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내겐 너무 무거운 의무 ⑤
“이게 무슨 냄새야?”
평소보다 한 시간 빨리 퇴근을 한 아버지가 코를 큼큼거리며 집 안을 돌아다녔다. 보폭이 유독 큰 팔자걸음을 걷는 그가 양팔을 휘저으며 움직이자 집안이 꽉 차는 듯했다. 아버지의 의심이 진하다는 걸 알자 엄마는 고개를 숙였다.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은 공포와 줄에서 떨어진 뒤의 편안함을 모두 주었다.
“누가 왔다 간 거야?”
깜짝 놀란 엄마가 몸을 웅크리고 진저리를 쳤다. 그러나 곧 눈치를 보는 자신이 싫어졌는지 온몸을 쥐어짜 던지듯 앙칼진 목소리를 냈다.
“왔다 가긴 누가 왔다 가요?”
그러나 그 소리엔 이미 기가 빠져 있었다. 엄마는 오후에 아버지가 집 안에 들이지 말라고 엄명한 백모를 집에 들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죽은 아들을 두고 도망치듯 떠난 백모가 집에 오는 걸 싫어했다. 그러나 엄마는 가끔 섬에서 캔 석화를 팔아달라고 들르는 백모를 외면하지 못했다. 또 아버지 못지않게 백모를 싫어할 수 있는 사람인 할머니도 모른 척했다. 그냥 동네 여인 하나가 놀러왔을 때처럼 덤덤하게 대했을 뿐이다. 재혼해 남의 아들 둘과 자기 아들 둘을 키우며 산지 십삼 년 만에 형편이 나빠져 석화 행상을 한다는 것도 이유지만 그걸 핑계로 딸과 손녀를 보러 온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물론 백모는 초희 누나가 결혼하기 전에도 가끔 왔다. 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사 온 진분홍 옷을 딸에게 입혀보며 공포에 가위눌려 엄마를 붙들 엄두도 못 내는 아이와 짧고 절박한 재회를 하다 아버지의 퇴근 시간에 맞춰 허둥지둥 떠나는 일을 십오 년간 반복한 것이다.
초희 누나가 과부가 되어 돌아온 뒤 달라진 게 하나 있다. 누나가 어머니를 만나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백모를 반기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면 누나는 아이를 데리고, 혹은 혼자서 집 뒤쪽 쪽문을 통해 나가버렸다. 그 뒷모습은 내가 지금 불행한 건 내 탓이 아니에요. 다 당신 탓이에요! 하고 외치고 있었다.
그런 날이면 백모는 딸의 판박이인 손녀를 안고 어르며 시간을 보냈고, 그 애조차 없으면 갑자기 늙어버린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가슴을 쥐어뜯고 울었다. 나중엔 할머니 눈치도 보지 않고 담배까지 꺼내 피웠다. 역시 담배 생각이 간절할 텐데도 꾹 참고 백모를 주시하는 엄마의 눈도 자두 과육같이 붉어져 있었다.
오늘 역시 그런 날들 중 하나였고, 지금 아버지가 찾는 단서는 바로 석화의 냄새, 아무리 감추려 해도 집안 가득 퍼져가는 싱그러운 바다 냄새였다. 아버지의 귀가가 늦는 날이 많아서 해 지기 전에 동네 여자들에게 팔아주려고 맡아뒀는데 그가 빨리 퇴근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백모가 집에 드나드는 걸 알고 있었다. 딸과 손녀도 보고 손 크고 발 넓은 엄마에게 신세 한탄도 할 겸 굴을 팔아달라고 들른 날이면 부엌에 동네 여자들이 와글와글 끓는 걸 모른 척했다. 단지 미리 크게 헛기침을 해서 형수가 뒷문으로 달아날 시간을 주었을 뿐이다.
물론 우리 집에 몰래 드나든 사람은 백모뿐만이 아니었다. 전쟁 때 좌익 혐의로 고문을 받고 정신질환을 앓던 당숙이 죽은 뒤 재가했다는 당숙모도 정기적으로 신세한탄을 하러 왔다.
그런 날이면 그 모든 것을 지켜본 뒤뜰의 붉은 장미들이 요요히 불타오르며 아버지의 등을 조롱했다. 그런데 그 꽃의 비밀까지도 다 아는 아버지가 새삼스럽게 가출한 여자들의 흔적을 찾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집요하게 집 안을 뒤진 끝에 부엌 찬장 밑에서 색동무늬 상보가 씌워진 함지박을 찾아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땐 아버지가 함지박을 들어 던지고 있었다.
“이게 뭐야? 왜 하지 말라는 짓을 하는 거야?”
생굴들이 부엌 바닥의 흙 위로 화르르 흩어졌다. 눈앞이 아득했다. 백열등 불빛 아래 반짝이는 동글동글한 굴들은 조약돌 같기도 하고 큼직한 진주 같기도 했다. 굴 향기에 취해가자 나와 현실 사이엔 반투명 필터가 끼어들었다. 오늘 밤의 소란이 모두 꿈속의 일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나는 어쩔 수 없이 현실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계속 소리를 지르다 제 풀에 꺾여 주저앉았고, 엄마는 죽은 듯이 웅크려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엄마의 등을 오래 노려본 뒤 양복 윗도리를 들고 집을 나가버렸다.
