의 미모는 큰누나와는 달랐다. 훨씬 친근하고 생생했다. 그녀는 멀고 신비로운 영화 속 여배우가 아니라 가까이서 자꾸 신경이 쓰이게 만드는 귀엽고 육감적인 처녀였다. 예쁘고 활달한데다 여학생이 넷밖에 안 되니 누나가 과의 꽃이 되었으리라는 건 안 봐도 훤했다.
한 학기가 정신없이 지나갔을 때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거치며 큰누나에게선 사라졌던, 충분히 농익었지만 아직 외부의 손이 닿지 않은 처녀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광휘가 셋째 누나에게 옮겨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광휘는 누구의 것일까? 처녀들이 줄을 지어 어떤 시절의 어떤 장소로 가 그곳의 빛을 조금씩 묻혀 나오는 걸까? 그렇다면 그 빛은 신의 것, 인생의 것이 아닌가. 아름다운 여자의 아름다움도 그녀의 것이 아니라 보다 강력한 누군가의 것이라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
오월 중순, 광주에 간 엄마는 막내 누나가 다니는 명문 전남여고에 들러 딸이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국민학교 전 학년과 목포 여중 삼 년 동안 줄곧 일등이었던 누나가 수재들 중의 수재임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날 저녁 엄마는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는 말라깽이’라는 해묵은 주어를 쓰고 또 쓰며 누나의 출중함을 칭찬했다. 구 년간 아버지가 전교 일등생 부모로서 선생님들을 대접해왔다는 걸 알면서도 처음 발견한 듯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딱 하나였다. 앞으론 누나의 학업 능력을 사방에 자랑하고 다니겠다는 선언이었다.
막내 누나가 큰누나의 대학 중퇴와 기우는 결혼으로 상처 입은 엄마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줄 대타가 된 것이다. 또 누나가 공부에 목을 매는 게 아닌데도 빼어나게 잘한다는 점도 엄마의 허영심을 충족시켜준 듯했다. 외모와 성격, 생활 습관이 큰누나와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도 희망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막내 누나는 엄마의 관심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누나는 엄마의 애정에 연연해하지 않고 자기만의 목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된 뒤 원래 독립적이었던 누나는 더 독립적으로 변했다. 광주에서 다소 무책임하고 놀기 좋아하는 셋째 누나랑 자취를 하려면 밥도 청소도 더 자주 해야 할 텐데도 불평이 없었다. 자기 통제 능력마저 가장 뛰어난 셋째 누나의 목표는 학자나 법관이라고 했다.
내 안에 살고 있는 막내 누나의 이미지도 한결같았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 한낮에 두 손을 수평으로 벌리고 역시 뜨거운 선로 위를 걷는 소녀의 모습. 소녀의 두 다리는 완벽하게 균형을 잡고 있어서 절대 실족하지 않을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 나는 막내누나의 능력에만 주눅 든 게 아니었다. 나는 삶을 끌어가는 근본적인 에너지 면에서도 열등감을 느꼈다. 막내 누나는 엄마의 무관심과 무시, 은근한 경계를 화학적으로 변모시켜 자신을 맹렬히 달리게 하는 연료로 쓰지 않았는가? 더 나아가 가족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하는 핑계로 만들어버리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