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내가 평화의 상징이라고? ④
그날의 싸움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눈치챘던 대로 토미는 탁월한 싸움꾼이었다. 내겐 십오 일보다 더 긴 십오 분 동안 나는 일방적으로 맞았다.
우선 체력 면에서 녀석은 월등했다. 엄마가 내게만 먹인 온갖 약들 덕분에 내 체력은 평균의 한국 아이들 보단 좋았지만 그와는 게임이 되지 않았다. 살이란 살은 죄 뼈에 촘촘히 붙은 암팡진 몸을 가진 녀석들이 싸움꾼으론 최고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체력과 기술에서 우월한 상대와 맞붙었을 땐 상체는 제법 발달했지만 하체는 허약한 내 체형이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많이 맞으면서도 쉽게 쓰러지지 않으려면 하체가 발달해줘야 하는데 불행히도 나는 아니었다. 지금껏 내가 자주 승리할 수 있었던 건 또래 아이들 보다 체격과 체력이 좋아 싸움을 오래 끌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그날 나는 맞는 것도 중요한 경험이라는 걸 알았다. 자꾸 맞으면 맷집도 생기고 상대가 어딜 때릴지 알아차리는 눈썰미도 생기고 결국 상대방의 허를 찌를 공격법도 찾아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녀석의 주먹 한 방 한 방에 실린 감정에 비하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싸움의 이유인 감정 면에서도 그는 나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싸움의 초반에 나는 내가 지뢰밭을 건드렸다는 걸 알았다. 그가 살아오며 느낀 분노와 슬픔, 울화가 전쟁 영화 속의 포탄들처럼 내 흰 육체 위로 쏟아져 내렸다. 내가 없었다, 라고 말해도 좋을 싸움 끝에 나동그라진 내 앞에 우뚝 선 녀석의 땀, 눈물범벅의 얼굴은 용암처럼 뜨겁고 기괴해 보였다.
지구 위의 모든 것을 녹여 삼킬 것 같은 분노가 지나간 뒤 그의 얼굴에 나타난 건 피로, 그것도 엄청난 피로였다. 목포 부두에서 마주쳤던 늙고 지친 노무자들의 눈에서도 그런 피로를 본 적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내 몸을 걷어찬 뒤 녀석은 말했다.
“다시는, 다시는 날 건드리지 마라! 그땐 넌…. 죽는다.”
녀석은 돌아서서 뚜벅뚜벅 걸어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꽤 오랫동안 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앉아 있었다.
그날 저녁 내내 나는 길을 걷다 담벼락에 머리를 찧었을 때처럼 얼얼했다. 밤에는 평소보다 길고 깊은 잠을 잤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야 비로소 환한 햇빛 속에서 공포에 휩싸였다. 나의 패배는 마을 조무래기들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마 강력한 영향을 미치겠지. 나는 당장 토미를 찾아가 어제 일을 비밀로 해달라고 애원하고픈 충동을 느꼈다. 한 번의 치욕으로 힘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순진한 아이는 아니었다. 토미는 결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아이들이 녀석에게 맹렬한 호기심을 느끼고 있는 타임이 아닌가? 그러자 다시 기가 막혔다. 이 모든 사태를 자초한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이. 그날 밤부터 나는 내 몸 속의 뼈들을 모조리 녹여버릴 것만 같은 치열한 열감기 속으로 도망쳐버렸다.
*
다행히도 토미는 우리의 싸움의 결과를 폭로하진 않았다. 열흘이 지나고 2주일째가 되도 그가 발설하지 않자 나는 그가 침묵을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나도 생각이 달라졌다. 남아 있는 힘을 스스로 내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는 매사에 태연한 척하며 하던 대로 해나갔다.
그러나 전과 똑같을 순 없었다. 나는 많이 소심해졌다. 전보다 더 잘난 척하며 아이들에게도 걸핏하면 눈을 부라렸지만 안에선 불안하고 불편했다. 한마디로 못난 사람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을 내가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런데 토미가 어떻게 변하지 않겠는가? 함평읍 조무래기들의 리더인 나와 맞붙어 가뿐하게 이겼다는 건 곧 이곳의 패권을 넘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인데.
그러나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함평에서 녀석은 외계인이었다. 지극히 담백한 물속에 떨어뜨려진 한 방울의 검은 기름이었다. 그가 아무리 아이들의 시선을 잡아채도, 탁월하게 싸움을 잘해도 일상에서 아이들과 섞이거나 그들의 대장이 되는 걸 두고 볼 부모는 없었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부모로부터 토미가 자신들과 얼마나 다른가에 대해 주입받았다.
큰 도시로 나가면 토미 못지않게 무시를 당할 시골 사람들이 혈통을 이유로 그를 무시하고 제 우월함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면 쓸쓸해졌다. 내게 보여주던 건강한 미소와 또 다른 부모를 만난 듯한 훈훈함마저 느끼게 하던 자상한 손길을 떠올릴 때면 입안에 구내염이 잔뜩 생겼을 때처럼 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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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가 싸움 전으로 돌아갈 순 없을 거라는 내 추측은 맞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끓어 넘치는 욕망을 받아줄 수 없으니 약점투성이인 나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녀석의 노예가 되어갔다. 그는 나를 보기만 하면 분노가 폭발하는지 욕을 퍼붓고 싸움의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협박하고 심지어 강펀치를 날리기도 했다. 내가 치졸하게라도 복수를 해주고 싶어서 쓰러지는 시늉을 하면 또 혼비백산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시간이 가자 그런 발작적인 폭발의 횟수는 줄어들었고 대신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것들을 원하기 시작했다.
녀석이 나에게 일상적으로 원한 것은 돈과 군것질거리였다. 대체로 넉넉지 않은 내 용돈을 나눠 쓰거나 집 안에 감춰둔 과자들을 갖다 주곤 했지만, 그걸로 모자랄 땐 아이들에게서 뺏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아이들에 대한 판단 기준도 달라졌다.
언제부터인가 토미에게 상납할 만한 물건들을 꼬박꼬박, 많이 갖다 주는 아이들이 돋보이기 시작했다. 전처럼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
내가 변해가자 나에 대한 아이들의 감정도 변했다. 흥분과 도취 속에서 더 근면하게 아이들을 챙기게 해주던 산뜻하고 자연스러운 숭배는 사라지고 습관적인 복종과 형식적인 화합만이 남아 있었다. 아이들이 나에게 실망하고 또 지겨워하는 걸 느낄 때면 가슴이 면도칼에 벤 듯 아팠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내 신경이 이 위태로운 곡예의 긴장을 오래 견디기 힘들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물론 이성이 작동할 때는 상황이 또렷이 보였다. 사실 토미가 내 패배를 폭로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폭로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녀석의 입장에선 비밀을 유지해주는 대가로 무언가를 얻어내는 쪽이 훨씬 나았다.
하지만 그가 어느 순간 발끈해 이도 싫다 저도 싫다 다 싫다 하게 되면 그땐 끝이 올 수밖에 없었다. 가끔은 나도 이 모든 것의 끝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뜻밖에도 끝은 엉뚱한 곳에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