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내가 평화의 상징이라고? ②
할머니는 오후 세시쯤 일어나셨다. 두툼한 커튼으로 햇빛을 차단한 방 안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할머니는 누렇고 불투명했다. 다시 한 번 할머니가 까마득히 멀게 느껴졌다.
네시 반쯤엔 의사가 왕진을 와 이틀째 잠만 자고 있는 아버지를 진찰했다.
“고비는 넘겼습니다. 제가 권한대로 입원해 치료받으셨으면 회복이 빨랐을 텐데. 다시 발병하면 심각해질 수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섭생에, 특히 단백질 섭취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의사가 떠난 뒤 아버지는 삼십 분 단위로 눈을 떠 방안을 둘러보기도 하고 식구들에게 아는 척을 해주기도 했다. 다섯시 반엔 꽤 오래 일어나 앉아 직원에게 업무 보고도 받았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다행스러워하거나 안심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갈색 반닫이장처럼 무뚝뚝한 할머니의 얼굴에 표정이 나타난 건 엄마가 시장바구니를 챙겨 들고 외출을 할 때였다.
“에미야, 오늘 저녁은 푸짐하게 먹자. 알아서 장을 봐 오너라.”
엄마의 얼굴에 저이가 당장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을까요? 하고 묻는 듯한 표정이 나타났지만 곧 사라졌다. 엄마는 얇은 연두색 스웨터의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우고 집을 나섰다.
그날 저녁 할머니가 좋아하는 나물들과 어리굴젓, 굴비까지 올라온 밥상은 아버지의 안색과 대비되어 화려했다. 할머니는 소식가답지 않게 평소보다 식사를 많이 했다. 틈틈이 엄마 앞으로 반찬 접시들을 밀어주기도 했다.
역시 소식가인 엄마는 어떤 강렬한 기운에 휘말린 듯 접시 위의 음식들을 말끔히 비웠다. 또 할머니가 뼈를 발라 내미는 생선살들도 다 받아먹었다.
식사가 끝난 뒤 할머니는 둘째 누나에게 설거지를 시켰다. 그것은 곧 엄마더러 할머니 앞에 남아 있으라는 명령이기도 했다. 고개를 숙인 채 엉거주춤 앉아 있는 엄마의 정수리를 노려보는 할머니의 얼굴은 비장했다.
“나도 지금껏 남의 말을 듣고 살아온 사람은 아니다. 사람들이 아둥바둥, 열심히 사는 거 보면 우습기도 했어. 저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싶어서. 하지만 단 하나 남은 자식이 앓으니 나도 별 수 없구나. 마음 붙일 데가 없으니 한물간 늙은 무당 말이라도 듣고 싶다.”
할머니는 수저를 놓자마자 다시 이불 속으로 돌아가 잠이 든 아버지를 힐긋 본 뒤 엄마 쪽으로 돌아앉았다.
“지금 당장 애비 머리맡에 가서 앉거라.”
상상을 뛰어넘는 이상한 명령에 놀란 엄마가 동공을 활짝 열고 할머니를 봤다.
“너 요즘 자꾸 여러 번 말하게 하는구나. 가서 앉으라면 앉아!”
꽤 오래 망설이던 엄마는 아버지의 머리맡으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비참해하는 엄마를 주시하는 할머니의 얼굴이 너무 살벌해서 낯설었다. 저렇게 엄마를 미워해도 좋은가를 떠나 할머니가 타인에게 명령하거나 강요를 할 만큼의 강한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 자체가 뜨악했다. 할머니는 또박또박 말했다.
“무당 여편네가 말하길, 이 집안에 여자들이 잘못 들어와 사내들이 빨리 죽어 나간다는구나. 너나 나나 화근 덩어리라는 거야. 그러니 넌 지금부터 네 팔자와 싸워야 해.”