엄마는 부엌 문 밖에 조용히 서 있던 둘째 누나를 안으로 불러들였다. 두 여자는 흰 사기대접으로 흙이 묻지 않은 굴들을 살살 떠서 큰 바가지에 담았다. 바가지가 반쯤 차자 엄마는 그것의 몸통을 탁탁 쳤다.
“시워언하겠다. 에그, 아까워라! 흥, 성질 드러운 인간.”
“물로 씻으면 먹을 순 있겠네. 근데 팔 순 없겠다.”
“왜 나한테 화를 내? 내가 그렇게 만만해? 지금껏 그 사람 드나드는 걸 몰랐다면 내가 말을 안 해. 이십 년 넘게 모른 척 해놓구선 왜 이제 와서 난리냐구?”
“엄만…. 초희 언니 땜에 속상해서 저러시지.”
“아 사람 사는 집에 사람 드는 걸 어떻게 막어? 그것도 어미가 새끼 보려 드나든다는데.”
“맞아, 엄마 말이 다 맞아. 그러니까 그만, 제발 그만 응?”
*
다음 날 숙취 때문에 오후에 출근한 아버지는 퇴근 시간이 못돼 귀가했다. 동쪽 문을 열고 걸어오는 아버지의 창백한 얼굴엔 병색이 뚜렷했다. 안방에 들어가자마자 이부자리를 깔고 누운 아버지는 저녁식사 때 일어나 밥 몇 술을 뜨고 다시 눕더니 다음 날 정오까지 잤다. 평소엔 숙취가 심해도 다음 날 낮까지 버려진 물건처럼 누워 있다 뜨거운 국을 마시고 나가면 그만이던 사람이 죽은 듯이 누워만 있었다.
오후엔 전신에서 열이 끓고 듣는 사람조차 힘들게 하는 밭은기침을 했다. 엄마가 약국에 가 약을 지어왔지만 밤사이에 증세는 더 심해졌다. 다음 날 아침 엄마가 병원에 가자고 하자 아버지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요 위에 얼굴을 파묻어버렸다.
“별 거 아냐. 피곤해. 그냥 피곤할 뿐이야.”
뚱뚱한 책가방을 매면서 보니 아버지는 아예 바닥 타일이 돼버린 듯 납작했다. 아버지의 몸이 더더욱 얇아지다 방바닥마저 뚫고 꺼져버릴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그날 낮에 엄마는 도립병원에 전화를 걸어 의사의 왕진을 청했다. 혈색이 좋고 통통한 남자 의사는 여자처럼 가늘고 높은 목소리로 소견을 말해주었다.
“폐렴입니다. 심각하진 않지만 방치하면 급속도로 나빠질 겁니다. 휴식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담배를 끊으셔야 합니다.”
“담배를 끊으면….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지금은, 무조건 끊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만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엄마의 얼굴은 밝아졌지만 할머니의 모습은 정반대였다. 의사의 입에서 폐렴이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부터 움직임을 잃어버린 할머니는 아버지를 뚫어져라 봤다. 무릎 위에 걸쳐놓은 앙상한 두 손을 움켜쥔 채.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공기나 바람, 물 같아서 평소엔 거의 느껴지지 않던 할머니의 존재감이 거대해진 건.
그날부터 아버지는 하루에 두 번 왕진을 온 의사에게 주사를 맞고 시간에 맞춰 약과 죽을 먹고 나머지 시간엔 잤다. 도중에 잠깐 눈을 떠 걱정하고 있는 식구들과 눈을 맞춰주지도 않았고 메마른 흰 입술을 열어 그들을 안심시켜주는 뻔한 말을 해주지도 않았다. 나중엔 아버지가 너무 많이 아파 쉽게 낫지 않는 건지 낫고 싶지 않아 이를 악물고 아픈 척하는 건지도 헷갈렸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백부를 삼킨 결핵을 두려워하고 있겠지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목포에서 보다 더 혹사당하고 있었다. 함평의 전기는 양도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전압도 일정치 않아서 쉴 새 없이 크고 작은 전기 사고들이 터졌다. 불시에 정전이 되거나 퓨즈가 나가버리거나 합선이 돼버리는 일은 흔했고, 소켓에서 스파크가 일어나 불꽃이 사방으로 튀는 불상사도 많았다.
비싼 전기 요금에 시민 의식 부족이라는 문제까지 결합되어 전기를 훔치는 도전도 성행했다. 전기세를 안내려고 자기 계량기를 달지 않고 남의 집 계량기에 연결해 쓰는 일은 흔했고, 심하면 전신주에 바로 연결해 쓰는 경우도 있었다. 도전은 명백한 도둑질인데다 전기 사고의 두 번째 원인이어서 한전 본사에선 정기적으로 사람을 파견해 계량기와 전신주를 점검하게 했다.
직원들이 매일 펜치를 들고 다니며 태연하게 불법을 저지르는 전선들을 싹둑 끊어버리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아버지 역시 목포에서처럼 정확한 시간에 퇴근할 수 없었다. 또 사택이 사무실과 붙어 있는 것도 일과 휴식을 구분할 수 없게 했다. 만성 피로에 절어 있는 그를 쓰러뜨린 건, 그러나 어떤 강력한 불안이었다. 무리를 거느린 수사자가 다른 수사자가 주위에 어른거리는 걸 보고 분노하고 절박해하다 털썩 주저앉을 때와 같은 불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