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청회색 마당에 내려앉은 우울 ⑥
한 달 뒤 큰누나는 학교에 휴학계를 내고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예비 매형의 어머니와 새아버지를 만나 결혼 절차와 혼수에 대해 의논하는 과정은 이 결혼이 결코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님을 연거푸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게다가 큰누나는 계속해서 예측불허의 모습을 드러냈다. 혼수 품목을 정하고 사들이는 과정에서 거침없이 욕심을 부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저토록 욕심이 많은 여자가 어쩌면 그토록 가난하고 고독한 남자를 남편으로 골랐을까.
어쩌면 누나는 그냥 모든 것을 해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내가 보기엔 매형의 사랑만 순도가 낮은 게 아니었다. 누나의 사랑도 별로 순도가 높아 보이지 않았다.
식장에 불러 모으기도 쉽지 않은 시댁 어른들의 예단을 고를 때도 누나는 최상품으로 해주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다 토를 달았다.
“초희 언니에겐 이딴 거 안 해줬어!”
누나의 그 말은 일부러 찾아 밟은 지뢰처럼 엄마를 폭발시켰다. 엄마는 흥정하던 비단들을 치워버리고 일어섰다.
“뭐? 초희 만큼 해주지 않는다고? 너 말 잘했다. 그래, 부족한 것 없이 바리바리 싸서 보냈더니 육 년을 못 살고 그 지경이 나더라!”
“엄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누나는 온몸으로 진저리를 치며 엄마를 노려봤다. 누나는 두 눈을 꼭 감고 다시 한 번 온몸으로 절규했다.
“나는 초희 언니와는 달라!”
“달라? 허, 달라? 뭐가 달라?”
“당연히 다르지!”
“그래. 다르지. 초희가 언제 너처럼 막되먹게 굴더냐? 니가 지금 부모를 뭘로 보고. 허, 니까짓 게 이제 와서 격식을 따져? 니가 언제 격식 지켜 남잘 골랐다고.”
엄마는 큰누나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마당으로 끌고 나왔다. 오후 세시 무렵이면 마당 한가운데로 모여들어 매스게임이라도 하듯 온갖 무늬들을 만들어내던 비둘기들이 깜짝 놀라 튀어 올랐다. 새들의 잿빛 날개들이 일으키는 태풍으로 먼지가 부였다. 집과 하늘을 밀봉해버린 회색 안개 속에서 액션 영화의 주인공 같기도 하고 중병 환자 같기도 한 엄마가 힘줄이 돋은 두 주먹으로 누나의 등을 내리치고 있었다.
“이 도둑년! 내가 앞 안 보이는 놈팽이와 연애질이나 하라고 널 서울까지 보낸 줄 아냐? 집의 돈이란 돈 다 긁어 보냈더니 뭐? 영화? 영화감독? 그래, 넌 평생 밥 먹지 말고 영화나 보고 살아라!”
나는 너무도 노골적이고 야만적인 엄마의 표현에 깜짝 놀랐다. 그토록 영화를 숭배하고 사랑하던 엄마의 입에서 영화를 모독하는 말이 나오다니. 과연 어느 쪽이 엄마의 진짜 얼굴일까? 그러나 생각에 잠겨 있을 틈은 없었다. 엄마가 집 뒤쪽에 세워둔 싸리 빗자루를 들고 와 누나의 어깨와 등을 후려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특하게도 누나는 엄마가 폭발한 뒤엔 입을 꼭 다물고 매를 맞아주었다. 다시 한 번 죽은 듯이 맞아주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능적으로 느낀 듯했다. 정말 엄마는 행인들이 대문 안을 들여다보는 것도 아랑곳 않고 거의 네가 죽나 내가 죽나 보자 하는 기세로 누나를 팼다.
“이 나쁜 년, 철딱서니 없는 년…. 니 그 큰 눈엔 줄줄이 남은 동생들이 안 보이지? 보이면 이럴 수 없지. 봐야 할 것도 못 보는 그딴 눈은 뭐 하러 달고 다녀? 내가 아예 뽑아버리겠어!”
엄마의 빗자루는 사정없이 누나의 몸 곳곳을 두들겨댔다. 엄마의 인생의 모든 한과 분노, 슬픔이 누나의 몸 위로 폭포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누나가 다칠까 봐 걱정을 하면서도 아무도 나서서 말리지 못했다. 엄마의 기세가 대단하기도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엄마를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만큼 표현하진 않아도, 엄마가 얼마나 많은 기대를 큰누나에게 쏟아 부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엄마에게 큰누나는 엄마가 못 해본 모든 것을 대신 누려야 할, 즉 또 다른 엄마였다. 엄마와 누나의 관계가 아버지와 누나의 관계보다 훨씬 가까웠던 것이다.
*
그해 가을 큰누나는 함평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눈물이 나도록 푸르고 화창한 날, 백발의 신부님 앞에 팔짱을 끼고 선 두 남녀는 당장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해도 손색이 없는 선남선녀였다. 신부님 앞에 서기까지의 사연이야 어떻든 치마폭 가득 모조 진주알들이 박힌 웨딩드레스를 입고 흰 면사포를 쓴 누나는 아름다웠다. 신부님의 질문들에 다소곳하게 대답하는 누나의 옆얼굴이 너무 고결해서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졌다. 어느새 누나는 다시 천상으로 돌아간 것일까.
근사해 보이는 건 누나뿐만이 아니었다. 난생 처음 양복을 입어봤다는 매형도 근사했다. 본인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매형에겐 편한 옷보다 양복이 한결 잘 어울렸다. 남자에겐 군복뿐만 아니라 양복도 전투복이라는 걸 실감한 순간이었다.
할머니는 평소엔 잘 보여주지 않는, 양쪽 입꼬리만 살짝 올리고 웃는 미소를 종일 보여주었다. 엄마는 첫딸을 결혼시키는 엄마답게 미사 내내 눈을 붉히더니 기어이 감격성 눈물을 손수건에 쏟아내고야 말았다. 아버지의 감회야 말할 것도 없었다. 그간의 궂은일들을 모두 잊은 듯 어여쁜 딸에게서 눈을 못 떼는 그는 독을 감춘 당돌한 처녀에게 사로잡힌 순진한 청년 같았다. 눈물이 흘러내릴까 봐 자꾸 눈을 치켜뜨는 그의 머릿속에선 아기 때부터 처녀시절까지의 누나가 영화 필름들처럼 스쳐가고 있을 것이다.
혼배성사가 끝난 뒤 찬란한 가을 햇빛이 내리쬐는 성당 뜰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땐 그 순간이 영원 같았다. 흰 비단의 감촉처럼 부드러운 바람이 내 뺨을 만지고 머리카락들을 흔들더니 뜰 안에 가득 핀 분홍 코스모스와 핏방울 같은 홍국들을 흔들었다.
아버지같이 눈을 치켜뜨며 나는 생각했다. 남아 있는 무수한 나날들도 꼭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꼭 이렇게 아름답게, 선명하게, 그리고 환하게. 그럴 수만 있다면 사람들은 계산과 꿈, 체면 때문에 서로 할퀴고 다치고 울고 했던 기억들을 다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