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남자의 왕국 ③
그러나 엿판은 겨우 이틀 만에 발각되었다. 일요일 아침 욕실 쪽에서 아니, 이게 뭐야? 하고 외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자 아버지가 달려 나갔고, 막 잠이 깬 나도 덩달아 달렸다. 욕조 안을 들여다본 아버지가 돌아서서 나를 노려봤다. 말린 무화과같이 오그라든 내 심장 두 쪽이 면도날처럼 예리한 아버지의 시선에 의해 도려내지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떨궜다.
“너랑 상관있는 일이냐?”
“….”
“상관있는 일이냐구 묻잖아?”
“네.”
“왜 그랬냐?”
그때 불쑥 반감이 솟았다. 뻔히 아는 걸 묻는 게 고문 같아서 억울하기까지 했다. 내 입에서 뜻밖의 대답이 튀어나갔다.
“모르겠어요.”
“뭘? 뭘 몰라?”
“그것도 모른다니까요!”
아버지의 체중이 실린 주먹이 내게 날아왔다. 헤비급 권투 선수처럼 빠르고 강력한 펀치가 내 뺨과 머리를 때리고 등, 어깨를 짓이겼다. 나는 빈 통조림 캔같이 쭈그러진 채 나동그라졌다. 아버지는 나를 일으켜 세운 뒤 계속 때렸다. 엄마와 누나들이 달려 나와 나를 비난해가며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사건 자체가 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말릴수록 아버지의 분노는 거세질 뿐이라는 걸 깨달은 누나들은 포기했다.
곧 엄마의 얼굴도 사색으로 변해갔다. 아버지의 주먹질은 규칙적인데 그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제발 듣는 시늉만 하지 말고 좀 들어. 이놈아. 이젠 고철을 훔쳐 팔아? 왜, 한전 물건이 다 네 물건 같든?”
나는 너무 맞아 그로기 상태만 남겨둔 권투 선수같이 내동댕이쳐졌다. 벌써 힘이 고갈됐는지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머리가 멍했다. 심하게 다쳐버릴 것만 같아서 벌벌 떠는데 아버지의 말들이 귓가에서 벌떼처럼 윙윙거렸다.
“규칙이란 한번 어기기 시작하면 계속 어기게 돼 있어. 너, 규칙이 왜 생겼는지 알아? 사람은 많고, 먹을 건 모자라고, 당연히 그 중 얼마는 금 밖으로 밀려나야겠지. 규칙은 말야, 못나서 뒤쳐질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내쫓기 위해 만든 핑계야. 벌은 쇼에 불과해! 그런데 그 덫 속으로 네 발로 걸어 들어가? 흥, 이유야 있겠지. 그래도 하지 마! 왜? 하면 끝이니까!”
아버지가 내 뺨을 한 번 더 세게 갈긴 뒤 날 집어 들어 던졌다. 그때, 갑자기 내 몸이 공같이 튀어 올랐다. 한순간에 공포와 망설임이 사라지며 적개심이 독 오른 뱀의 머리처럼 고개를 쳐들었다. 놀랍게도 나는 내 안에서 제어 장치가 풀려버리는 걸 느꼈다. 나는 자유로워졌다. 나는 아버지에게 달려들어 그의 가슴과 배를 마구 두들겼다.
“아버지는 왜 나만 미워해요? 왜 나한테만 무섭게 해요? 누나들에겐 잘해주면서 왜 난, 난?”
벽같이 서서 어이없어 하던 아버지는 나를 가볍게 뜯어내 방바닥에 던졌다. 나는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 아버지의 다리를 부둥켜안고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나중엔 앞 이빨로 아버지의 한쪽 무릎을 물었다. 아버지가 억, 하고 비명을 지르며 나를 걷어찼다. 나는 일어서서 다시 아버지의 허벅지를 껴안았다.
내 행동은 늘 아버지에게 지나치게 야단을 맞아온 데 대한 반항만은 아니었다. 아이들과 부대끼며 느낀 고통과 서러움, 여전히 매여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염증이 화학 작용을 일으키고 있었다. 또 내게 어리석은 피를 물려준 장본인인 아버지가 내게 이럴 순 없다는 어리광도 촉매 작용을 했다. 거의 발작에 가까운 괴성을 질러대면서도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버지가 아교풀같이 들러붙는 나를 한 손으로 뜯어내 방바닥에 앉혔다. 내 몸은 다리 잘린 개구리처럼 팔짝팔짝 뛰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얼굴은 차분해져 있었다. 그는 밖으로 나가 매끈한 각목을 갖고 돌아와 엎드려뻗치기를 하라고 명령했다. 나는 매를 맞으며 내 몸에서 가장 부드러운 살이 으깨지는 듯한 통증 끝마다 숫자를 붙였다. 정확히 열 대를 채웠을 때 아버지가 출장소의 창고로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나는 절뚝거리며 그곳으로 들어갔다.
