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그보다 더 큰 아이들이 그의 어깨 위를 짓누르고 ②
연극을 먼저 때려치운 사람은 엄마였다. 큰누나의 해산이 가까워진 어느 날 정육점에 특별 주문해 사둔 사골을 고아놓고 나간 엄마는 저녁에 누나만 데리고 귀가했다. 마지막 라운드까지 온 이상 더 눈치 보지 말자고 결심한 듯했다. 만삭의 임산부답게 나태해 보일 만큼 살이 보얗게 오른 딸을 본 순간 마음이 눈 녹듯 녹은 아버지도 더 딴지를 걸지 않고 물러나 앉았다. 할머니도 아들 부부의 신경전은 무시한 채 누나의 배가 처지는 속도만을 집요하게 관찰했다.
꼭 열흘 뒤 밤 아홉시쯤 누나에게 산기가 나타났다. 초저녁 잠을 자다 불려온 산파 앞에서 열다섯 시간의 혹독한 진통을 겪은 누나는 다음 날 정오에 사내아이를 출산했다. 가장 기뻐한 사람은 엄마였다.
“난 그렇게 고생하고도 십오 년이나 걸린 일을 넌 어쩜 이렇게 한 방에 해치우냐? 계획도 안 했는데 만들기도 잘 만들고. 어이구, 신기해라! 어이구, 기특해라!”
고구마같이 발갛고 울퉁불퉁한 아기의 얼굴은 2주일이 지나고 3주째 되자 해사해졌다. 한 달이 되자 여기저기서 외할아버지를 쏙 빼닮았다는 말도 나왔다. 열흘이 더 지나자 할머니의 말이 아니어도 녀석의 얼굴에 내 얼굴까지 어른거린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핏방울이 조금 튀었다고 이렇게까지 티를 내는가 싶어 어이없기도 했다.
시간이 더 흐르자 녀석은 본격적으로 긴 파워게임의 후유증에 지친 내 정신도 어루만져주기 시작했다. 녀석이 천진하게 노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 하늘을 꽉 채운 낙진 섞인 구름들이 걷히며 마음이 잘 닦인 유리창처럼 청결해졌다. 내 나이만큼 오염되고 상처 입은 내 존재가 그 애의 발바닥같이 새하얘진 것 같았다.
정말이었다. 누나가 수시로 미역국을 먹어야 할 만큼 젖을 흠뻑 빨고 밤낮으로 울어대 식구들이 못 자게 하다가도 또 천사처럼 방긋거리는 아기의 힘은 막강했다. 지나가는 여행자의 옷을 벗겨내는 진짜 실력자는 매서운 바람이 아니라 늦봄의 쨍한 햇빛이라는 동화 속 결론은 맞았다.
언제부터인가 아기를 통해 모든 화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여전히 미로 속에서 헤매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부스스한 얼굴로 아들을 보러 오는 매형을 막을 수 없었고, 너무 화려하고 거침없어서 꺼림칙하기까지 한 친할머니의 방문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얼굴을 본 이상 계속 낯을 붉히기가 불편해서라도 화해하고 마는 게 사람이라는 종족이었다.
아이가 백일을 맞자 부모님은 쌀 한 가마를 풀어 백설기를 쪄서 마을에 돌렸다. 마을이 들썩거릴 정도의 잔치 분위기는 내 돌때나 만들어봤다고 하니 십 년 만에 느끼는 부산함인 셈이었다. 오후엔 사진관에 가서 아이를 안은 큰누나를 가운데 앉혀놓고 새 가족사진을 찍었다. 또 아이를 발가벗겨놓고 독사진도 찍어주었다. 초롱초롱한 눈과 발긋한 뺨, 통통한 두 허벅지 사이에서 종처럼 달랑거리는 고추가 인상적인 그 사진은 안방의 내 돌 사진 옆에 걸렸다.
그날 저녁 엄마는 할머니에게 낮에 아버지가 거간꾼에게 선산 주변의 땅을 팔아달라고 부탁했다고 보고했다. 할머니의 짧은 질문에 짧게 대답하는 엄마는 무표정했다. 딸의 행복이나 사위에 대한 믿음 같은 어휘엔 더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그냥 도중에 내릴 순 없는 열차에 올라탄 채 정처 없이 가고 있는 승객 같았다. 며칠 후 우리 집 땅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의 아버지의 반응도 담담했다. 큰누나 문제에 관한 한 감정이 남아 있지 않은지 습관적으로 거래에 필요한 잡무들을 처리할 뿐이었다.
꼭 일주일 뒤인 토요일 밤 아버지는 큰누나 부부를 안방으로 불렀다. 아버지는 땅을 처분한 돈이 담긴 봉투를 매형의 무릎과 큰누나의 무릎 사이에 놓아주었다.
