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남자의 왕국 ①
결혼식이 끝나자 아버지는 관대해졌다. 불우하고 고독한 사위에게 아버지 노릇과 후원자 노릇을 모두 해주기로 결심한 듯했다. 신혼부부가 여행을 떠난 뒤 집에서 벌인 동네잔치에서 술을 몇 잔 걸치고 껄껄 웃는 아버지의 얼굴은 밝았다. 손님들의 덕담에 일일이 감사해하며 호탕하게 웃는 그에게선 어수선한 결혼을 멋지게 수습했다는 자부심마저 엿보였다.
졸업반인 매형이 마지막 겨울 방학을 누나와 집에서 보내는 동안 아버지는 광주의 점포 하나를 팔아 서울 장충동에 전셋집을 마련했다. 방 두 개에 부엌, 널찍한 마루가 있는 독채로 신혼부부에겐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다.
서울로 올라가기 전날 짐을 챙긴 뒤 아버지 앞에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앉은 매형은 비장해 보였다. 도통 먼저 말을 거는 법이 없는 그가 먼저 결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동안 영화 같은 건 잊고 살겠습니다.”
거꾸로 아버지의 얼굴은 환해졌다. 평소의 사람 좋은 웃음이 꿈틀꿈틀 살아나려 하는 걸 꾹 참으며, 그는 물었다.
“어디 취직할 덴 있나?”
“예. 선배가 일본 완구를 수입해 파는 회사를 하는데 거기서 함께 일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영업 파트에서 뛰며 소비자들의 기호를 파악하는 감각을 익히면 기획에도 끼기로 했습니다.”
“음, 그것도 좋은 경로지. 그래, 괜찮군.”
“제가 좀 남다르게 자라서 그런지 결혼이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연애할 때와는 많이 다릅니다. 진짜 가족이 생긴 것 같고. 제가 만든 가족부터 챙기며 평범하게 살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살만 하면 계속 그렇게 살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결혼을 안 했으면 모를까 했으면 평범하게 살아야지. 암, 평범한 것도 위대한 거야.”
두 사람을 지켜보던 할머니와 엄마도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두 여자는 아버지의 애정과 호의에 감동을 받아 자신을 바꿔보겠다고 선언한 매형에게 감동해 있었다. 벌써 매형을 사랑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토록 못마땅해했던 매형의 개성과 무능도 신비로운 화학적 변화를 거쳐 보호해주어야 할 무엇이 돼 있었다.
그런 돌변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나만큼 잘생기진 않았지만 은근히 사람을 끄는 매형의 얼굴과 평소엔 과묵해도 일단 입을 열면 영화 속 대사를 읊는 것 같은 달변, 그리고 아이 같은 천진함이 남아 있는 성격도 매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매형을 절대 식구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큰누나의 결혼과 동시에 매형에게 아주 까다로워졌다. 그가 가족들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가 바보처럼 보였다. 심지어 일거수일투족이 거슬렸다. 내가 받던 관심을 그와 나누게 된 것도 불쾌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었다. 가끔 나는 큰 칼을 옆구리에 차고 그에게 덤벼들어 큰누나를 되찾아오고 싶다는 충동까지 느꼈다. 물론 큰누나는 원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
시월의 네 번째 토요일, 목포에서 내려온 셋째 누나는 아예 남동생은 남자도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내 앞에서 교복 블라우스를 거침없이 벗어 빨래 바구니 속으로 던졌다. 민망해진 내가 돌아서자 냉큼 내 앞으로 뛰어와 큰 눈을 반짝, 빛내며 말했다.
“오면서 봤는데 태권도장 근처의 어떤 집에서 불이 났더라. 막 불을 껐는지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었어. 네 또래 아이가 우는 소리도 들리고. 그런데 걔 네 친구 같던데. 이름이 뭐였더라.”
“태권도장에서 어느 쪽으로 몇 번째 집?”
“글쎄, 안 세봐서 모르겠네. 그리고 방향은…. 오른쪽이었나? 아니 왼쪽?”
“에이, 여자들이란.”
“이게 또 남자인 게 뭐 대단한 훈장이라고. 그런데 수형아, 왜 불이 났을까? 애들이 불장난하다 불낸 게 아니라면, 또 전기 사곤가? 하긴 워낙 흔한 일이긴 하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불이 난 집이 은수네 집 같다는 직감 때문이었다. 은수는 한 달 전 내가 토끼 사육장 앞에서 만난 아이였다. 나도 내 기억이 선명하진 않다고 우기고 싶지만 슬프게도 내 기억은 또렷했다. 내가 녀석에게 준 퓨즈가 눈에 잘 띄는 스패너형 퓨즈라는 것도 또렷했다. 나는 출장소 직원에게 호기심을 가장해 그 퓨즈의 용도를 물어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공장용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자잘한 전기 사고야 함평 출장소의 월례 행사 같은 것이지만, 이번 사건은 달랐다. 나의 무지와 무책임함 때문에 생긴 필연적 사고인 것이다. 나는 슬리퍼를 찾아 신고 집 밖으로 달려 나갔다.