네 평 정도 되는 음침한 공간 안엔 깨지면 유황 냄새를 터뜨리는 애자와 퓨즈, 전선, 빈 변압기 따위가 잔뜩 쌓여 있었다. 창고만의 눅눅한 어둠 속에서 그것들은 증기 기관차가 한창 질주할 때 나는 화근내를 물씬 풍겼다. 사방 구석에서 이상한 검은 짐승들이 뛰쳐나올 것만 같아 너무 무서웠다. 벽을 보고 눕고 싶은데 엉덩이가 아려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을 때 아버지가 나를 불러냈다. 마루의 벽시계를 보니 정확히 한 시간 만이었다. 아버지는 또 열 대의 매를 똑같은 강도로 때렸다. 한 대씩 맞을 때마다 수를 세야 하는 규칙도 똑같았다. 다리가 넷인 짐승같이 엉금엉금 기어 창고로 돌아왔을 땐 어둠보다도 엉덩이가 깨질 것 같은 통증 때문에 울었다. 가만히 있으면 몸이 뒤틀려버릴 것만 같아 엉덩이를 더더욱 높이 치켜올려야 했다.
통증이 얼마쯤 가라앉았을 때 아버지가 다시 나를 불러냈다. 이번에도 정확히 한 시간 만이었다. 아버지는 또 열 대의 매를 때렸다. 엉겁결에 잘못했어요, 라는 말이 터져 나왔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맞고 갇히는 일을 다섯 번 반복하자 눈물도 말라버렸다. 또 통증도 무뎌졌다. 아픔이 내 몸의 일부 같기도 했고 몸에서 엉덩이만 떨어져나간 듯 허전하기도 했다. 처음엔 무섭기만 하던 창고의 어둠과 냄새, 습기도 아늑하게 느껴졌다. 정말이었다. 집보다 창고가 훨씬 편했다. 그리고, 혼자 있는 것도 편했다.
*
부자간의 살풀이를 거치며 아버지가 나를 믿게 된 뒤 나는 본격적으로 토미가 파놓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많이 악랄해진 그는 틈틈이 돈이 될 만한 고철들과 간단한 전기 부품들을 원했다. 물론 시도 때도 없는 요구는 아니었다. 들키지 않을 만큼만 간격을 지키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라. 그것이 토미의 룰이고 주문이었다. 욕심을 덜 부리는 대신 안전하게 오래 가는 쪽을 선택한 정교한 착취였다. 딴 생각을 하면 보복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때 자꾸 내 손을 더럽히지 않고, 라는 진부한 표현을 쓰는 걸 보면 요즘 깡패 영화를 많이 본 듯했다.
우리를 혼내는 장본인이 함평중 불량배들이라는 건 곧 고철 판 돈을 쓰는 주체도 그들이라는 뜻이지만, 나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물건을 처리하는 지에도 관심 없었다. 지옥에 빠진 이상 그곳을 그런대로 견딜만한 곳으로 만들고 싶을 뿐이었다.
범죄도 일상이 되자 그럭저럭 견딜 만한 것이 됐다. 실제로 그 무렵의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한 번 따끔하게 혼이 난 게 오히려 운신의 자유를 주고 있다고나 할까. 보통 도둑질을 들켜 혼이 나면 사태는 두 가지로 갈린다. 내가 집에서 내놓은 문제아라면 아예 감시 대상이 될 것이고, 내가 사랑과 신뢰의 대상이었다면 벌을 받았으니 더 이상은 허튼 짓을 않겠지, 하고 믿어줄 수도 있다. 내 경우는 후자였다.
한결 투명하고 푸근해진 아버지의 눈 속에 미안함, 연민까지 어려 있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그것이 나를 움직이기 편하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순 없었다. 나는 자주 나 자신이 싫어졌다. 자포자기에 자기혐오까지 보태지면 견디기 힘들었다. 다시 아버지에게 호되게 맞았으면 하는 충동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나의 정기적인 도둑질도 점점 세련돼졌다. 속도와 욕심의 조절은 물론 표정 관리에도 베테랑에 돼가는 나를 발견하고 흠칫 놀랄 때도 많았다. 가끔은 내가 도둑이라는 사실도 잊었다. 그냥 내 몫을 찾는 일처럼 느껴진다고나 할까. 백주대낮에 태연한 얼굴로 남의 물건을 훔쳐 갖는 소매치기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