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할머니의 얼굴이 한 백 년쯤 점을 치고 굿을 해온 무당처럼 꺼림칙해 보였기 때문이다. 나중엔 혹 할머니가 어젯밤에 만난 무당의 기운을 고스란히 몸에 담아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할머니는 진짜 무당처럼 눈을 가늘게 떴다.
“오늘부터 저 애가 낫는 날까지, 아니 정확히 스무 날 동안 초저녁부터 자정까지 저 애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거라.”
“어머니!”
“그렇게 해!”
“어머니!”
“아직도 모르겠니? 넌 벌을 서야 하는 거야!”
할머니의 얼굴 근육들이 사납게 꿈틀거렸다. 내가 보기에도 그 근육들에 맺힌 단호함과 광기엔 한 치의 틈도 없어 보였다. 평소같이 결정적인 선은 넘지 않고 대들어보려 하던 엄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잠시 후 엄마는 체념했다.
할머니는 당신 방의 매화장에서 빨간 추상화 같은 부적들을 꺼내와 아버지의 베개와 요 밑에 깔았다. 아버지의 몸에 깃든 병 귀신을 내쫓기 위해 하는 행위라고 했다. 엄마의 얼굴엔 될 대로 되라 하는 표정까지 나타났다. 동작들도 제 잘못을 알지 못한 채 벌을 서는 아이처럼 무례하고 무성의했다. 절대로 남편의 치유를 간절히 비는 아내로 보이진 않았다.
다음 날 밤부터 엄마는 자신을 인형처럼 방치해버렸다. 아버지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앉는 순간 영혼이 외출을 하는지 얼굴은 무표정한데 옷차림은 훨씬 대담해졌다. 가면처럼 진한 화장을 하고 화려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앉아 누워 있는 아버지와 맞은편에서 감시하는 할머니를 조롱하기도 했다.
그럴 때의 엄마는 외가에 가는 기차 안에서 본, 폐촌 입구에 세워진 여자 장승처럼 기괴해 보였다.
*
연극을 시작한 지 십오일 째 되는 날이었다. 초저녁부터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식구들은 모두 일찌감치 귀가해 저녁밥을 먹고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안방에선 여전히 세 어른의 연극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젠 관람객 역할에도 싫증이 난 누나들은 방에서 나오려 하질 않았다. 막연한 공포에 휩싸인 채 의식을 지켜보며 최소한의 예의를 차려주던 초희 누나도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다.
비둘기 동네도 밖으로 나도는 새라곤 한 마리도 없이 조용했다. 요즘 새들 사이에선 새 대장이 정해지면서 새 규율이 작동하고 있었다. 새 대장이 힘을 얻기 위해 쏟아부은 에너지에 대한 존중과 수명이 다하려면 한참 먼 새 힘에 대한 두려움이 완벽한 복종을 만들어내는 시기였다.
시간이 가면 부하들의 욕망이 살아나면서 천국은 무너지고 피투성이 전쟁이 시작될 수밖에 없겠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균열 없는 명쾌한 권력을 쥐고 있는 대장 새가 부러웠다.
엄마가 초저녁에 방마다 불을 땠는데도 사택은 폐가처럼 춥고 음산했다. 부엌 옆 쪽방에서 숙제를 하던 나는 밤 열시를 못 넘기고 엎드려 잠이 들었다. 노곤한 잠 속에서도 나는 엄마의 연극이 끝나고 식구들이 잠자리에 들고 집 안의 불들이 모두 꺼지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 어둠 한 가운데서였다. 어떤 손이 내 어깨를 쥐고 세게 흔들었다. 맹렬한 욕망과 집착이 느껴지는 그 손의 기에 눌려 나는 눈을 꽉 감았다. 눈사람처럼 똘똘 뭉쳐버린 나를, 그 손이 일으켜 앉혔다.
“아가 아가, 눈을 떠봐.”
