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내겐 너무 무거운 의무 ④
그러나 ‘가오’에 대한 내 집착과 노력들이 쓸모없어지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일주일 뒤 함평 경찰서 안 순경님의 외아들인 민규가 제 집에 가자고 했을 때 나는 반가웠다. 형제도 없는 데다 녀석이 다섯 살 때 엄마가 돌아가신 뒤 큰어머니가 가끔 들러 살림을 돌봐줄 뿐인 그 집은 식구들이 북적대는 다른 집과는 달랐다. 말 그대로 우리끼리 찧고 까불며 홀가분하게 놀아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소박하고 정갈한 살림들로 꽉 찬 민규네 집은 비밀 창고 같았다. 우리가 동경하는 직업인들 중 하나인 경찰관이 사는 집이어설까?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물건도 특별한 사연과 비밀을 간직한 암호로 보였다. 특히 좁고 긴 창문 아래 놓여 있는, 서랍이 유난히 많고 살짝 낡아 운치 있는 원목 책상이 나를 끌었다.
달력으로 정성껏 싼 교과서와 어른들이 보는 두꺼운 책들이 함께 꽂힌 책꽂이를 살펴보던 나는 민규가 부엌으로 간 뒤 책상 앞으로 갔다.
맨 위 서랍엔 문구용품들이 가득했다. 두 번째 서랍 속엔 두툼한 낡은 서류 봉투들이 있었다. 맨 아래 쪽에 있는 네 번째 서랍을 반쯤 열었을 때 휘황하게 번쩍거리는 쇠붙이가 보였다.
그것은, 경찰이 범인의 손목에 채우는 수갑이었다. 기껏해야 영화에서 보거나 놀 때 차고 채우는 흉내나 내보던 그 근사한 물건을 진짜로 보게 된 게 꿈만 같아서 나는 황홀했다. 아, 이것이 나를 이 집으로 데려왔구나 싶기도 했다. 나는 수갑을 들어 올려 꼼꼼히 살펴봤다.
그때 검붉은 자두들이 수북한 쟁반을 들고 들어오던 민규가 나를 보자 깜짝 놀라 쟁반을 떨어뜨렸다. 그는 달려들었다.
“대장, 그거 만지면 안 돼!”
녀석은 제가 밟은 자두들 때문에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수갑만은 야무지게 움켜쥐었다.
“우리 아버지가 알면 혼나. 내려놔. 내려놔!”
“아, 알았어. 알았다구.”
그러나 내 손은 계속 수갑을 만지고 있었다. 그건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공포에 질린 눈과는 상관없이 그의 손은 긴 세월 애틋하게 사랑해온 물건을 쓰다듬듯 수갑 한 짝을 만지작거렸다. 오히려 갈망이라면 그의 것이 더 커보였다. 훨씬 오래됐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녀석을 유혹해버리기로 결정했다.
“야, 우리 이거 딱, 딱 한 번만 손목에 차보자.”
“안 돼. 아버지한테 들키면 나 죽어. 진짜 죽어.”
기계적으로 달싹거리는 입술과 달리 점점 생생해지는 녀석의 눈을 보며, 나는 한 손으로 수갑을 쥐었다. 다른 손으론 녀석의 손목을 꽉 쥐었다. 이제 녀석의 입에선 의례적인 사양의 말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눈빛으로 먼저 녀석이 범인 배역을 맡고 내가 형사 배역을 맡는 걸로 규칙을 정했다. 녀석의 얼굴보다 힘이 세고 다부져 보이는 두 손이 금속 고리 속으로 들어가자 그의 놀라운 명연기가 시작되었다.
“아유,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순경님, 아니 장군님!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인마, 너 같은 악당의 말을 너라면 믿을 수 있겠어? 법이 눈 먼 바보인 줄 아나? 세상에서 젤 나쁜 인간은 자기가 하는 일이 나쁜 줄 알면서도 하는 인간이야. 너 같은 놈은 이 지구에서 사라져야 해!”
“아이구, 한 번만,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요!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제발 국가와 민족에게 속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그 후로도 꽤 오래 녀석은 진짜 범인처럼 얼굴을 험악하게 구기기도 하고 절절 매는 시늉을 하기도 하며 능청을 떨어댔다. 지금껏 우리가 온갖 영화들을 보며 충실하게 쌓아온 연기력이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내 연기력도 만만치 않았다. 민규는 범인의 엄살을 떨 만큼 떤 뒤에야 쾌청하게 웃었다.
녀석은 수갑에서 두 손을 빼낸 뒤 한 손으로 내 오른쪽 손목을 틀어쥐었다.
“이젠 대장 차례야. 빨리 왼손도 내!”