은수네 집 앞은 시끌벅적했다. 집 안에서만 불이 번지다 진화가 됐는지 건물 주위에 물이 흥건했고, 다급히 불을 끄는 데 사용된 듯한 양철 바께스들이 땅에 뒹굴고 있었다. 막 잠자리에 들었다 뛰쳐나왔는지 파자마만 입은 남자들도 많았다. 활짝 열린 대문 안에서 은수가 아버지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고 있었다.
“망할 놈의 새끼. 왜 오늘따라 퓨즈를 갈아보겠다고 설쳐 이 난장판을 만들어? 내가 한동안은 쓸 만하다고 놔두라고 했지? 공부는 안하고 풀방개비 마냥 쏘다니는 걸로도 모자라 이젠 화재 사고야? 똑바로 서! 못서? 이건 애비가 야단을 쳐도 어디서 개가 짖냐니.”
은수 엄마가 작은 보따리처럼 왜소해진 은수를 꼭 끌어안았다.
“그만하세요. 안 그래도 잔뜩 놀라 밤에 잠도 못 잘텐데. 놀란 애 더 놀래켜서 좋을 일이 뭐 있다고. 사내 녀석이 무섬증까지 끼고 사람 노릇 할 수 있겠어요?”
“그렇게 갓난애 싸고돌 듯 편을 드니까 애가 천방지축이지.”
“계속 소리 지름 내가 앨 안고 불구덩이로 뛰어들어 버릴 거예요. 에그, 아가, 어디 보자.”
언뜻 보면 한 학년 아래로 보일 만큼 아담한 은수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물을 머금어 묵직해진 검푸른 벨벳 같은 밤하늘 속으로 변성기에 접어든 사내애의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퍼져갔다. 웅성거리던 어른들이 이제야 할 일을 발견했다는 듯 은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은수도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를 키웠다. 늦가을 밤의 해프닝 같은 화재의 방화자이자 첫 목격자인 녀석은 두 손등으로 눈을 비비다 나를 보다 했다.
사고 때의 스파크 때문인지 녀석의 앞 머리카락의 3분의 2가 그을린 채 날아가고 두 눈썹도 반만 남아 있었다. 작은 단추같이 동그란 눈 속의 공포도 애처롭다기보단 우스꽝스러웠다. 나는 웃음이 터지려 하는 걸 꾹 참았다. 은수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얼른 표정을 바꿨다.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 위에 손을 척, 얹었다. 돌아보니 토미였다. 별들이 무색해할 만큼 빛나는 피부를 가진 녀석은 눈짓으로 은수 집을 가리켰다.
“도대체 왜 불이 났을까?”
나는 그의 축축한 손등 위로 송곳을 내리찍는 상상을 하며 이를 악물었다.
“넌 한전 출장소장 아들이잖아. 보통 사람들 보단 전기 사고에 대해 많이 알 거 아냐?”
“내, 내가 뭘? 뭘 알아?”
“그럼 어떻게 불이 났지?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을 텐데.”
그때 어른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제야 사고를 현실적으로 처리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상의도 하고 역할 분담도 하는 듯했다. 사람 좋고 발 넓은 허 관장이 토미에게 기다리라는 뜻으로 등을 두드려주고 한전 사무소 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머릿속이 하얗고 입안도 까칠했다.
그때 토미가 내 앞을 지나 쏜살같이 대문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사람들이 의아해하는 눈으로 그의 길고 날렵한 두 다리를 봤다. 나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떴다.
육칠 분쯤 흘렀을까? 토미가 대문 밖으로 나왔다. 호기심에 가득 차 눈으로 이유를 묻는 사람들을 보자 그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냥 화재 현장이 궁금해서요.”
어른들은 다시 산만해졌다. 궁금해 하거나 걱정하는데 쓸 에너지를 다 써버린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떴다. 아이들 둘이 끝까지 남아 있는 걸 의아해하던 약국 주인 부부마저 떠났을 때 토미가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다. 너무 두려운데도 녀석의 긴 다리가 만들어내는 보폭을 따라잡는 건 여전히 짜증스러웠다. 나는 될 대로 되라 하는 심정으로 욕을 퍼붓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일제히 문들이 닫힌 시장 상가까지 왔을 때 토미가 나를 제 앞에 세웠다. 토미는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 눈 앞에 들이밀었다. 반쯤 그을리고 훼손된 그 물건은 내가 은수에게 준 스패너형 퓨즈였다. 녀석이 기어이 은수 집에서 퓨즈를 찾아 갖고 나온 이유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차분해진 녀석은 범인을 취조하는 형사라도 된 듯 의심과 확신이 모두 담긴 말투로 다그쳤다.
“이거 네가 토끼 사육장 앞에서 은수에게 준 퓨즈 맞지?”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막연한 듯하면서도 뼈아프게 아, 이 녀석은 악마구나, 내가 겁도 없이 악마와 거래를 해왔구나, 하는 생각만 했다. 왜 그토록 많은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이 악마를 죽이고야 마는지 알 것 같았다. 악마를 죽이지 않는 한 주인공의 고난이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해피엔딩은커녕 평화도 꿈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날 시장 입구에서 녀석은 나를 순순히 보내주었다. 내 속에서 원한으로 가득 찬 지옥이 끓기 시작한 걸 눈치챈 것이다. 더 건드렸다간 내가 뿜는 불길에 함께 불타버릴 수도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집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며 나는 처음으로 그가 제 집에 도착하기 전에 불의의 사고라도 당해 감쪽같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