“이것이 마지막이다. 알겠니?”
아이를 낳은 뒤 한결 예뻐지고 표정도 부드러워져 성화 속의 서양 여인처럼 보이는 큰누나는 결국 눈물 바람을 했다. 매형은 전처럼 듣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고급스러운 어휘도 쓰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매형이 완전히 풀이 죽은 모습을 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착잡해졌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모든 트러블들이 매형의 의지가 아닌 어떤 홀림에 의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형은 일찌감치 영화의 주인공으로 캐스팅이 돼 있었고, 그가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는 단 하나, 인생을 바꾸고 싶어서였다. 그의 욕망이 내 욕망보다 더 뻔뻔스럽고 무분별했다면 그건 그의 상황이 훨씬 나빴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매형이 가엾어졌다. 그가 길고 섬세한 손으로 뺨에 흥건한 눈물을 닦아낼 땐 정말 가슴이 아팠다.
*
그해 겨울 셋째 누나가 예비고사를 봤다. 첫째 누나보다 공부를 더 잘했던 셋째 누나는 다행히도 서울이 아닌 광주의 국립대학 영문학과를 선택했다. 누나가 눈치껏 돈이 덜 드는 학교를 선택했는데도 엄마는 차라리 떨어져버렸음 좋겠어, 하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실제로 등록금을 준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큰누나에게 호되게 뒤통수를 맞은 뒤 주위의 순진한 듯하면서도 계산적인 어른들처럼 딸에게 대학 공부를 시켜봐야 누구에게도 도움 될 일이 없다는 고리타분한 결론을 내려버린 듯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누나는 당당하게 합격했다. 네 명뿐인 여자 합격생 중의 한 명이라고 했다. 그래도 엄마는 미동도 안 했다. 예측 못한 상황도 아닐 테니까. 그러나 셋째 누나도 나름대로 막강했다. 등록 마감을 사흘 남겨놓은 날 아침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시위를 시작한 것이다. 단식 초기의 광적인 배고픔은 쉽게 이겨냈는지 누나는 천장을 노려보다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하며 계속 반항을 했다.
“이 시골구석에 처박혀 가사 일이나 돕다 시집가라구?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게 인생이라면 차라리 죽어버리겠어!”
스트레스 때문에 얼굴 근육들이 지진 직전의 대륙처럼 뒤틀린 엄마가 누나에게 달려들었다.
“뭐? 죽어? 대학 못 간다고 죽어? 허, 니 맘대로 못산다고 죽어? 그럼 이 세상에 살아 있을 사람 하나도 없겠다. 이젠 너까지 부모를 우습게 보는 거냐?”
“살고 싶은 대로 못 살 거면 뭐 하러 살아? 엄마도 엄마 인생이 마음에 안 든다면서?”
“이게 정말.”
엄마는 두 손으로 누나의 발칙한 입을 틀어막았다. 누나가 온몸을 흔들며 바둥거리자 엄마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씌우고 발로 실컷 패준 뒤 마루로 나갔다. 그 후 자정까지 이젠 식구들이 그 내용을 외우다시피 하는 엄마만의 격렬한 넋두리가 계속됐다. 엄마의 탄식을 계엄령 정도로 알아들은 비둘기들도 막 수감 생활을 시작한 죄수들처럼 조신했다.
예상대로 엄마는 누나만큼 질기지 못했다. 단식 사흘째 됐을 때 엄마의 얼굴은 이미 일상적인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열병을 앓고 난 듯 맑고 초췌해진 그 얼굴엔 등록을 결사반대했던 사람의 매정함은 없었다. 큰누나의 배신을 겪은 직후의 자존심이 순순히 허락해줄 수 없어서 잠깐 심술을 부려본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진심은 추호도 셋째 누나의 인생을 옛날 여자의 인생으로 제한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맏딸에게 남아 있던 앙금을 엉뚱한 상대에게 쏟아붓고도 계속 억울한지 핼쑥해진 셋째 누나를 오래 흘겨보긴 했다.
“그래, 니 마음대로 해라. 너 하고 싶은 대로 실컷 하고 살아봐. 사는 게 뭐 별 거라고. 맞어, 그것도 살아봐야 알지.”
탈진한 누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엄마도 이젠 할머니랑 똑같이 말하네.”
엄마는 과장되게 귀찮아하며 달력을 들여다봤다. 어김없이 그날은 등록 마감일이었다. 엄마는 허겁지겁 입학금을 마련해 광주로 올라갔다. 간절히 바람이 쐬고 싶었던 나는 거동을 못하는 본인을 대신해 엄마 옆에 착 붙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