반쯤 열린 내 입술에 뜨뜻한 사기그릇이 달라붙었다. 묽은 죽 같은 걸쭉한 액체가 입안으로 흘러들어왔다. 쓴 맛을 내는 온갖 약초들의 중심에 기름진 짐승의 살이 뭉근히 고아져 있는, 진하다 못해 역겹기까지 한 그 액체를 피하고 싶어 버둥거렸지만 내 머리를 쥔 손은 완강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약을 받아먹고 나면 밤새 속이 느글거렸다. 나는 구토만은 피해보려고 입을 틀어막고 모로 누웠다. 오랫동안 부대끼다 겨우 잠이 들면 세상의 모든 다리 가진 짐승들이 내게 달려드는 꿈을 꾸었다. 짐승들은 호흡곤란으로 헐떡거리는 붉은 폐를 활짝 열어 보이며 내게 돌진해왔다. 아무리 몸을 작게, 작게 똬리 틀어도 숨을 곳이 없었다. 결국 그들은 나를 덮쳤다.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면 새파란 새벽빛이 또 나를 찔렀다. 더 신기한 건 정말 짐승들에게 부대끼기라도 한 듯 등이 저리고 내장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밤새 중노동을 한 것 같았다.
그러나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고역은 계속되었다. 나는 밤만 되면 독약을 받아 마셔야 하는 죄수였다. 아니, 덫에 갇혀 피 흘리는 불쌍한 어린 짐승이었다. 그러나 정작 아침이 되면 엄마는 밤의 일에 대해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시력이 나쁜 사람처럼 가까이 와 눈의 시울을 잔뜩 좁힌 채 내 안색을 살피고 돌아서면 그뿐이었다.
*
1963년 겨울 토미는 함평읍에 정착했다. 캐러멜처럼 부드러운 피부와 불로 지진 듯한 곱슬머리를 가진 혼혈 소년이 무진관 허 관장의 양자가 된 사건은 읍의 탄생 이후 터진 몇 안 되는 대형 사건들 중 하나였다. 단순한 생활만큼 생각도 완고한 어른들 사이에서 그것은 우주 안의 두 별의 위험한 충돌에 맞먹는 불상사였다.
그러나 마흔세 살 독신 남자인 허 관장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황당한 일만은 아니었다. 외지인인 허 관장에 대해선 말들이 분분했다. 6.25때 지주였던 부모가 총살 당한 뒤 혼자 월남했다는 얘기도 있고, 고향인 부산에서 치정 살인 사건으로 아내와 아들을 잃고 떠돌다 흘러들어왔다는 얘기도 있고, 서울의 유명한 깡패 두목의 외아들인데 가업을 잇기 싫어 여기서 삼 년 저기서 삼 년 식으로 숨어 다니는 중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만약 그중 하나가 사실이라면 허 관장이 토미를 아들로 삼은 건 그럴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토미의 상처가 그의 상처에 삼투해 화학 반응을 일으켰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허 관장이 토미를 양자로 삼을 결심을 하게 된 건 토미가 서커스 천막 앞에서 단장에게 개처럼 맞는 모습을 보고 나서라고 했다. 남자와 여자를 다 좋아하는 변태인데다 성격파탄자인 단장이 동물 조련에 쓰는 채찍으로 토미를 때리며 욕을 퍼붓자 보다 못한 허 관장이 나서서 항의를 했다. 광분한 단장은 웅크린 토미의 등을 짓밟으며 입에 거품을 물고 반격을 했다.
‘내가 내 개를 패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이깟 깜둥이 놈을 사람대접 해주려고 사온 줄 알어? 이 새까만 놈은, 사람이 아냐. 아니 개보다 못해. 흥, 깜둥이 미군과 붙어먹은 양공주인 지 에미도 내다버린 놈을.’