나는 뻘게진 눈으로 내 두 손이 두 개의 신비로운 고리 속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봤다. 흥분으로 벌어진 내 입에서도 녀석의 대사와 비슷한 대사가 흘러나왔다. 외롭고 절박한 죄인의 흉내를 내보는 건 색다른 재미였다. 물론 녀석의 형사 연기도 우수했다. 우리는 눈빛으로 대충 짜놓은 각본에도 없는 감탄사까지 섞어가며 분위기를 한껏 돋웠다. 나도 덩달아 대담해졌다.
“이 나쁜 놈! 내가 너 같은 악당한테 두 번 속는 멍청인 줄 알아? 너 적군의 스파이 맞지?”
그때, 내 두 손목 사이에서 철커덕, 하고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하며 내려다보니 수갑이 잠겨 있었다. 처음엔 진짜 범인이 돼버린 듯 짜릿했는데 곧 공포가 나를 덮쳤다. 누군가 내 심장 두 쪽을 쥐고 부숴버리는 듯했다. 민규가 수갑에 대해 잘 아는 사람처럼 이곳저곳을 만져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중엔 어설프게 만진 게 더 나쁘게 작용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울음을 터뜨렸다. 쉴 새 없이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리는데도 머릿속은 여전히 바빴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민규로 하여금 망치로 자물쇠 부분을 살살 두드리게 해 깨지게 하는 것. 그러나, 역시 아무리 생각해봐도 녀석의 솜씨라면 십중팔구 내 손만 내리찍고 끝나게 돼 있었다.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해보고 싶지만 규칙을 어긴 데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내 속의 아이는 판단력을 잃어갔다. 이젠 어떤 어른이 시도해도 수갑은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새로운 공포가 흰 두 손으로 우리의 목을 졸랐다. 지금 나가지 않으면 영영 내 발로 걸어 나가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혹 공포 영화 속의 한 많은 주인공 같이 너무 울다 습기를 다 잃고 죽어 미라로 발견되고 마는 건 아닐까?
우리는 집을 나섰다. 거리를 걷는 내내 눈물이 쏟아져 앞을 볼 수가 없었다. 1963년 8월 24일 오후 세시 반, 나는 열한 살 소년의 몸으로 범죄자처럼 수갑을 차고 읍의 거리를 지나 경찰서로 걸어 들어가는 진풍경을 연출하고야 말았다.
그 후의 일에 대해선 생각하고 싶지도 말하고 싶지도 않다. 경찰서 사람들의 놀란 얼굴과 폭소, 훈계, 동정, 그리고 연락을 받고 달려온 아버지의 기막혀 하는 얼굴과 그의 사과 뒤 또 한 번 터지던 웃음소리…. 뜻밖에도 그 날 아버지는 화를 내진 않았다. 하늘을 보며 웃다 혀를 차다만 반복했을 뿐이다. 그러나 마지막엔 내가 화내는 것의 열 배는 싫어하는 한심해하는 표정을 보여주고 말았다.
“아주 가지가지로 놀래키는구나. 증말 지겨워할 틈도 없어. 하긴 죽을지도 모른다고 가슴을 졸이는 것 보단 낫다만. 그래도 녀석아! 제발 그만 좀 해라! 아무리 얘들은 싸우고 사고치고 하며 큰다지만. 이젠 놀라는 것도 지겹다.”
나는 고개를 떨궜다. 내가 아버지를 기겁하게 했던 사건들이 하나둘씩 머릿속을 스쳐 갔기 때문이다. 다섯 살 적의 오동나무 사건을 시작으로 두 팔을 벌리고 우물 가장자리 위를 걷다 새가 돼보고 싶어 휙 날아올랐지만 그만 우물 속으로 떨어져 회사 아저씨들에 의해 구조됐던 일, 오직 심심해서 지나가는 개에게 돌을 던져봤다 돌진해온 개에게 배꼽을 물려 병원에서 꿰맸던 일, 또 마루에서 친구들과 걸레축구를 하다 마루 틈으로 튀어나온 못에 고추를 다쳐 크게 고생했던 일….
셀 수 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다른 집 개구쟁이들에 비해 결코 적다고 할 수도 없는 횟수였다.
그러나 그날 아버지 앞에서 느낀 수치심은 수치심 축에 끼지도 못했다. 진짜 수치심은 그 후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시작되었다. 혼이 나가 반쪽이 된 얼굴로 수갑을 차고 걷는 내 모습에 대해 듣지 않은 녀석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장난과 함께 살다시피 하는 사내아이들 틈에서도 꽤 이색적인 사고이자 볼거리였다. 그런데 그들 중 누구도 아는 척을 안 하는 것이다.
혹 내가 없는 곳에서 저희끼리 수군대는 건 아닌가, 의심해봤는데 그건 아니었다. 이건 내 짐작인데, 혹 그들은 사건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즉 저희끼리 실컷 흉을 보고서도 내 앞에서 태연한 척할 자신이 없어서 생각조차 안 하는 게 아닐까? 일단 사건에 대해 아는 척하고 나면 관계의 지각변동을 겪어내야 한다는 것쯤은 그들도 알고 있을 테니까.