결국 허 관장은 단장에게 달려들어 그를 흠씬 패버렸고, 경찰서에서 합의를 할 때 상당한 액수의 돈을 주는 대신 토미를 데려오는 걸로 담판을 지었다고 했다. 실제로 면사무소 직원에게 토미가 허 관장의 호적에 올라 있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도 있었다. 낳자마자 버려진 고아여서 정확한 나이를 알 순 없지만 건장한 체격과 우수 어린 성숙한 얼굴 때문에 우리보다 두세 살은 많아 보이는 토미에게, 나는 끌렸다. 게다가 미군 중에서도 멸시받는 흑인 병사 아버지에 양공주 엄마라니….
나는 이미 엄마라는 사람의 외모가 아이의 계급을 나타내주는 표지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떤 아이에 대해 전혀 모르다가도 그 애의 엄마가 학교에 찾아오면 그의 거의 전부를 알게 된다. 엄마의 옷차림과 안색, 손, 당당하거나 비굴한 표정, 젊어 보이는가 늙어 보이는가 만으로도 우리는 녀석이 가난한가 부유한가 행복한가 불행한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우한 어머니를 가진 녀석이 가엾었다. 불행의 한가운데에서도 불행을 무시할 수 있는 녀석에게 매혹당해가고 있던 나는, 슬프게도 곧 정신을 차려버렸다. 녀석이 내 시선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시선도 끌고 있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아이들을 매료시킨 건 먼저 토미의 체격과 체력, 운동신경이었다. 국제 스포츠에서 미국이나 유럽 국적을 가진 흑인 선수들이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종족 특유의 뛰어난 운동 능력을 가진 토미는 허 관장의 집중 훈련으로 보통 아이들의 두세 배 빠른 속도로 띠를 따가더니 결국 조교 비슷한 존재가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미 도장에 다니는 아이들은 토미만의 차갑고 우울한 카리스마에 압도돼 있었다. 그가 사내아이들 간의 권력 싸움에 초연하다는 점도 그들을 감동시키고 있었다.
나처럼 전력투구하거나 안달복달하지 않고서도 녀석이 힘을 얻어가고 있는 상황은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더 고약한 건 아이들이 나와 토미가 한 판 세게 붙는 빅매치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녀석들은 흠집이 난 내 이미지와 함께 흔들리고 있는 내 권력이 만만하다 못해 지루해진 것이다.
종수도 그런 분위기를 알아차리고 툭하면 희희낙락했다. 녀석이야말로 토미와 내가 제대로 한 판 붙길 원하는 장본인일 것이다. 그의 입장에선 내가 이긴다 해서 나빠질 건 없고, 토미가 이기면 통쾌할 것이다. 그리고 이건 삼분의 일의 가능성이지만, 둘 모두 서로에게 흠집이나 내고 나가떨어지면 종수가 어부지리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녀석들에겐 심심풀이인 게 내겐 죽고 살고가 될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힘에 초연한 녀석이 초조해하며 바둥거리는 나를 이기면 어떻게 되는가? 내 몰락엔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꼭 지라는 법만 있는가? 만약 내가 녀석을 이긴다면? 그것은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균열이 간 내 이미지를 수습하고 나는 거의 완벽해질 것이다. 갑자기 그 ‘완벽함’이라는 상태가 미친 듯이 궁금해졌다. 너무 궁금해서 머릿속이 지옥 불에라도 닿은 듯 뜨거웠다.
나도 모르게 내 욕망을 줄줄 흘리며 돌아다녔을까. 언제부터인가 토미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 녀석은 백화당 옆의 빵집이나 팥빙수집, 무진관 앞에서 나와 부딪히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내 도전이 어이없고 한심하다는 듯이.
그러나 내 안의 적개심이 녀석의 적개심을 일깨워버렸는지 그도 불쾌해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어디 한번 덤벼보시지, 하듯 내 몸을 거만하게 훑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녀석의 얼굴 위에 머무는 시간은 지극히 짧았다. 그는 자신을 자극하는 모든 것이 지겹다는 듯 평온을 되찾고 제 갈 길로 가버리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